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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생망 Sep 17. 2019

영혼 없는 리액션에 대한 고민

영혼 없는 리액션은 내 트레이드마크다. 영혼 없는 리액션을 시작할 때는 그러려고 한 게 아니었다. 모든 말에 응답을 해주고 싶다는 박애주의적 관점에서 리액션이 시작됐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점이 있었다. 리액션에는 한계가 있다. 공부를 오래 하면 더 이상 머리에 안 들어간다는 순간이 오는 것처럼, 리액션을 하다가도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영혼 없는 리액션이 발사된다. 


그렇다면 리액션을 하지 않으면 편하지 않냐고 물을 것이다. 리액션은 내게 하나의 습관이다. 수직적인 사회구조상 윗사람의 말을 끊임없이 들어야 할 때가 있었고, 대학 졸업하고 나서 사회생활은 하루의 반 이상을 차지해버렸다. 사회생활에서 말을 재미있게 못 하면, 듣기라도 잘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영혼 없는 리액션을 열심히 하게 됐다. ‘빈말이란 것을 알아도 뇌는 기뻐한다.’라는 영국 연구결과를 말하며 리액션을 당당하게 했다.


영혼 없는 리액션이 오히려 상처가 된다는 건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알게 됐다. '그럴 거면 리액션 하지 마'라는 친구의 말에서 깊은 상처가 느껴졌고, 이미 습관이 된 리액션을 멈추려고 노력하게 됐다. 하지만, 이 기술을 역으로 이용할 때도 있다.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말이 듣기 싫을 때는 오히려 더 건성으로 대답해서 말을 그만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만큼 영혼 없는 리액션은 상대를 기분 상하게 만드는 기술인 것이다.


영혼 없는 리액션을 없애기 위한 노력은 다양했다. 있는 힘껏 경청하기, 맞장구와 눈 맞춤으로 반응하기, 진실보다는 듣고 싶은 말 해주기, 리액션이 소진되지 않게 하루에 약속 한 개씩만 잡기 등이다. 수년 동안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내 별명은 여전히 ‘리액션 알파고’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을 읽으며 진정성 있는 리액션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지금까지는 진정성 있는 리액션이 경청을 바탕으로 나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친구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서 들어놓고도 뜬금없는 충고나 조언, 맥락없는 내 이야기를 풀어놓기 일쑤였다. 


책에서는 진정성 있는 리액션에는 깊은 공감이 필요하다는 점을 짚어준다. 선생님에게 혼나고 집에 온 아이를 대하는 엄마가 나온다. 아이는 이미 충분히 혼나고 왔고, 잘못한 걸 알고 있다. 여기서 엄마가 한 번 더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자 아이는 폭발한다.     


“엄마는 나한테 그러면 안 되지. 내 편이어야지. 내게 먼저 물어봐야지.”     


아이는 엄마가 습관적으로 리액션 하자 폭발한다. 엄마의 모습에 내 모습이 덧씌워졌다.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리액션을 가지고 아이에게 접근했다면 어땠을까? 아이와 엄마의 애착관계는 더 공고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성 가득한 공감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우선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도 내 입장에서 리액션을 하기 때문에, 친구를 생각한다는 핑계를 대고 충조평판을 남발하곤 했다. 친구가 아파할 것이란 점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고야 말았다.


저자는 사람은 현재의 감정이 공감 받지 못하면 과거의 상처를 꺼낼 수 없다고 여러번 강조한다. 어렵게 꺼낸 친구의 말머리가 의미 있는 그의 속마음 이야기로 연결되려면 친구의 현재 감정이 공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따르면 공감은 보이지 않는 고비들을 계속 넘어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된다. 


책을 읽으며 느낀 공감은 가식이나 기교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감은 하나의 마음을 여는 열쇠에 가깝다. 마음에는 각기 다른 자물쇠 구멍이 있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자물쇠 구멍에 맞는 열쇠를 찾아야 한다. 지금까지 진정성 있는 리액션을 수학 공식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틀릴 수밖에 없었다. 


공감이 되어야만 사람은 비로소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래야 자기 상처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다. 자기 불안을 내려놓고 더 깊은 자기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다. 저자는 어버이연합 노인을 만났던 일화를 통해 공감을 통한 치유를 보여준다. 종북세력을 말하며 폭력적인 행동을 하던 그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는 말보다 ‘밥은 드셨어요?’라고 물어봤다. 그에 대해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을 여는 열쇠를 찾아냈다. 대화를 통한 치유 과정을 통해 노인이 왜 폭력적인 행동을 했는지 이끌어냈고 스스로 반성하게 했다.  


이런 치유에 대해 저자는 자기 존재가 집중 받고 주목받은 사람은 설명할 수 없는 안정감을 확보한다고 한다. 이 안정감 속에서야 비로소 사람은 합리적인 사고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트라우마 현장에서 정신의학보다 공감으로 다가갔다고 말한다.


저자가 알려준 주변의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심리적 심폐소생술이 있다.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 이 한마디는 마음이 아파서 자기를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 말을 이용해서 주변 사람들부터 깊은 공감을 나눠보자. 나는 이 말로 시작해서 진정성 있는 공감으로 제대로 된 리액션을 찾아나가고 있는 중이다. 


멀쩡해 보여도 아픈 친구들은 많다. 헬조선과 ‘이번 생은 망했어’는 말이 유행어가 된 지금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죽고싶다’는 말을 가볍게 남발한다. 유행어가 시대를 반영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심리적 심폐소생술을 할 곳은 널려있다.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묻고, 시간을 다해 들어주고, 진정성 있는 공감을 통해 치유의 속마음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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