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별 대표 브랜드 와 그 기원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집어드는 한 조각의 초콜릿에는 사실 나라별 역사, 식문화, 식민지 시대 무역로, 지역 자원과 전쟁의 상흔까지 담겨 있다.
이번 글에서는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초콜릿 브랜드와 함께, 그 기원과 뒷이야기(trivia)를 함께 들여다본다.
스위스, 정밀함과 부드러움의 미학
린트 (Lindt & Sprüngli)
1845년, 취리히의 작은 제과점에서 시작된 린트는 초콜릿의 역사를 바꾼 기술 하나로 명성을 얻게 된다.
바로 '콘칭(conching)'이다. 로돌프 린트는 실수로 하루 밤새 초콜릿 반죽을 저어버렸고, 그 결과 부드럽고 벨벳 같은 질감의 초콜릿이 탄생한다. 이 공정은 현재까지도 프리미엄 초콜릿의 핵심이다.
토블러 (Toblerone)
1908년, 베른의 제과사인 테오도르 토블러는 삼각형 모양의 초콜릿을 만든다.
이는 알프스의 마터호른을 형상화한 것이며, 안에는 꿀과 누가가 들어가 있다.
브랜드명 ‘Toblerone’은 ‘Tobler’와 이탈리아어 누가를 뜻하는 ‘Torrone’의 합성어다.
로고 속 마터호른 산 그림엔 작게 곰이 숨어 있는데, 이는 곰이 도시 상징인 베른을 의미한다.
카일러 (Cailler)
스위스 최초의 초콜릿 브랜드. 1819년, 프랑수아 루이 카일러가 설립했다.
카일러는 ‘분말 카카오’에서 ‘우유 혼합 초콜릿’으로 진화하는 중간 지점을 보여준다.
현재는 네슬레 산하에 있지만, 본사의 쇼콜라 공장은 스위스 관광 명소로도 유명하다.
네슬레(Nestlé)
이야기는 19세기 중반 스위스에서 시작된다. 앙리 네슬레라는 약사가 유아용 분유를 개발하며 회사를 세웠다. 초콜릿과의 인연은, 훗날 다니엘 페터라는 사람이 네슬레의 분유를 활용해 세계 최초의 밀크 초콜릿을 개발하면서 이어졌다. 그 한 조각이, 달콤한 혁명이 되어 전 세계를 뒤덮었다.
네슬레는 이후 스위스의 전통 브랜드 까이예(Cailler)와 영국의 키트캣(KitKat)까지 인수하며, 초콜릿 산업의 거인으로 성장했다.
벨기에, 프랄린, 그리고 장인의 손끝
노이하우스 (Neuhaus)
185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약국을 운영하던 장 노이하우스는 약을 설탕으로 코팅해 쓰기 편하게 만들었다.
이 방식은 초콜릿 코팅 기술로 발전했고, 1912년 그의 손자는 세계 최초의 '프랄린(속이 찬 초콜릿)'을 만든다.
고디바 (Godiva)
고디바라는 이름은 11세기 영국 전설 속 여인, ‘레이디 고디바(Lady Godiva)’에서 따온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레이디 고디바는 남편이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자,
그 세금을 낮춰달라고 간청했고, 남편은 대신 "벌거벗은 채 마을을 말을 타고 지나간다면" 요청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이에 레이디 고디바는 벌거벗고 말을 타고 시내를 행진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고디바 초콜릿은 이 고귀한 용기와 관능적 이미지가 어우러진 벨기에 초콜릿의 대표 주자다.
레오니다스(Leonidas)
1913년, 한 그리스계 이민자가 벨기에에서 제과대회에 참가해 상을 받았다. 이름은 레오니다스. 그는 그 이름 그대로 브랜드를 만들고, 왕처럼 품위 있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초콜릿을 만들고자 했다.
가게 앞 유리 진열장에 초콜릿을 쌓아두고, 누구나 쉽게 고르고 살 수 있게 했던 방식은 당시로선 참신했다. 그는 벨기에 프랄린을 대중화시킨 주역이었다.
피에르 마르콜리니(Pierre Marcolini)
1995년, 한 젊은 파티시에가 벨기에 초콜릿계를 다시 흔들었다. 그는 원두를 직접 고르고, 로스팅하고, 초콜릿으로 만들기까지 전 과정을 통제하는 '빈 투 바(Bean to Bar)' 철학을 내세웠다.
그의 이름은 피에르 마르콜리니. 그는 초콜릿을 마치 와인처럼 테이스팅하며, 쓴맛과 산미, 텍스처까지 조율해낸 장인이었다. 지금도 그는 초콜릿의 테루아(terroir)를 이야기한다.
이탈리아, 부족한 자원이 만든 창조의 맛
페레로 (Ferrero)
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 피에몬테는 카카오 공급에 어려움을 겪는다.
대신 이 지역은 세계 최대의 헤이즐넛 산지였다.
