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이 주는 행복을 목회 은퇴를 하고 누리다
목회 은퇴를 하고 블루와 화이트 골드 칼라가 되어 행복을 누린다.
목회할 땐 행복을 누리지 못했던 모양이지?
은혜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인도도 받지 못하며 목회를 했으니 삯꾼 목자일 테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추측이다.
한 해가 새해로 바뀌는 0시가 되면
맑고 순수한 영혼이 되어 내면세계로, 진리를 깨닫게 하며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으며 행복한 삶을 성도들이 살기를 기원하며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성도님들 가정 한 명 한 명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 기도를 다 하고 나면 새벽이 되었다.
땀으로 함빡 젖은 옷을 찬 공기로 식히며 집으로 돌아와
무속 신앙에 한 몫 보태는 삶에 허탈해하다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사랑의 문화라 위로하며 새해를 출발하곤 했다.
그렇게 하는 목회가
더러는 무속 신앙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며 신비한 능력을 구하고,
더러는 울법주의 신앙으로 법을 따지며 비난을 일삼고
더러는 사회적인 신분 상승을 위하여 직분을 바라고
더러는 기득권이 되어 교회를 좌지우지하려 하고
더러는 진리를 향한 목마름으로 초롱초롱 눈빛 내는 성도님들을
각기 다르게 대하다 보면 어느새 길을 잃고 갈팡질팡거린다.
이럴 때 왜? 헌금을 강요해서 축복받도록 하지 않느냐는 항의를 받으면 다리가 풀린다.
경건한 가면을 쓰고 적절한 처세로 하는 목회를 계속할 의미가 있을까?
갈등하다 진리에 갈증을 느끼는 이들이 눈에 밟혀 마음을 새롭게 한다.
내일은 나아지겠지, 희망을 품고 하루하루를 지내다 성도들의 감정을 뜨겁게 하려는 시도와,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성도들을 더 모으려는 나를 알아차리고 부끄러움에 숨고 싶었다.
그러다 가정도 돌보지 못하는 무능함이 느껴져 인간이 과연 성직을 행할 수 있을까? 외로움에 떨었다.
마침내 무거운 짐을 나이가 벗겨주어 자유한 영혼이 되었다.
더러는 문학적인 해석으로, 더러는 역사 속에서 진리를 찾아내어 지혜를 얻고, 더러는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며 성경과 자연과 나의 내면으로 통하여 들려주시는 음성을 들으며 가족과 친구들과 자연과 문명과 예술과의 관계를 친밀히 하며 어릴 적부터 질문하며 시작한 신앙 정리를 한다.
블루칼라가 되어 의림지 피재골 둘레길을 걷고 또 걸으며 아름답고 신비한 자연을 즐기고
걷고 또 걸으며 공급받은 산소를 뇌세포에 골고루 나눠줄 때 새싹처럼 피어오르는 신선한 생각들을 모으는 골드칼라가 된다. 그리고 화이트 칼라가 되어 책상에 앉아 모아진 이야기들을 글로 옮긴다.
걷고, 피어오르는 생각들을 모으고 쓰며 가족들과 친지들과 뜻이 같은 이들과 사랑과 지혜를 나누고, 다름과 이기심과 욕심에서 오는 다툼은 사랑싸움으로 승화시키며 천국에서 누리는 행복을 목회 은퇴 후에야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