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관리하지 못하는 날

by Yan

가끔, 아니 자주 나는 나를 놓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 순간이다.

대학 시절, 토론 수업 시간이었다.
주제는 분명 사회적 쟁점이었는데, 상대는 갑자기 내 외모와 태도를 걸고넘어졌다.
논리적 반박 대신 인신공격을 택한 그 사람에게, 나는 참지 못했다.
내 말은 점점 이성에서 멀어지고, 감정의 폭풍에 휘말려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다.
그날 이후, 나는 '이긴' 토론이 아니라 '잃은' 나를 오래 기억했다.


또 있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날.
첫사랑과 헤어지고, 속이 텅 비어버린 어느 날 밤이었다.
도무지 참을 수 없어 정신없이 마셨고,
술집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해병대 병사와 시비가 붙었다.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그 밤 나는 내 안의 슬픔과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큰 사고는 막았지만, 그날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


너무 피곤한 날도 나를 잃게 만든다.
첫 직장을 다닐 때는 토요일까지 출근해야 했고,
일요일엔 말 그대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몸은 침대에 파묻혀 꼼짝도 하지 않았고, 마음은 그저 공허했다.
그때 나는 '피로'가 사람을 무너뜨리는 방식이 생각보다 조용하다는 걸 처음 알았다.


불안이 나를 잠식하는 순간도 있다.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결과에 대한 두려움,
“이러다 다 망하는 거 아닐까”라는 막연한 공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럴 땐 도리어 손에 잡히는 일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한 걸음도 떼기 어렵던 그 감정,
그때 나는 불안이란 게 의지를 잠식해버릴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


그리고 의미를 상실한 날.
어느 날은 별다른 이유도 없는데,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일어나기도 싫고, 움직이기도 싫고, 누구와 말하는 것도 버거웠다.
단지 ‘살아 있다는 것’이 버거운 날이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 날은 아무런 목표도, 동기부여도 내게 작동하지 않았다.


정규교육을 받고, 이성을 갖추고 있으며, 책도 많이 읽은 나로서는
'내가 나를 관리하지 못한 날'은, 사실은 내가 나를 이해하지 못한 날이었다.

그런데, 나는 정말 나를 이해하고 있는 걸까.
나는 나를 ‘나’ 자체로 보는 게 아니라, 어쩌면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보고,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 ‘관리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해병대와 싸웠던 그날 밤,
혹시 나의 야수 같은 본성이 원래의 나였고,
먼저 시비를 건 건 오히려 그였을지도 모른다.
그날 일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토론 시간에 목소리를 높여 소리친 것이 나의 본질이라면,
그 본질은 틀린 것일까?
피곤했던 날, 정말 피로 때문이 아니라
삶 자체를 놓아버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

불안이 몰려와 내 능력을 의심했던 그때,
사실은 내 능력이 원래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나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의식’하고 있을 뿐이고,
의미 없는 삶을 그저 흘러가듯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오늘, 모든 걸 한 번 부정해본다.
그리고 남아 있는, 나의 찌꺼기 같은 자아를 가만히 바라본다.


‘내가 나를 관리하지 못하는 날’은
실은 내가 관리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내 안에 숨겨진 또 다른 내가
튀어나와 “똑바로 살아. 너의 삶은 가치가 있어.
너의 능력은 원래 높아”라고
울부짖는 날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그런 나를
그냥 내버려 두어도 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은, 어쩌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오늘도, 별을 보며 나는 곰곰이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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