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2화. 감사의 중력: 사소한 기적을 발견하는 눈 -
제22화. 감사의 중력: 사소한 기적을 발견하는 눈
도입 — 식어가는 커피 잔에서 발견한 우주
아침 식사 후, 아내가 타준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가만히 앉아 있습니다. 잔 위로 피어오르는 김이 아침 햇살에 부딪혀 무지개 빛을 냅니다. 예전 같으면 원샷하듯 들이켜고 서류 가방을 챙겼을 이 시간에, 저는 커피 잔의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심장까지 전달되는 경로를 느낍니다. 이 평범한 아침이 사실은 얼마나 거대한 기적인지를, 일흔이 가까워진 이제야 비로소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전개 — 53년 전의 상실이 가르쳐준 ‘오늘’의 소중함 (지식 참조: 귀인의 필적)
열세 살, 아버지를 잃었던 그날 이후 제게 세상은 늘 ‘불안한 전쟁터’였습니다. 언제든 소중한 것이 사라질 수 있다는 공포는 저를 감사보다는 ‘대비’에 익숙하게 만들었습니다. 영국계 기업에서 회계팀장으로 일할 때나, 12년 동안 내 사업을 일굴 때도 저는 늘 ‘다음’을 걱정하느라 ‘오늘’을 즐기지 못했습니다. 성공은 당연한 보상이었고, 실패는 저주처럼 느껴졌지요.
하지만 9년 전 어머님을 보내드리며 저는 감사의 태도를 완전히 바꿨습니다. 100세의 어머님은 거동이 불편해진 마지막 순간에도 “눈을 뜰 수 있어 감사하다, 너를 볼 수 있어 고맙다”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님께 감사는 조건부 계약이 아니라, 존재 자체에 대한 찬양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5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어머님은 상실의 슬픔을 감사의 근육으로 이겨내셨던 것입니다. 12년 IT 사업의 마침표를 찍고 퇴사했을 때, 제가 좌절하지 않고 “그동안 수고했다”며 제 자신을 안아줄 수 있었던 것도 어머님이 물려주신 이 ‘감사의 유전자’ 덕분이었습니다.
전환 — AI 시대에 더 빛나는 ‘인간적 공감’의 힘 (미래의 희망)
이제 저는 매일 밤 ‘감사 일기’를 씁니다. 거창한 성공이 아니라, “오늘 산책길에서 만난 강아지의 꼬리짓이 귀여웠다”, “AI가 내 글의 오타를 잡아주어 다행이다” 같은 사소한 것들입니다. 감사는 중력을 가지고 있어서, 한 번 감사하기 시작하면 더 많은 감사할 일들이 제 삶으로 끌려 들어옵니다.
중년의 작가로서 저는 독자들에게 ‘감사의 안경’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평화, 가족, 건강이 사실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된 축복인지를 기록하려 합니다. 감사는 과거를 화해시키고, 오늘에 평화를 주며, 내일을 위한 희망을 만듭니다.
결말 —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건다.'
'행복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행복이 찾아오는 것이란다.'
마흔 이후,~ 연재 에세이는 목요일에 이어집니다.
다시 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