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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May 06. 2019

우리에게는 동굴이 필요하다

어른이 되면 동굴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른은 전지전능한 존재니까. 감정의 소용돌이 따위에 휘말리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나보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동굴은 영원히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른은 다만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괜찮은 척 할 뿐이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의 아빠 모습이 생각난다. 아빠는 낮에는 괜찮아보였지만, 밤만 되면 혼자만의 방에서 실컷 울고 나왔다. 이러한 동굴에 대한 이론이 있다.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힘든 일이 생기면, 어머니의 자궁에서 위안을 받으려고 한다는 이론이다.      


사람이 동굴에 들어갔을 때는 주변 사람이 지켜야할 예의가 필요하다. 무심코 동굴을 침범하지 않는 일이다. 자궁과 비슷한 곳에서 위로를 받고 스스로 나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나의 동굴은 많이 바뀌었다. 5살 때는 책상 아래가 동굴이었다. 책상 아래에 쏙 들어가서 의자로 입구를 막아놓았다. 고등학생 때는 커튼을 양 옆으로 두른 책상이 동굴이었고, 커서는 자취방이 동굴이었다. 자취방에서는 휴대폰만 끄면 누구도 동굴을 침범할 수 없어서 흡족했던 기억이 난다. 영원한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앵무새를 데리고 동굴에 들어갈 때도 많았다.       


동굴 안에서는 별 일을 하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있는다. 다만 생각하고 생각할 뿐이다. 잠을 푹자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다. 평범한 일들의 집합이다. 하지만 동굴만 다녀오면 힘든 일이 사라졌다. 다시 부대끼면서 살아갈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는 동굴이 필요하다. 인생은 술-시험-술-시험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견딜 수 없는 일은 항상 오기 마련이고 대처할 안식처가 필요하다. 동굴을 만드는 팁은 다음과 같다. 첫째, 큰방보다는 작은방이 좋다. 자궁은 작으니까. 둘째, 작은방 안에서도 텐트를 치는 게 좋다. 셋째, 동굴에는 좋아하는 것과 같이 들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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