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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준호 Mar 01. 2023

눈 속에서 잉태된 사랑과 신앙

비포장 도로를 덜컹 거리며 달리던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며 멈춘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손을 휘저어 먼지를 쫓으며 꼬부라진 할머니가 무릎을 짚고 힘겹게 허리를 펴며 일어난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는 손님들을 살피다 손자들을 발견하곤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허우적 거린다.


반년 만에 사랑을 만나는 기쁨의 눈물일까? 외로움의 눈물이 모아 젔다 터져 나오는 것일까? 눈물을 옷소매로 훔쳐내곤 유천과 유상의 손을 차례로 감싸 잡고 볼을 비빈다.


버스가 떠난 후에도 손자들을 아래위로 훑어보고 만지기를 거듭하다 셋은 밭 갓 외길로  들어서 걷기 시작을 한다. 서로 돌아서 얼굴보기를 거듭하며 걷는 사이 평창 강 뒤로 우뚝 선 백덕산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초가집에 다 달았다. 사립문 문 밖에서 서성이다 빙긋이 웃으며 할아버지께 반긴다. 유천과 유상은 허리를 깊게 숙이고 인사를 한다.

"안녕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 대견스레

"많이 컸구나. 반년 사이에."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겸연쩍은 상봉을 마친 유천과 유상은 뜨락을 오르고 마루를 지나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서는 벽과 천장을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낯설어하는 손자들에게 할머니는 가을 내내 이웃에게 얻어 말린 평창 강의 생선을 내어 놓으며

"배고프겠다. 우선 이것 먹어라" 하신다.


맛있게 먹는 손자들을 얼 나간 듯 바라보다 땅 속에 묻어둔 밤을 꺼내려 밖으로 나간다. 마른 생선을 뜯어먹으며 일어나 따르는 손자들 흘끗 흘끗 돌아보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밤이 묻힌 곳 앞에 섰다. 손자들을 그리며 정성스레 가을에 주어 묻어둔 밤을 꺼내며 힘이 솟고 행복에 겹다.


시간이 사라진 듯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눈발이 날리다 함박눈으로 변한다. 달도 별도 없는 밤 소복소복 내린 흰눈이 천지를 은은하게 비춘다. 백덕산 줄기의 산봉우리를 휘감아 도는 평창강을 바라보며 초가 군락을 형성한 도돈 마을이 하얗게 변하여 성스럽다.


포근하게 눈 덮인 지붕 아래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 손자 둘이 누웠다. 유상이는 곧 잠들어 버리고 유천은 사랑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할머니를 초롱 초롱한 눈으로 측은하게 바라본다.


말 상대 없이 지내던 할머니는 말 귀를 알아들을 만하게 자란 외손자를 사랑스레 바라보며 가슴속에 담겨있던 이야기를 소곤소곤 털어놓는다.


"난 평생 다섯 명의 아들과 딸 둘을 낳았다. 그런데 딸들은 건강한데 아들들은 모두 병에 걸리 더구나."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긴 한숨을 내 쉬곤 이야기를 잇는다.

"아들 하나하나가 병들 때마다 절에 가서 정성을 다해 시주를 하고는 수 없이 많은 절을 하며 빌고 또 빌었다. 혹시 부정이라도 탈 까 봐 목욕을 깨끗이 하고..... 추수 때는 시주할 벼를 따로 베었지. 그리고 손으로 한 톨 한 톨 탈곡 한 벼를 방앗간에서 곱게 정미를 했어.  이렇게 준비한 쌀을 이고 반나절을 송학 산 절에 올라 부처님께 공양을 했지. 그리고 절하고 또 절하며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다.


그런데도 병든 아들이 낫지를 않는 거야. 그래서 별들에게도, 서낭당의 큰 소나무에게도 능력 있다 여겨지는 것이면 무엇에게든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다. 효험이 있을 거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했어. 무당을 들여 굿도 해 보고, 점쟁이가 시키는 대로 다 해보았다. 아들 살리는 일인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니? 그중에 하나만이라도 맞으면 되는 거 아니야?"  


할머니가 눈물이 글썽 해지면서

"그러나 아들 대신 나를 데려가라며 기도를 했는데도 하나도 들어주지를 않더구나. 그렇게 한 명 한 명 아들 5명이 일제 식민지 시대와 6.25 전쟁을 지나며 다 잃고 말았다."   


할머니는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들이쉬고 내 쉬신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쓴웃음을 웃으며  

 "이런 중 살아남은 두 딸이 하나는 네 어머니이고 하나는 네 이모야."


유천이 안쓰럽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며 묻는다.

"엄마와 이모는 병에 안 걸렸어요?"


