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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준호 Dec 09. 2022

7. 경건의 교만이 없는 곳에서 누리는 평안

먹고사는 것이 우선인 곳에서 평안을 누리다

그동안 지도해 주시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강 목사에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엉겅퀴 무성하여 이리 찔리고 저리 찔림을 당하는 긴 숲 속을 빠져나오는 듯 후련하다.

   

하지만 영혼은 자유한데 먹고사는 일이 걱정된다.

일 할 자리를 잃은 공허함을 달래려 유천이 중얼거린다.

"일할 자리는 많아.

체면, 자존심에 매여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니 먹고사는 것이 힘들지.

주어지는 환경에 따라 모두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 감사하며 주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최선을 다해 일하면 산 입에 거미줄이야 치겠어?"

  

유천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인지, 스스로 세뇌된 마음인지 분별되지는 않지만 자신감이 넘친다.


신문 광고를 보고 또 보아도 전공이 신학인 유천은 교회 말고는 이력서 보낼 곳이 없다.  

이력서 200군데를 보낼 수 있는 청년들이 부럽다.


구인광고를 보고 또 보며 먹고사는 문제보다 더 큰 일은 없는 듯하다.

그럴듯한 회사에서 수준을 낮추며 광고를 보다 "케쉬어 구함 K 마켓"에 눈이 머문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인연을 끌림의 신비를 통해 만들어 가시는 가보다.


유천은 운전하여 마켓으로 갔다.

파킹장엔 홈레스들이 이곳저곳 흩어져 서성거린다.

마켓을 들락 거리는 손님들 중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럴듯한 옷차림을 한 사람도 없다.


마켓에 들어서니 주인이 손님 아님을 직감으로 느끼고  

"어떻게 오셨어요?" 한다.  


유천이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광고 보고 왔습니다." 한다.  


주인

"아! 광고요! 이해가 된 듯 미소를 지으며 그런데 여기는 미니멈만 주거든요." 한다.


유천

 "알고 왔어요."


주인이 유천을 아래 위로 훑어보다 유천의 눈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손을 내 민다.

"곽 상훈입니다. 가게 주인이에요."

 

"유천입니다."

  

인사를 건넨 주인이 그동안 살아오며 쌓인 데이터를 동원한 결과 미심쩍은 마음이 드는가 보다.  

"이런 일 해 보셨어요?" 질문을 한다.  


유천

 "아니요. 어려운가요?"


주인

"별로 어렵지는 않지만 여기는 도둑놈들도 많고, 위험하기도 해요."


유천

 "그래요? 그래 보았자 사람이 하는 일일 테지요 뭐. 사장님도 하고 있고...."


주인은 유천의 얼굴 모양, 눈빛 그리고 하는 말을 들으며 순진한 사람이라는 확신은 들지만 '일할 수 있을까?' 의심이 드는가 보다.  결정을 하지 않고 며칠 일을 시켜보겠다는 속셈으로 질문을 한다.

"정말 하실 수 있겠어요?"


유천

"사장님이 원하신다면 해 보지요."


주인

"좋아요. 알고 보면 인간이란 다 좋은 사람들이에요.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지....

좋은 사람도 나쁘게 대하면 나쁜 사람이 되고, 나쁜 사람도 좋게 대하면 좋아지는 것 아니에요?

개중에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지만.... 환경이 좋지 못하여 망가졌구나 생각하고 '손해 보고 만다' 여기면 어려울 것이 없어요."


교회보다 대화하기가 수월함을 느끼며 유천이

"아 그래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해 볼게요." 한다.


구두로 계약을 하고 난 주인이 가족 된 듯 친근감을 느끼며 궁금했던 질문을 한다.

"그런데 본래 무얼 하셨어요? 막일하실 분은 아니신 듯 보이는데."


유천

"전도사예요."


주인

"그러면 교회에서 일을 하셔야지 왜 이런 일을 하려 하세요."


유천

"글쎄요.... 교회에서 일을 해 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인격이 아직 덜 성숙한 모양이에요. 믿음도 부족하고….."


주인

 "그럴 리 있나요.

교회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인간관계가 힘들 테지요.

그런데 이해가 잘 안 되는군요.

당연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마음이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모든 부분에서 사회의 모범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고….."


유천

"저도 그럴 거라 생각을 했는데. 막상 해 보니 인간이 사는 동네는 어디든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을 믿어도 서로 믿음과 생각이 다르고 자기 욕심과 주장이 있으니까요.

무엇이든 은혜롭게 처리를 하려니 질서가 없어져 오히려 혼란이 올 때도 있고."


주인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은혜 많은 곳에 그래서 죄가 넘치게 되는 거군요."

아..... 죄 많은 곳에 은혜가 많은 것인데."


유천

"죄 많은 곳에 은혜도 많고, 은혜 많은 곳에 죄도 많아요.

돈 내고 나오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회사에서는 돈 받으며 다니는데..... "

 

곽상훈

"사회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사람들이 교회에서 인정받으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으니 더 어려워지기도 할 거예요.  나도 교회 나가서 돈 좀 내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들 때가 있었거든요.

이렇게 돈 돈 돈만 하며 살다 죽을 것이 아니고 거룩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에 교회를 나갈까 생각할 때도 있었어요."


유천

 "그런데 왜 나가지 않으셨어요?"


곽상훈

"거룩하고 근엄하게 살 자신이 없더라고요. 생긴 대로 사는 것이 편하겠다 생각했어요.

갈등하다 싸움하는 것을 보고 허황된 생각을 접어 버렸죠."


유천

"그러셨군요. 사회야 돈과 학식과 직위에 따라 질서가 저절로 잡히지만 교회에서는 모두가 동등하니까. 그러니 목소리 크고 억세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주도를 하게 되기도 해요."


곽상훈

"그런데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있어요.

세상 사람들은 싸우고 술 한잔 마시며 화해도 잘하는데 교회에서는 깨질 때까지 싸우더라고요."


유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싸워서 그래요. 타협할 수 없는 사단과의 싸움인데 어떻게 화해할 수 있어요. 그래서 종교 간의 싸움은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지요."


곽상훈

"희생하며 섬기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요?"   


유천

"사실 그들 때문에 교회가 유지되지요. 그러나 그들이 희생하는 것에 비하면 결과는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안타까워요."


곽상훈

"순수하고 정직한 사람들이 기득권이 되어야 하는데…..

앞으로 더 좋은 이야기 할 기회가 많이 있으니…..

전도사님은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일 하실 수 있으세요?


유천

"시간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어요."


곽상훈

"그러면 오전 6시부터 오후 3시까지 괜찮을까요?"


유천

"네 좋아요. 그렇게 하지요. 그럼 내일 오전 6시에 뵙겠습니다."


마켓을 나오며 유천은 교회에서 느끼지 못했던 평안을 느낀다.

"먹고사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곳에서 평안을 누리는 이유가 무얼까?"

경건의 교만이 없는 곳에서 누릴 수 있는 평안 같아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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