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존재가 필요한 순간

by Yan

“괜찮아?”라는 말보다 더 큰 위로는, 말 없이 곁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며칠 전, 지하철 안에서 울고 있는 여성을 본 적이 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조심스레 묻는다.
“괜찮아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남자는 그 말 외엔 더 하지 않았다.
그저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건넸고, 몇 정거장 동안 말없이 함께 앉아 있었다.

말은 없었지만, 그 자리는 위로로 채워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어떤 때는, 말보다 ‘존재’가 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은 슬플 때 말을 듣고 싶지 않다.
혼란스럽고 감정이 가라앉지 않을 때,
“괜찮아” “힘내” 같은 말은 도리어 자신을 몰아세우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아, 나는 지금 괜찮지 않은데, 괜찮아야 하나?’
‘왜 나는 아직 이렇게 힘든데, 너는 벌써 마무리하라고 말하는 걸까?’


작년에 내 친한 친구가 회사를 그만두었다.
여기저기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고, 요지는 나이도 들고 밑에 사람에게 밀려 물러났다는 것이었다.
그의 막내아들은 아직 중학교 1학년. 그 사실을 떠올리자 나는 나도 모르게 휴대폰을 들었다.
하지만 막상 전화를 걸려니 망설여졌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미 다른 친구들이 전화해 비슷한 말들을 했다고 들었다.
“괜찮아?” “이제 뭐할 거야?” “힘내.”
내 말도 결국 그들과 다르지 않을 텐데, 오히려 상처를 덧내는 건 아닐까.
나는 전화를 하지 못했고, 그렇게 몇 달이 흘렀다.

결국 연락을 했을 때, 그는 회사를 정리한 뒤였고
앞으로 어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조용히 나눴다.
그는 물었다.
“너는 왜 그때 전화하지 않았니?”
나는 솔직히 말했다.
“나까지 전화하면 네가 더 힘들어질까 봐, 주저했어.”
그 친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너의 말이 맞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내 자리가 그에게 위로가 될 수 있었다면, 그걸로 족하다.


사람은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말을 하지 않고 기다려 주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생각지 않고 나쁜 소식을 듣자마자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전화를 걸고 위로하는 것이 맞다고 믿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내가 요즘 사회생활을 해보니,
친구들의 아이들 진학이나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안좋은 일이 생기면 묻기가 조심스러워진다.
나쁜 소식일수록 먼저 건드리지 않고,
그 상처가 조금 아물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할 수 있을 때,
그때 우연히 드러나 서로 위로해주는 것이 더 자연스러운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말은 언제나 다른 의도를 내포할 수 있다.
때론 위로가, 무심한 간섭처럼 들릴 수도 있다.

말은 적게 하고, 마음으로 전해질 수 있는 무언가의 수단이 필요한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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