할머니가 허탈한 웃음을 웃으며  

"잔병치레도 한번 하지 않더라. 그러니 미워지는 거 있지. '딸이 병에 걸리지 하필이면 왜 아들만 걸려!' 하는 생각도 들더라. 그러다 너의 엄마와 이모를 보니 죄책감이 들어 괴롭기도 했고..... 그래서 서낭당과 절에서 그리고 별들에게도 잘못했다고 싹싹 두 손을 비비며 빌었지. 그리고 좋다는 약이라면 무엇이든 먹으며 아들을  낳으려 별의별 짓을 다 했어. 그러는 사이에도 세월은 흘러 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나이가 되고 만 거야. 그러니 할아버지는 씨받이를 들이 더구나."


유천이 몸을 일으키며

"씨 받이가 뭐야?"


할머니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신 아이를 낳아 주는 사람."


유천이 놀란 눈으로

"할머니 대신?"


할머니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이신다.


유천이 할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한 집에 살며?"


할머니 : 그럼

유천 : 밉지 않았어요?


빙그레 웃으며 할머니가 대답을 하신다.

"왜 밉지 않겠니.

미운 것보다 나 자신이 더 비참해지더라.

세상에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고.

'무슨 큰 잘못을 해서 이렇게 저주를 받나?' 하는 생각에 외롭고 괴로웠어.

'아들도 하나 키우지 못하는 것이 살아서 무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유천이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한다.


유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할머니는

 "죽고 싶었지

그러나 죽을 용기가 없었다.

네 할아버지가 씨받이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자존심도 상하고 질투도 생기지만 독한 마음이 들더라.

'어떻게 해서든지 조물주에게 잘 보여 축복을 받아야 되겠다' 다짐을 했다.


그래서 씨받이가 밉고 죽이고 싶은 마음도 생겼지만 더 잘해 주려고 했다. 어쩌겠니. 내가 더 이상 아들을 낳지를 못하는데. 씨 받이가 아들을 낳으면 난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겠고, 못 낳아도 걱정이고….. 남몰래 많이 울었지. 하늘을 보며 원망도 했다. 신세 한탄을 많이도 했지. 그러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씨받이가 아들을 낳아 주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또 했어."


의아한 눈으로 유천이

 "어떻게 미운 사람을 위해 기도 할 수가 있어요? 아들을 낳으면 찬 밥 신세가 되는데….."  


할머니는 쓴웃음을 웃으며

"마음을 곱게 써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 같아서 억지로라도 했지. 신이 하시는 축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니….. 씨받이를 미워하면 오히려 해가 될 것 같아서 더 했다. 못된 생각이 생길 때마다 마음을 고쳐 먹고 또 고쳐 먹었어. 그리고 정성을 다해 절을 다니고, 나그네들을 대접하며 씨받이를 통해서라도 집안에 대 끊기는 일을 막아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데도 허망하게 할아버지께서 씨받이를 내보내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천이 질문을 한다.

 "왜요?"


할머니가 헛웃음을 웃으며

 "모르지. 물어보지도 않았어.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고.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를 않았어."


유천이 가벼워진 마음으로 반응을 한다.

"시원했겠어요."


할머니

 "그랬지.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그런데 허무한 생각도 들더라. '절을 다니고 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때부터 부처님을 믿는 것도 서낭당에서 비는 것도 모두 그만 두어 버렸어.


그런데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더라.


의지하던 모든 것을 버리니 더 허탈해지고 외로워지는 거 있지. 세상에 좋은 것도 의욕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아마도 그때가 내 일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을 때 고래미에 사시는 구 권사님이 나를 자주 찾아와 위로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가시곤 했어. 참으로 고마분이지. 그런데 한편으로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거야. 교회에 같이 가자. 권유를 했으면 좋겠는데. 하시지를 않는 거야. 같이 가자고 해도 가지도 않을 거면서."


"왜 아들을 살리기 위해 별의별 짓 다하며 교회는 가지 않았어요?"


유천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질문을 한다.


할머니께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절에 다니며 교회를 가는 것이 마음에서 허락 되지를 않았어."


유천이 할머니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따지듯

"무당에 가서 굿도 하고, 서낭당에서 빌기도 했잖아요."


할머니께서 손자의 질문이 날카로워진 것에 흐뭇하기도 당황하기도 하면서

"글세, 깊이 생각은 해 보지 않았어. 동양 귀신에 나는 익숙돼 있고 서양 귀신은 낯설어서였는지,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한다는 말에 빌 가치도 없다고 생각을 해서였는지,

 동양 귀신을 섬기다 서양 귀신을 섬기면 동양 귀신이 질투할 것 같아서였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교회는 내가 가서 빌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


유천이 고개를 갸웃 둥 하고서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면서요."


