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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준호 Feb 20. 2023

천국의 맛을 보면 변할 걸

유천은 초등학교 4학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평창으로 이사를 가신 후 방학 한 다음 날이면 외갓집으로 간다. 몇 년 후부터는 유상이와 유승이도, 몇 년이 지난 후에는 유미와 유희도 함께하였다. 여름 방학이 되어 평창으로 간 유천은 할머니와 함께 강 건너 높이 솟은 백덕산으로 자루를 메고 머루 다래를 따러 간다.


얼굴에 땀이 비오 듯 흐르는 할머니를 유천이 애처롭게 바라보며

"할머니 괜찮아?"  


할머니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유천을 응시하며

"괜찮아!  너도 땀으로 목욕한 것 같구나."

  

할머니는 손자의 얼굴에 흐르는 땀이 자신의 피붙이 임이 확인되어서 일까? 자신을 닮은 모습이 신비하여서 일까? 일체감을 느껴서 일까? 행복에 겹고 힘든 줄도 모른다.

   

유천은 흐뭇해하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학교에서 청소를 할 때면 선생님께 늘 칭찬을 받곤 했어요. 땀을 많이 흘려서요.


그러나 선생님이 칭찬하고 돌아가신 후엔 친구들에게 불평을 듣곤 했어요.

똑 같이 청소를 했는데 나 혼자만 칭찬을 받는다고….

칭찬받는 만큼 더 열심히 하려고도 했지만 미안도 했어요.”

 

할머니는 손자를 대견스레 바라보며

"열심히 했으니 땀도 나고 칭찬을 받은 것이지."


할머니는 자기를 닮은 손자의 흠뻑 젖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행복을 느낀다.  

  

인적 없는 산에는 칡 다래 머루 넝쿨들이 커다란 참나무를 기둥 삼아 서로 엉켜 터널을 만들며 널브러져 있다. 주위로는 아름드리 소나무들과 함께 어우러진 바위와 틈 사이로 돋아난 이름 모를 식물들이 신비한 태초의 자태를 보이는 듯하다.

 

유천은 비밀스러운 넝쿨 속을 헤치고 터널을 만들고 할머니는 안으로 들어가 머루와 다래를 딴다.

덜 익은 머루와 다래는 자루에 넣고 잘 익은 것은 손자의 입에 넣어 주며 행복에 겹다.


유천은 비오 듯 땀 흘리며 바라보는 할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괜찮아? 할머니’ 한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가   

"푸르른 들풀과 나무들, 그리고 우뚝 솟은 산, 그 위에 하늘과 구름, 졸졸 거리며 하얀 물거품을 만들며 흐르는 계곡 물 모두가 가족 같아. 그리고 머루 다래는 너를 반겨 주는 듯해.


1년에 두 번씩 너희들이 자라 조금씩 달라져 오는 모습을 보는 것이 모두의 즐거움 인가 봐.

너와 함께 있는 이곳이 에덴동산 같은 천국이야."


이상하지!? 너와 함께 이 높은 산을 오르면 무서움도 힘든 줄도 모르니…… "


유천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꼬부라져 연약해 보이는 할머니 얼굴을 안쓰럽게 바라보다 질문을 한다


"천국은 죽은 사람들이 가는 곳 아니야?

 온갖 보물들로 가득한 곳이고.

보이지 않고, 이해되지 않아 믿을 수 없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만 가는 곳이고 …"


할머니가 놀란 표정을 하고


"죽은 사람들만 가는 곳은 아니야.

  살아서 행복을 누리고, 죽어서도 가는 곳이야."


"친구들은 모두 죽으면 가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유천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고 얼버무린다.  


"살아서 천국을 누리는 사람이 죽어서도 가는  곳이지."

할머니가 설명을 한다.


유천이

"살아서 어떻게?"


"지금 우리들처럼. 교감되는 사랑과 신뢰가 질서 안에 있어서 평안이 가득한 곳."

할머니의 대답에 유천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하나님이 지배하는 곳은 어디든 천국이 되지. 하나님이 내 마음을 지배하면 내 마음이 천국이고, 가정을 지배하며 가정이 천국이 되고, 산을 지배하면 산이, 강을 지배하면 강도 천국이 되지."

할머니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이야기한다.


할머니는 산들바람 부는 산 등성이 밑 옹달샘 옆에 앉아 도시락을 푼다.  그리고 참나무 잎을 컵으로 만들어 맑은 샘물을 떠 자신의 입을 벌리며 손자를 마시게 하고는 김밥을 손자의 입에 넣는다. 오물 거리는 손자의 입을 바라보다 다시 김밥을 넣어 주고 옆구리 터진 김밥은 자신의 입에 넣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유천이 질문을 한다.


"할아버지와 둘만 사는 것이 외롭지 않아요?"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할머니께서 대답을 하신다.

"조금은….   그러나 밤엔 찬란한 별들, 낮엔 파란 하늘과 구름, 들의 풀들과 꽃들 나무들 그리고 흐르는 강과 온갖 보물을 품고 있는 듯한 이 산…. 모두 소꿉 동무들 같아. 그리고 너희들 만날 날을 생각하면 행복해. 너희들 오면 줄 먹거리를 준비하며 몸은 더 가벼워지고. 너희들이 훌륭하게 되는 것을 상상하면 괜스레 신이 나. 인간은 생각으로 행복해지기도 불행해지기도 하는 참으로 묘한 존재야."

 

유천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할머니는 내가 무엇이 되길 바라요?"


"글쎄......

 난 네가 사람들을 천국을 누리며 행복하게 하는 목사가 되길 원해."

할머니가 밝은 웃음을 웃으며 대답을 한다.

  

유천이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난 파일럿이 되고 싶은데……

 사실 목사도 생각은 해 보았지만 믿기에는 너무 질문이 많아요. 그리고 거룩하게 살 자신도 없고.

 하나님은 왜 믿기 어려운 것을 믿으라고 하시는지 몰라요. 한 번이라도 보여 주면 그래도 믿을 텐데...."


실망이 되지만 ‘누가 아니 앞으로 펼쳐질 일을.....’ 속으로 중얼거리곤 할머니가

"왜? 파일럿이 되고 싶어?" 하신다.


생기 넘치는 표정을 하고 유천이

"빨간 머플러. 멋있잖아요.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빨간 머플러를 목에 두른 사나이. 사나이 중에 사나이 같지 않아요?"


 "그래?"   하고선 속으로 할머니는 질문이 하나하나 풀리고 “천국의 맛을 알면 마음이 변할걸....” 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할머니와 유천은 깊은 산중 숲 속을 해 질 녘에서야 내려와 자루 속에 있는 머루 다래를 항아리로 옮겨 담는다. 이튿날 아침부터 유천과 유상이는 머루 다래가 든 항아리 둔 방을 들락거린다. 한 알을 가지고 나오면서 먹고 또다시 뒤 돌아 들어가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닿았다 하며 말랑말랑한 것을 골라  한 알 먹고 또 한 알 먹기를 그칠 줄 모른다. 한나절이 아직 채 되지도 않았는데 빈 항아리가 되어 버렸다. 덜 익은 것을 만지고 또 만져 말랑말랑 해 진 것인지, 아직 떫은 것에 있는 작은 단 맛을 즐기며 먹어 버린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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