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1화. 관계의 경계선: 놓아주어야 하는 책임 -
제11화. 관계의 경계선: 놓아주어야 하는 책임
텅 빈 방, 문고리에 걸린 정적
딸아이가 독립을 선언하고 짐을 뺀 지 일주일째입니다. 열린 방문 틈으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이 유난히 시립니다. 침대도, 책상도 사라진 방은 그저 네모난 정적일 뿐입니다. 먼지 하나 없는 바닥을 보며, 문득 제가 평생 쥐고 있던 ‘아버지’라는 이름의 고삐를 생각합니다. 아이가 넘어질까 봐, 길을 잃을까 봐 한시도 놓지 못했던 그 팽팽한 끈이 이제는 제 발치에 툭 떨어져 있습니다.
53년의 그리움과 8년의 배움 (지식 참조: 귀인의 필적)
돌이켜보면 저는 ‘떠나보냄’에 서툰 아이였습니다. 53년 전, 열세 살의 저는 영문도 모른 채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야 했습니다. 악양골 기와집의 든든한 기둥이었던 아버지가 사라진 자리는 어린 제게는 거대한 구멍과 같았습니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저는 늘 무언가에 집착했습니다. 학업에, 성공에,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주지 못한 ‘안전’을 내 손으로 완성해야 한다는 강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8년 전, 100세의 어머님을 보내드릴 때도 그랬습니다. 어머니는 59세였던 제 손을 꼭 잡고 마지막까지 미안해하셨습니다. “막내야, 너를 두고 가려니 발걸음이 안 떨어진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랑은 붙잡는 힘이 아니라, 잘 놓아주는 힘이라는 것을요. 어머니는 평생 저를 당신의 품 안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너른 들판으로 떠밀어내셨습니다. 노름으로 집을 잃고 만물상회를 하시면서도 “너는 큰 물에서 놀아야 한다”며 서울로 저를 등 떠미셨던 그 결단이, 사실은 가장 깊은 사랑의 형태였음을 중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꼰대 아빠와 멘토 사이의 줄타기 (미래의 희망 & 유머)
요즘은 ‘관계의 다이어트’를 연습 중입니다. 아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밥은 먹었니?”라고 묻는 대신, 조용히 ‘좋아요’ 한 번 누르는 것으로 제 관심을 대신합니다. 훈수를 두고 싶을 때마다 입술을 깨물며 생각하죠. ‘저 아이도 인생이라는 교과서를 스스로 써 내려가야 할 저자다.’
이제는 컨설턴트로서 후배들을 대할 때도 비슷합니다. 답을 정해주기보다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마음은 어디로 향하고 있나요?”라고요. 중년의 관계는 ‘주인’이 아니라 ‘조력자’가 되는 과정입니다. AI가 답을 찾아주는 시대라지만,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공감의 온도까지 대체할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배운 지혜는 이제 가르침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있도록 돕는 따뜻한 배경음악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건다.”
“꼭 쥐고 있는 손보다, 가만히 펼친 손바닥 위에 더 많은 햇살이 머문단다.”
다음 회 마흔 이후,~ 연재 에세이는 매주 수요일에 이어집니다.
다시 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