할머니가 쓴웃음을 웃으며   

"아들 다섯을 모두 잃은 후에야 교회에 관심이 생겼어. '그쪽에 가서 빌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구 권사님의 인품에 끌리기도 하였고."


유천이 안타까운 표정을 하며

 "교회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그랬어요!"  


할머니가 생각에 잠기다

 "글쎄, 괜스레 구차한 생각이 들었어. 구걸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그런데 점점 더 권사님이 다녀 가신 후에는 교회가 궁금해지는 거야. 그곳에는 내 기도를 들어줄 하나님이 계실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내가 그곳에 가서 기도하면 바로 들어주실 것 같은 마음도 생기고. 구 권사님은 나와는 다른 사람 같이 보이기도 하고…."


유천이 안스러운 표정으로 

"권사님이 부러웠겠네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떡이며

 "부러웠지. 품위도 있어 보이고…. 축복받은 사람, 거룩한 사람. 그래서 어려움이 하나도 없는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어. 예전에는 권사님이 집에 와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할 때, 사실, 하고 있는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어. 그래서 건성으로 듣고 대답을 하곤 했지.


교회 가자는 이야기는 언제 나올까 기대를 하면서..... 그러다 돌아가실 땐 허전하고 서운한 생각이 들었어.  권사님이 오실 때면 '오늘은 교회에 같이 가자고 이야기하시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에 목마름이 생기곤 했어. 별의별 상상을 다 하며..... 나와 같이 교회 다니는 것을 싫어하시는 걸까? 나 같은 것은 교회에 가면 안 되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 인심 잃고 살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렇게 지나던 어느 날이었어. ‘예수를 같이 믿으시면 좋을 것 같다’고 권사님이 어렵게 말씀을 하시는 거야.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피느라 말까지 더듬거리며…."


유천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권사님은 왜 그동안 같이 신앙생활을 하자고 말씀하지를 않으셨지요? 교회에서는 전도하라고 가르친다는데."


할머니께서 웃으시며

"내가 절을 다녔으니까. 내 눈치를 보신 것이지. 지금은 가지 않아도 절을 완전히 떠났는지 아닌지 분별이 안되었던 모양이야. 절을 다니는데 교회를 가자고 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으니 ….."


유천이 할머니 동의를 구하는 듯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깊은 분이시네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떡이며

"그래서 동네에서 존경을 받았는가 봐."


유천이 궁금한 것을 다시 생각해 낸 듯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한다.


할머니가 쑥스러운 웃음을 웃으며   

 "권사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얼른 '그렇게 할게요' 대답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를 않는 거야. 그래서 ‘나 같은 것도 교회 갈 수 있어요?’ 하고 되물었지."


유천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러니 뭐라고 하세요?"


할머니께서 천천히

"물론이지요. 저 같은 것도 다니는데요. 그러시더라. 그러면서 예수님이 그러셨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죄지은 자도 오라, 목마른 자도 오라 와서 값없이 먹고 마시라.’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핑 도는 거 있지. 그리고 위로가 되고 새로운 힘이 솟더라. 사랑도 느껴지고…."


유천이 할머니 눈을 바라보며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할머니가 대답을 하신다.

"’잘 지도해 주세요.’ 했지. 그때부터 난 교회에 나가서 권사님이 어떻게 하는지 살피며 권사님이 하는 대로 열심히 따라 했어. 정성을 다해…. 그리고 열심히 빌고 또 빌었어. 연보도 열심히 하면서….."


유천이 오기심 어린 눈으로

 "뭐라고 빌었어요?"


할머니 빙그레 웃으며

 "그냥 빌었지. 하나님이 사랑만 해 주시면 좋은 일 알아서 주실 거라 믿고서. 그런데 그러다 보면 꼭 눈물이 나왔어. 그래서 늘 울기만 했어.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 하나님을 대하 듯하려고 했고.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했는데 그 나그네가 천사였었다고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말씀을 듣고서…. 평상시에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한 일이기는 한데.  그것만이 아니었어. 첫 수학한 곡식은 무조건 하나님께 바쳤지."


유천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무엇이든 다?”


할머니가 당연하다는 듯

"그럼. 호박 오이 무 배추….  논과 밭에서 나는 것은 모두. 닭이 첫 계란을 낳으면 그것도 가장 먼저 목사님께 드렸어. 첫 알이라서 피가 빨갛게 묻었었지. 그것을 잘 닦아 가지고."


유천이 질문을 한다,

 "그렇게 열심히 섬기면서 달라진 것이 있었어요?"


