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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준호 Nov 22. 2022

어린 단풍나무에게 참 사랑을 배운다

짝퉁 사랑을 하던 나는 단풍나무에게 참 사랑을 배운다

작은 화분에 심긴 어린 단풍나무를 애지중지 기른다.

수분이 필요한 듯 보이면 물을 주고 햇빛을 원하는 듯 느끼면 창가로 옮긴다.


하지만 정성스레 키우는 단풍나무가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는데도 잎들의 색깔이 아름답게 물들지를 않는다. 빨갛고 노랗게 물드는 단풍을 기대하며 가꾸는데.


실망스러운 눈으로 단풍나무를 바라보던 난 “아하” 하며 무릎을 친다.  

따뜻한 실내에서 잎들이 아름답게 물들지 못한 것을 알아차렸다.


쌀쌀해진 날 밤 화분을 밖으로 내어 놓았다.

찬 바람 맞고 늦은 가을을 알아차리고 예쁘게 잎을 물들이라고.


며칠 밤이 지나도 잎의 색깔이 바뀌지를 않는다.

이 정도의 추위로는 계절의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가 보다.


영하로 내려간 몹시 추운 날 밤 즐거워 휘파람이 절로 나온다.

겨울 온 것을 단풍나무에게 확실하게 알려 줄 행복감으로.


칼바람 부는 날 밤 화분을 밖에 내놓은 난 아침이면 붉고 노랗게 물들어 있을 단풍잎을 상상하며 잠을 설쳤다.  이튿날 아침 눈 뜨자마자 화분 둔 곳으로 간다.

초록의 잎들이 화려하게 물들어 있겠지? 흥분된 기대를 품고.


아뿔싸!

어찌 된 일인가?  

초록 잎들 모두가 질식하여 희끄무레한 녹색으로 변한 채 바짝 말라비틀어져 버렸다. 

화분 전체는 얼음덩어리가 된 채로.

 

서둘러 나무를 따뜻한 방으로 옮기고 말라비틀어진 잎에 물을 주며 생기를 되찾으려 애를 써 본다.

며칠이 지나도 회생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얼었던 화분은 녹아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바싹 말라비틀어진 잎들은 흉하게 가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욕심을 채우려 단풍나무의 환경을 억지로 바꾸며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

미안하고 후회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단풍나무를 바라보며 나의 짝퉁 사랑이 보인다.

  

단풍나무 열매는 어미 가지로부터 분리의 아픔을 겪으며 흙으로 떨어져 땅 속에서 월동을 한다.

추위를 견디며 외로움을 겪은 씨앗이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싹을 틔우고 대지의 공기와 땅 속에 무한하게 널브러진 양식을 공급받으며 여름 내내 자란다. 이러다 쌀쌀해지는 가을의 기온을 느끼곤 성장을 멈추고 아름답게 잎들을 물들이곤 한 해를 마무리한다.

   

고유한 성격에 따라 주어진 환경에 서서히 적응하며 살아가는 단풍나무의 삶을 무시하고 욕심으로 좁은 화분에 가둔 채 섣부른 지식으로 온도와 빛을 성급하게 조절하며 아름답게 물든 단풍을 즐기려 하였다.


그럼에도 어린 단풍나무는 아무런 불평 없이 무한정의 햇빛과 산들바람, 밤하늘의 별빛과 풍부한 영양분을 그리워하며, 때로는 뿌리가 상함의 아픔까지 겪으며, 아름다운 단풍의 소박한 꿈을 포기하고, 모진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마음이 아리다 못해 아프다. 그리고 이기적인 탈을 쓰고 단풍나무를 대한 이기적인 가짜 사랑이 보인다.   


죄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며칠을 기다리다 말라비틀어진 잎을 가지에서 떼어내고 있었다. 

죽은 것을 확인하고 화분을 버릴 작정을 하고.


아아!

마른 잎들을 떼어낸 자리에 연한 녹색과 브라운 색깔을 한 작은 새싹 봉우리들이 돋아나는 것 아닌가! 

죽었던 나무가 살아나 방긋 눈을 뜨고 나를 향해 미소 짓는 듯하다. 


나의 욕심과 어리석음을 모두 용서하였다는 듯,  자신을 아껴준 사랑만 기억하겠다는 듯, 미안해하기보다 생명의 신비를 다시 즐기며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듯.

 

다시 살아 생명의 신비를 보여주는 어린 단풍나무에게 참 사랑을 배운다. 


하나님이 주신 각기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존재를 깊이 이해하고 그에 따른 대우를 하는 것이 참 사랑이라는.  섣부른 지식과 이기심에서 나오는 얄팍한 꾀가 내 마음속에 있는지 늘 살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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