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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Jan 20. 2019

무엇이든 늦을 수 있다

나는 753명 중 1명이다. 753명은 어떤 숫자냐면 교육부 자료에 따라 2018년도 간호학과 유턴 입학생이다. 어떻게 대학을 2번 갈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753명이면 충분히 작은 숫자다. 내게 무례하게 아버지 직업과 집안 재산, 결혼 계획을 물어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753명이라는 작은 숫자를 되새김질 한다.


우리나라는 '제 나이'에 유독 집착한다. 제 나이에 해야하는 일을 하지 못하면 주변에서 걱정을 시작한다. 사람마다 입학과 졸업이 늦을 수도, 빠를 수도 있다. 취직이나 결혼도 마찬가지다. 학교-취직-결혼 모두 개인의 선택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 사정으로 인해 빨라지기도 느려지기도 할 수 있는 일들을 좀 더디게 한다고 이렇게 불안해할 수 있을까


한 마을이 주거니 받거니 하며 농사를 짓는 농경사회에서는 제 나이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미덕일 수 있다. 공부와 취직, 결혼을 늦게 하면 노동력 생산이라는 중대한 업무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경사회는 

지났고 산업사회가 됐다. 2019년에 들어서는 조직보다 개인이 중요한 세대도 나타났다. 그러니까 삶을 좀 더디게 진행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스물 일곱이면 지금 유치원에 들어가도 마흔 전에 대학을 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의학기술의 발달로 오래 건강하게 살 수 있게 된 사회에서 제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까 주변의 걱정에 더 당당해져도 된다. 좀 늦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클 수 밖에 없다. 그러니까 N개의 직업을 가지는 것도, 늦은 나이에 공부를 다시 하는 것도, 결혼 시기를 놓치는 것도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는 괜찮다. 내 경우는 4년 공부에 드는 비용을 3년 일해서 갚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100세라는 커다란 수명 막대기를 놓고 보면 20대는 낭비할 수 있는 시기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 세상을 여행할 수도 있고, 아픈 마음을 치유할 수도 있고, 실생활에 도움 안되는 공부를 해도 된다. 실제로 한 친구는 사랑을 찾아 여행을 떠났고 취직보다 결혼을 더 빨리 했다. 다른 친구는 실생활에 도움 안되는 공부를 했지만, 블루 오션 사업지를 발견해서 잘 살고 있다. 음, 자아를 찾지 않고 뭐 했다고 할 수 없는 시간낭비를 해도 괜찮다. 나도 시간낭비를 많이 했지만 멀쩡하게 잘 살고 잇다. 이 모든 것들을 주변 눈치보느라 포기하지는 말자.


올해 28살이 된 나는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도시에서 매일 답답한 말을 듣고 있다. 


"여자나이 28살이면 절대 공부 안 시키는데 부모님이 힘드시겠다" 

"공부하지 말고 좋은 남자 만나서 시집가라"


답답한 속을 풀기 위해 방문한 신년운세집에서는 연애와 결혼을 분리시키지 않았다. 결혼 적령기의 남자운에 대해 한 시간 동안 듣다가 더 답답해졌다. 이런 곳에서 살다보면 결혼만큼은 제 나이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쉽다.


이럴수록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믿는 삶의 가치들은 내가 지키지 않으면 주변 사람들에 끌려가게 된다. 그럼 자아를 잃어버리고 미아가 되어버린다. 다시 한 번, 늦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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