할머니가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아니!  아무것도"


유천이 다시 호기심이 발동한 듯

 "그런데 무엇하러 그렇게 열심히 했어요?"


할머니 : 아직 정성이 하나님께 전달되지 않았는데 무엇을 주시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목사님이 그러시더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시라고.  그리고 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되면 복을 주신다고…..' 하나님의 때가 언제가 될지 누가 알겠니? 그래서 좋은 일을 놓치지 않으려 언제나 변함없이 열심히 섬겼지.


유천 :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열심히 섬겼어요?


할머니 : 정성을 다해 섬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적당히 체면치레로 하는 사람도 있었고,

마지못해 하는 사람도 있었지.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런데 얌체처럼 믿는데도 신비하게 축복을 많이 받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떡고물 같은 부스러기도 하나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유천 : 그 사람들은 어떤 축복을 받았는데요?


할머니 : 아들 딸도 잘 낳고, 땅도 잘 사들이고…… 그러니 난 점점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거야. 나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인가?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시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유천 :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할머니 : 목사님께 모두 말씀을 드렸지.


유천 : 목사님이 뭐라고 하세요?


할머니 : 교회를 다니면 사단이 방해를 많이 한다고 하시더라. 의심 마귀가 찾아오기도, 주위 사람들이 싸움을 걸어오기도, 어려운 일을 만나 낙심도 하게 된다는 거야. 그러나 그 시험을 이기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해 주신다는 거야.


유천 : 하긴 들어가자마자 축복을 주면 그것 다 받아먹고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


할머니 : 그래서 의심과 서운 한 마음이 들 때 변덕스러운 감정을 이기고 또 이겼지. 주기도문을 외우고 찬송하며 사단의 역사를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면서.... 정성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날이면 신비한 기적도 보여 주시고 더 큰 축복을 줄 거라 기대하고 최선을 다 했어. 그러다 문득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주어지는 복을 나만 빼놓는구나 하는 섭섭한 생각이 또 드는 거 있지.


유천 : 사단이 주는 시험이었네요.


할머니 : 그런데 그때는 사단의 시험이란 생각이 들지를 않았어. 완전히 버림받은 존재가 된 것 같고 점점 외롭고 쓸쓸해지더라. 그 마음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하나님도 도와주시지 않고…..


유천 : 왜 하나님은 그렇게 실망하도록 버려두셨을까요?


할머니 : 나도 모르지. 하나님이 있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더라고.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잖아! 그렇게 선을 베풀며 열심을 다해 섬겼는데….. 그런데 더 억울한 것은 동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고, 피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거야. 하긴 아들이 5명이나 죽었는데 바로 보이겠어? 가까이하기가 꺼려졌겠지. 버림받은 사람과 가까이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고…. 뭔가 보이지 않는 큰 죄가 있으니 그럴 것이라 생각했겠지. 부정 탄 사람이라 여기기도 했을 것이고…. 그래서 나를 피하려는 것 같았어.


이때부터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거야. 화단에 피는 백일홍과 채송화도,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들도, 들꽃과 벌 나비도, 농사가 잘 되어 풍년이 드는 것도 모두 헛 된 것으로 느껴지는 거야. 봄이 되어 동네 사람들과 함께 강으로 나가하는 천렵도. 모두 재미가 없어져 버렸어.  


유천 : 전에는 그런 것 좋아했어요?


할머니 : 그럼, 내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여름에 봉숭아 꽃을 손톱에 물들이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 봉숭아 꽃을 따서 그릇에 담아 방망이로 콕콕콕 찧어 너희 엄마와 이모의 손톱 위에 묶어 주고 잠을 재우곤 했다. 그러면 너희 엄마와 이모는 밤에 예쁘게 손가락 물드는 꿈을 꾸며 잠을 설치곤 했지. 손톱에 묶여 있는 봉숭아가 잘못될까 꼼짝 못 하고 누워 잠자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안쓰럽기도 헸고. 그런데 그것을 보는 행복이 참으로 컸어. 이튿날 아침, 싸맨 손가락을 풀면 봉숭아 꽃 물이 손톱에 얼마나 은은하게 예쁘게 들어 있는지 몰라. 그때 너희 엄마와 이모가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난 덩달아 행복했고…..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모두 쓸데없는 것이라 여겨지더라. 세상살이가 다 의미 없고 허무하게 느껴지고. 딸들과 이웃 그리고 풀 벌레들, 나무, 하늘의 별들까지도 다 나를 외면하는 것 같았어. 우주로부터 버림받아 홀로 된 외로움을 느꼈어.


할머니는 큰 숨을 몰아 쉰다.

