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7화. 손때 묻은 책장의 먼지: 시간의 흔적과 지혜의 축적 -
제17화. 손때 묻은 책장의 먼지: 시간의 흔적과 지혜의 축적
[장면: 서재 깊숙한 곳, 오랫동안 손대지 않았던 책장 위로 하얗게 내려앉은 먼지를 손가락으로 훑는 순간]
대청소를 하려 마음먹고 서재의 낡은 책장 앞에 섭니다. 빼곡히 꽂힌 책들 위로 하얀 먼지가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훑어내니 검은 나뭇결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누군가에게 먼지는 그저 치워야 할 지저분한 것이겠지만, 오늘 나에게 이 먼지는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시간의 기록'처럼 느껴집니다. 그 책들 한 권 한 권에는 내가 탐독했던 젊은 날의 야망과, 길을 잃고 방황하던 시절의 한숨이 묻어 있습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흔적은 저마다 다르게 남습니다. 《귀인의 필적》에서 작가는 자신의 60년을 '끊임없는 배움의 방랑'이라 정의합니다. 하동 악양골의 흙먼지를 마시며 뛰어놀던 소년이, 서울 용답동의 매연 가득한 거리를 지나, 강남 빌딩 숲의 첨단 기술 속으로 걸어 들어오기까지. 그가 밟아온 모든 길에는 삶의 먼지들이 내려앉았습니다. 때로는 그 먼지가 너무 무거워 숨이 막힐 것 같았지만, 돌아보니 그 먼지들이 쌓여 비로소 '지혜'라는 두꺼운 층을 이루었습니다.
나이 듦은 덧없음이 아니라 깊어짐입니다. 작가가 50대에 경영의 일선에서 물러나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컨설턴트로써 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사업을 하면서 준비해 왔던 경영학 석사 학위를 따고 경영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은, 자신의 책장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새로운 문장을 써 내려가기 위한 작업이었습니다. 과거의 화려한 이력에 안주하지 않고, 60대에도 AI를 배우며 '영원한 현역'을 꿈꾸는 그의 열정은 낡은 책장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맑은 바람과 같습니다.
먼지는 가벼워서 아주 작은 바람에도 흩어지지만, 오래 머물면 딱딱하게 굳어버립니다. 우리 마음의 편견과 아집도 이와 같습니다. 매일 조금씩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지 않으면, 우리는 새로운 진실을 마주할 수 없습니다. 작가가 자신의 치부와 아픔까지 자서전에 솔직하게 담아낸 것은, 스스로의 삶에 쌓인 해묵은 먼지들을 털어내고 가장 맑은 영혼으로 지인들과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책 한 권을 꺼내 먼지를 불어냅니다. 공중에 흩날리는 먼지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입니다. 지저분하다고만 생각했던 먼지도 빛을 만나면 별처럼 빛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우리 삶의 굴곡진 흔적들도 지혜라는 빛을 만나면 이토록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법입니다.
'세월의 먼지를 털어낼 때, 비로소 인생이라는 고전의 진가가 드러난다.'
'커피 한 잔의 철학' 연재 에세이는 다음 주 월요일에 이어집니다.
모닝브루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