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3화. 중년의 과제: 돋보기를 쓰고 읽는 미래의 지도 -
제23화. 중년의 과제: 돋보기를 쓰고 읽는 미래의 지도
공동 대표가 된 첫날밤, 재훈은 퇴근하지 않았다. 그는 민혁이 던져준 기술 명세서와 파이썬 기초 서적을 쌓아두고 책상 앞에 앉았다. '방패'가 되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정작 방패의 재질이 무엇인지 모르면 적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클래스… 함수… 라이브러리….”
재훈은 생소한 단어들을 입안에서 굴려 보았다. 25년 전 그가 배웠던 포트란(FORTRAN)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눈은 침침해지고, 머리는 굳어 한 페이지를 넘기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렸다. 돋보기를 써도 코드는 흐릿했고, 영어로 된 에러 메시지는 마치 그에게 ‘당신은 여기 어울리지 않아’라고 조롱하는 것 같았다.
새벽 2시, 민혁이 잊은 물건을 찾으러 사무실에 들렀다가 재훈을 발견했다. 재훈은 돋보기를 코끝에 걸친 채, 유튜브의 코딩 강의를 보며 서툰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거… 그렇게 보시는 거 아니에요.”
민혁이 퉁명스럽게 다가와 재훈의 노트북을 뺏어 들었다.
“이건 그냥 데이터를 불러오는 표준 규격이에요. 이걸 일일이 외울 필요는 없다고요.”
재훈은 멋쩍게 웃으며 땀을 닦았다. “허허, 민혁 씨. 내가 좀 미련하지? 그래도 알아야겠더라고. 당신들이 무슨 고생을 하는지, 이 코드가 어떤 논리로 흐르는지 모르면 내가 어떻게 당신들을 지키겠나.”
민혁은 잠시 멈칫했다. 자신이 무시했던 이 '늙은이'가, 자신들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고 밑바닥부터 기어오르는 모습이 생경했다. 민혁은 한숨을 쉬며 재훈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거 보세요. 이건 그냥 도구함이에요. 재훈 대표님이 현장에서 몽키 스패너 쓰시는 거랑 똑같다고요. 다만 이건 숫자로 된 스패너일 뿐이죠.”
민혁의 설명이 이어지자 재훈의 눈이 반짝였다. “아! 그러니까 이게 기계 제어의 피드백 루프랑 같은 원리라는 거군!”
그날 밤, 두 사람은 처음으로 나란히 앉아 밤을 지새웠다. 중년의 지혜와 청년의 기술이 동탄의 새벽 공기 속에서 조용히 섞여 들고 있었다. 재훈은 깨달았다. 미래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보다, 기존의 지혜를 새로운 그릇에 담아내는 과정이라는 것을.
— 23화 끝 —
화요일 연재 웹소설 24회가 이어집니다.
이해담 (Elias Tho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