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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Jan 20. 2019

변화하는 자존감

같은 조건 속에서도 어떤 아이는 성공을 배우는가 하면, 어떤 아이는 좌절을 배웁니다. 성공과 좌절의 경계 지점에서 선택을 하게 하는 결정적 요인이 바로 자아존중감입니다. 자존감은 기본적으로 자신에 대한 신념의 집합입니다. 자존감의 핵심 두 가지는 자기 가치와 자신감입니다. 다른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을만한 사람이라는 생각과 주어진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자존감은 대물림됩니다. 아동기의 경험이 성인기의 자존감으로 연결되고, 그것은 자녀에게로 연결됩니다. 갓 태어난 상태의 자존감은 완벽하게 차 있거나 완벽하게 비어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대단히 가변적인 상태입니다. 자존감은 성장하면서 주변의 중요한 사람이 어떻게 상호작용해주느냐에 따라 점차 형성됩니다. 


아이는 부모가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자신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갑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아이를 대할 때 항상 웃고 애정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 아이는 그것을 보고 마치 거울을 보듯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의하게 됩니다. 자존감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집니다. 즉, 순수한 애정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생후 1년이 되면 아이들의 호기심은 폭발적으로 증가합니다. 


이 시기에 부모가 저지르게 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양육태도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부모가 아이를 이렇게 발달시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아이에게 강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아이는 늘 틀리게 되어있는 존재인데, 그걸 강압적으로 조정하려고 할 때 아이는 무력감을 느낍니다. 다른 한 가지는 무조건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두는 겁니다. 과도한 칭찬을 해주는 것도 비현실적인 자아상을 키워주게 되어 좋지 않습니다. 


높은 자존감의 핵심은 성공 경험입니다. 성공 경험은 자존감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과제를 성취해서 느끼는 희열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게 되면, 자기효능감이 생기고, 도파민이 분비됩니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뇌는 그것을 좋은 기억으로 저장합니다. 그리고 계속 그 행동을 하도록 자극합니다. 선순환 구조가 반복되어 내가 선택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이르게 되면 자존감이라는 형태로 마음속에 자리 잡습니다.


어린 시절은 타고난 기질 자체가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낯을 많이 가리게 됐습니다. 부모님은 저를 외향적이고 리더십 강한 아이로 키우기를 원했습니다. 엄마는 아빠와 결혼하면서 고향을 떠나 울산으로 이사했습니다. 아는 사람이 없는 타지로 이사 왔기 때문에, 자식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습니다. 저는 3살 때 한글을 다 익혀서 한글나라 신문에 나온 경험이 있습니다. 이 과정이 제가 천재라기보다는 엄마의 관심과 교육열 때문이었습니다. 엄마는 언어처럼 내향적인 기질도 교육을 통해 외향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외향적인 아이로 키우기 위해 강압적인 양육 태도를 취했습니다. 어린이 프로그램 공연장에 가면 꼭 저를 무대로 내보냈습니다. 반짝거리는 카메라 불빛 사이에서 MC의 질문에 대답을 못해서 울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이 외에도 사회성을 기르기 위해 새로운 사람을 주기적으로 만나는 오케스트라 활동을 했습니다. 외향적으로 되고 싶지 않은데, 엄마의 강압에 의해 억지로 변하려니 무력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자존감은 유아기와 학령 전기 때 바닥을 쳤다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스스로 그만뒀습니다. 엄마의 처녀 시절 꿈은 악기 연주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엄마 대신 이뤄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하루 12시간씩 이뤄지는 예술중학교 입시를 감당해낼 수 없었습니다. 엄마의 꿈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놓으면서 음악을 그만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엄마가 제 결정권을 존중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손 놓았던 공부를 12시간씩 해서 차근차근 성적을 올렸습니다.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거치면서 성적이 점점 올라갔습니다. 친구들과 선생님의 인정을 받으면서 전교 2등까지 하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은 성공의 경험이 쌓였습니다. 또 외향성에 대한 강압적인 양육태도로 인해 생긴 답답함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솔직하게 털어놓은 글은 교내 백일장과 교외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게 해줬습니다. 


부모님은 음악을 그만두고 싶다고 말한 이후로, 제 결정권을 존중해줬습니다. 다양한 기회를 만들어 주려고도 하셨습니다. 공부나 글쓰기에 대해 하기 싫으면 억지로 할 필요 없다고 말해주셨습니다. 하지만, 하게 된다면 그에 대한 책임이나 보상을 확실하게 해주셨습니다. 시험에서 100점을 받거나 글쓰기에 대한 상을 받을 때마다 용돈을 주고 외식을 했습니다. 여러모로 기운을 북돋아줬던 일이 생각납니다. 공부를 완성 지어 시험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글을 완성 지어 칭찬을 받는 경험이 축적되어 자존감으로 굳어졌습니다.


자존감이 상승하면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목표를 세워 공부했습니다. 강변을 꾸준히 달려서 오래달리기 학급 대표로도 나갔습니다. 사소한 성공 경험이 쌓여가면서 남들 앞에 나설 수 있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처음 본 사람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게 됐습니다. 이렇게 굳건하게 형성된 자존감은 실패와 좌절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게 했습니다. 자존감은 자신을 제대로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존감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수많은 실패 위에 작은 성공들이 반복되면서 굳건하게 자존감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뿌듯했습니다. 부모님도 아이를 키우는 게 처음이라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해주셨습니다. 자존감도 여러 번의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커지듯이 부모님도 아이를 키울 때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자존감을 만들고, 위기와 도전에 직면하는 자신이 기특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존감은 시기에 따라 변한다고 다큐에 나왔습니다. 앞으로 인생에서 다양한 일을 겪을 때마다 자존감이 올랐다가 내렸다가 할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기본 바탕으로 놓고 행동하면 외부 자극을 이겨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자아존중감입니다. 행동의 기본 바탕이 되는 자존감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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