1946년 페레로는 카카오 대신 헤이즐넛을 혼합해 ‘지안두야’라는 새로운 초콜릿을 탄생시킨다.
페레로 로쉐, 누텔라, 킨더는 이 가난한 시절의 창조적 해법에서 탄생한 브랜드다.
바치 (Baci)
1922년, 페루지나라는 회사에서 처음 등장한 바치는 ‘키스’라는 뜻을 가졌다.
초콜릿 속엔 통 헤이즐넛이 박혀 있고, 그 안에는 사랑의 문구가 적힌 쪽지가 들어 있다.
원래는 회사 창립자가 연인에게 보낸 메시지가 시초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도모리(Domori)
이탈리아 토리노 근처, 한 젊은 남자가 카카오의 원종을 찾기 위해 남미로 떠났다. 그의 이름은 지안루카 프란조니. 그는 1997년 도모리라는 회사를 설립하며, 크리올로 같은 희귀 품종을 직접 재배하고 가공하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다.
그가 만든 초콜릿은 쓴맛과 산미의 미세한 균형 위에 서 있었다. 그는 와인처럼 초콜릿을 시음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
프랑스, 초콜릿을 미식으로 끌어올린 나라
발로나 (Valrhona)
1922년 프랑스 남부에서 설립된 발로나는 파티시에와 셰프를 위한 초콜릿으로 시작했다.
단순한 원료가 아니라, 포도주처럼 ‘카카오의 테루아(Terroir)’를 강조한 브랜드로
‘빈투바(Bean to Bar)’를 선도하며 프랑스 미식문화에 정착되었다.
라 메종 뒤 쇼콜라(La Maison du Chocolat)
파리 한복판, 조용한 거리에 작은 초콜릿 하우스가 문을 열었다.
‘초콜릿은 예술이다’라는 철학 아래, 로베르 랑스라는 장인이 1977년 시작한 라 메종 뒤 쇼콜라는 가나슈 중심의 우아하고 정제된 맛으로 프랑스 디저트 세계의 중심에 섰다.
그의 초콜릿은 달지 않았다. 대신 부드러운 균형으로 프랑스의 감성을 녹여냈다.
독일, 실용과 품질의 균형
리터 스포츠 (Ritter Sport)
1912년, 독일 리터 가문은 “재킷 주머니에 딱 들어가는 크기”를 위해 정사각형 초콜릿을 만든다.
100g 딱 맞는 포장, 다양한 맛 조합은 기능성과 감각이 만나는 독일식 설계의 대표다.
밀카(Milka)
1901년, 독일 남부에서 한 브랜드가 태어났다. 이름은 단순하지만 직관적이었다. Milch(우유) + Kakao(카카오).
밀카는 풍부한 알프스 우유를 강조하며, 부드럽고 대중적인 초콜릿을 만들어냈다. 보라색 젖소는 브랜드의 상징이 되었고, 독일과 유럽 전역의 슈퍼마켓 진열장을 지배했다.
미국, 대중성과 산업화의 상징
허쉬 (Hershey’s)
1894년 밀튼 허쉬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대규모 초콜릿 공장을 세운다.
‘초콜릿의 포드’라 불린 그는 초콜릿을 대중화한 인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전투식량에도 초콜릿을 포함시키며 군납 초콜릿 산업을 이끈다.
리시스(Reese’s)
1928년, 허쉬 공장에서 일하던 한 남자, 해리 리스는 자신의 지하실에서 피넛버터와 초콜릿을 조합한 간식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리시스 피넛버터 컵’.
달고 진하며, 무겁기까지 한 이 조합은 미국 대중의 입맛을 정조준했다. 리시스는 이후 미국식 디저트의 아이콘이 되었고, 전 세계 초콜릿 스낵 시장의 중심에 섰다.
일본, 디테일과 섬세함의 미학
로이스 (ROYCE')
1983년, 삿포로에서 설립된 로이스는 ‘생초콜릿’이라는 일본식 장르를 개척한다.
초콜릿에 생크림을 듬뿍 넣고, 냉장 보관이 필요한 유니크한 제품으로 차별화했다.
디자인, 포장, 보관 온도까지 세심하게 설계된 브랜드로 유명하다.
메이지(Meiji)
1916년, 일본에도 초콜릿이 도착했다. 메이지는 그중에서도 서양 기호식품을 일본식으로 재해석한 선두주자였다. 전후, 메이지는 대중적인 초콜릿을 만들어 일본인의 입맛에 서서히 녹여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고카카오 트렌드를 앞서 ‘메이지 블랙’ 시리즈를 선보이며 다시 한 번 도약했다. 일본식 섬세함은 초콜릿에서도 살아 있었다.
초콜릿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그 한 조각에는 지역의 농산물, 산업 전략, 기술, 그리고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녹아 있다.
세계 초콜릿 지도를 따라가며 그 나라의 얼굴을 맛본다면, 초콜릿은 더 이상 단순한 디저트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