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과 산 사이에 머무는 날들, 덕유산 눈꽃 산행 -
사람과 산 사이에 머무는 날들, 덕유산 눈꽃 산행
겨울이 다 가기 전에 꼭 만나고 싶었던 그 장면, 바로 덕유산(德裕山)의 눈꽃이었어요. 계획했던 날짜의 전날까지도 눈 내린 흔적을 찾기 어려워 친구들을 말려야 할 상황이었지요. 하지만 복(福)이 많은 사람에게 주는 선물처럼, 일요일 이른 아침에 하얗게 내려준 눈 덕분에 저희 일행은 기적 같은 겨울 동화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새벽 5시에 양주 친구의 전화를 받고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는 동행의 말처럼, 설렘과 기대감으로 출발한 하루였어요. 동탄에서 서울 강남 친구와 합류하여, 해가 막 산허리에 걸릴 무렵 덕유산을 향해 차를 몰고 나섰지요. 이 여정은 단순한 산행을 넘어, 서로의 삶에 깊이 공명하는 따뜻한 여행이 되었답니다.
고통을 이겨낸 정상, 신령님의 시샘을 넘어서
- 향적봉(香積峰) 200m 앞, 그 절정의 순간 -
산 중턱을 넘어설 무렵, 저 멀리 땅 아래 아득하게 보이는 마을들을 내려다보며 정상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산행의 묘미를 만끽하려는 순간, 정상이 불과 200m 남았는데도 발걸음 옮기기가 어찌나 힘들던지요. 그 순간, 예상치 못한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한 걸음 내딛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하지만 혼자 상심할 제가 안쓰러워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친구들의 진심 어린 마음에, 저는 고통을 꾹 참고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뎌 올랐어요. 이 길이 단순히 산의 높이를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나약함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달았지요.
펼쳐진 정상 부근은 소복이 쌓여 때 묻지 않은 순백의 눈 세상이었어요. 친구는 등산로를 넘어 그 눈밭에 앉아보라며 포즈를 재촉했고, 나무에 걸터앉아 눈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하는 듯한 자연스러운 모습이 친구의 손끝에서 순간 포착되어 멋진 작품으로 남았답니다.
하지만 향적봉 정상에는 축복처럼 내린 눈을 인간에게 쉽게 내어주지 않으려는 산신령의 시샘처럼, 세찬 눈보라와 진눈깨비 바람이 몰아쳤어요. 잠시 후, 저희는 젊은이들의 사진 줄이 20m 이상 늘어서 있는 멋진 돌 표지석을 뒤로하고, 바로 옆 향적봉 1,614m 나무 표지판에서 기념 샷을 남기고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답니다.
눈꽃 산행의 진수, 가벼워진 하산길의 기적
- 고통 끝에 찾아온 해방감 -
세찬 바람과 다리 쥐로 고통받으며 오를 때와는 대조적으로, 눈꽃 산행의 진수를 제대로 경험한 후의 하산 발걸음은 더없이 가벼웠어요. 인간의 도전 앞에서는 쉽게 돌아설 수 없는 길이었기에, 우리는 그 풍파를 견디어 낸 것이지요.
놀랍게도 오를 때의 고통이 무색할 만큼 빠르게 하산하여, 한 시간여 만에 백련사(白蓮寺) 마루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간식으로 남은 감귤과 홍삼 한 봉지를 나누어 먹고, 아이젠을 벗어 배낭에 챙겨 넣었지요. 백련사에서 주차장까지는 약 6km를 더 내려가야 했지만, 지칠 틈도 없이 발걸음을 옮겼어요.
산허리에 살짝 걸터앉은 저녁 해님이 '조심히 잘 내려가라' 손짓하는 듯했습니다. 그리고 하산길을 한 시간쯤 지났을까, 땅거미가 몰려올 무렵, 산봉우리 위 하늘 중턱에는 둥근 보름달이 저희를 마중 나온 듯 떠 있었어요. 달빛 어린 무주구천동 계곡길에서 산 사나이들의 발걸음 소리는 정막함을 멈추게 하는 유쾌한 리듬이 되었답니다. 길은 늘 우리보다 느리지만, 결국 가장 정확한 속도로 삶을 이끈다는 것을 산행을 통해 배운 하루였어요.
따뜻한 위로, 뒤풀이 김치찌개 한 상의 철학
- 주방에서 만난 70세 어머니의 손맛 -
주차한 곳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저녁 7시. 저희는 곧바로 저녁 식사 겸 뒤풀이를 하기로 결정했어요. 상경길에 오르기 전, 근처 길가 식당에서 해맑은 인사를 건네는 젊은 아주머니를 따라 들어섰지요.
주방에는 70세가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의 어머님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계셨습니다. 오랜 세월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음식들이 얼마나 깊은 맛을 낼지, 기대감이 커졌어요.
저희는 김치찌개 2인분과 감자전을 주문했는데,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밑반찬들이 산나물 그릇들로 즐비하게 나왔습니다. 특히 잘 익은 묵은지 김치찌개에 소주 두 병과 밥 한 그릇씩을 곁들여 맛있게 먹었지요.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위로와 회복이 된다는 것을 느꼈어요. 소상공인 식당의 장점은 바로 이 '손맛'과 '정성'이 경영 철학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지친 산행객의 마음에 큰 감동을 남긴다는 점일 것입니다.
막힘없이 동탄까지 잘 도착한 후, 강남 친구는 버스로, 양주 친구는 차로 작별을 구했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 반. 겨울이 다 가기 전 만끽했던 눈꽃 산행의 감동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아요. 이미 다음 주말과 설 연휴가 그리워지는 것은, 이처럼 충만한 하루를 보냈기 때문이겠지요.
하늘길 조해연 (Skywriter Haeyon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