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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준호 Feb 16. 2023

손녀 손톱에 물들이며 익히는 사랑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며 누리를 행복  

봉숭아 씨앗을 꽃밭에 심고 정성스레 물을 주었다.

두어 달이나 지났을까? 은혜에 답이라도 하는 듯 새싹을 틔우고 자라 고운 다홍색 꽃을 피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할머니 사위 딸 손녀 손자가 리빙룸에 둘러앉아 수다를 떤다.

난 살그머니 꽃밭으로 가 봉숭아 꽃잎을 땄다.

그리고 리빙룸으로 돌아와 접시에 백반과 함께 담긴 꽃잎을 콕콕 찧는다.


어느새 가족 모두의 머리들이 모아져 둥근 지붕을 만든다.  

사랑의 열기가 후끈거리는 둥근 지붕 아래서 콧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손녀의 작고 여린 손톱 하나하나 위에 이겨진 봉숭아를 할아버지는 가지런히 올려놓고

엄마는 하얀 헝겊으로 감싸 묶는다.

숨소리만 색색 들리는 고요함에서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성스러운 예식이 치러지는 듯하다.  


예쁘게 물든 손톱의 기대에 손녀와 온 가족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곱게 만들어진 하얀 고깔모자를 쓴 열 손가락을 소중하게 받들고 손녀는 몸을 굴려 침대에 오른다.

잠자리를 휘저으며 꿈나라로 가더니 행여 고깔모자가 다칠까 단아하게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잠을 청하는 모습이 애처로워 더 사랑스럽다.


어떻게 물들었을까? 상상하느라 설친 잠에서 깬 손녀가 다소곳 온 가족의 얼굴들이 만든 지붕 아래 앉았다.

고깔모자 하나하나가 벗겨질 때 가족 모두가 탄성을 지른다. "예쁘다"

 

열기 있는 지붕 아래서 가족 모두가 다홍색 손톱을 만지고 보며 신비를 누리고,

손녀는 사랑과 아름다움에 겨워 천국을 소유한 미소를 짓는다.


자연과 인간이 만나 아름다움과 행복을 만드는 성스러운 예식을 마친 가족의 사랑이 잘 익은 술 같다.


인간은 어머니 몸을 빌려 이별의 아픔을 맛보며 세상에 태어난다.

그리고 하나 되고 싶은 욕망으로 부부의 연을 맺고 하나 되어 태어난 생명들이 다시 사랑 안에서 가정을 이루고 사랑이 주는 능력으로 세상을 이길 힘을 얻고 산다.


이 사랑을 무언가가 질투하는가 보다.

선악과 다름이 뒤섞여 상처를 주고받기 일쑤다.


이러한 시대에 가족이 둘러앉아 자신으로 인해 하나 되며 사랑을 익히며 행복 누림을 보고 봉숭아가 꽃밭에서 미소 짓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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