 "그렇게 우울하게 하루하루를 지내는데 점점 기운이 없어지는 거야."


유천 : 아픈 곳도 없이?


할머니 : 응, 밥도 먹기 싫어지고. 그러던 어느 날부터 먹어야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려니 넘어가지를 않는 거야. 무서운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 그래서 억지로라도 먹으려 했는데 안 되더라고. 먹고 마시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먹고 마시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그 두려움은 말할 수 없이 컸어.


유천 :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할머니 :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 그냥 누워있을 수밖에….


유천 : 병원을 가 보았어요?


할머니 : 그땐 병원이 없었어. 난리 통이고.

이때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 것을 알았다.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엔 들더라.

그런데 죽을까 봐 두렵다,  죽고 싶은 생각이 또 들다

살아 보려고 좋다는 약이라면 무엇이든 다 먹기 시작을 했어.


그러나 약을 억지로 먹고 또 먹어도 효과가 없는 거야.

그러니 할아버지는 날 등에 업고 용한 의원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거 있지.  


할머니가 수줍은 웃음을 웃으며

"할아버지 등에 업혀 다니며 아무 효험 없어 초조해지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론 행복한 거야.

'죽게 되니 남편 등에 업혀 보게 되는구나' 하면서….


유천이 놀란 표정으로   

"전에는 할아버지 등에 업혀 본 적이 없었어요?"


할머니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없었지. 그런 일은 망측하다고 생각했으니…."


할머니가 한숨을 쉬면서

"세상살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인간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를 것이란 생각도 들고….  죽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좋고 한편으로는 두렵고 외롭고…..”


할머니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러다 더 이상 약 먹는 것과 용한 의원 찾아다니는 것을 포기하게 되더라. 무엇을 해도 효험이 없으니…… 그리고 방에 꼼짝 못 하고 누워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되었지."


유천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아무것도 못 먹고?"


"물만 조금씩 마셨지. 그런데 그렇게 몸이 아파 거동을 할 수 없는데 귀는 그렇게 밝은지….

밖에서 사람들이 소곤거리며 하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잘 들리는 거야."

할머니께서 대답을 하신다.


유천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무슨 이야기를 해요?"  


할머니가 쓴웃음을 웃으며   

"죽은 사람 염 할 때 사용할 삼배 사 오는 이야기, 묘지를 어디에 쓸까 하는 이야기….

내 앞에 와서는 '곧 낫게 될 거라' 이야기를 하고는 자기들끼리 내 장사 지낼 준비를 하고 있는 거 있지.


할머니께서 한숨을 크게 쉬고서

"그땐 배신감과 함께 외롭고 절망스러움이 얼마나 컸던지…..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는다며 눈물까지 흘리며 간절하게 기도를 해 놓고서….."


유천이 속상한 표정을 하며

"누가 그렇게 기도를 했어요?"


할머니가 더듬거리며

"목사님이 오실 때마다 교인들 친지들 모두 따라 들어와 함께 울며 불며 기도를 했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며.

그리고 빨리 건강해져 함께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자고 모두 한 마디씩 하면서....


그럴 때는 낫겠다는 희망이 생겼어.

병마와 싸울 의지도 생기고, 기도 해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고.


특별히 목사님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마가 물러갈 지어다' 명령하는 기도를 할 때는 곧 낫게 될 거라는 확신까지 들었어.


나도 '아멘, 아멘' 하며 더 열심히 응답을 했어.

믿음대로 된다는 말을 믿었던 것이지.

그리고 일어나면 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다짐도 했고."


유천이 화난 소리로

 "그렇게 기도한 사람들이 방을 나가서 자기들끼리 장례 준비를 해요?"


할머니 한숨을 쉬며

"기가 막히더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우롱할 수가 있어?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다고 바보 취급하는 거잖아. 그땐 너무 외롭고 고통스러웠어."


유천이 혀를 차며

"그럴 것이면 왜 기도를 해!  응답받는다는 신뢰도 하지 않으며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소리는 왜 해!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쇼하는 거잖아!"


할머니는 유천을 진정시키려는 듯  

 "나를 안심시키려고 그랬던 거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유천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할머니 : 그래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너무 속이 상했어.

신앙의 허구스러움과 이중성을 삭히는 것도 힘이 들었고.


그 후로는 사람들이 와서 낫게 해 달라 기도를 하면 화가 나는 거 있지.

믿지도 않으면서 나 듣기 좋으라고 입에 발린 기도하는 입을 찢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어.

그 사람이 거짓된 사람으로 보이고.


그래서 기도를 마친 다음 얼굴을 다시 자세히 보곤 했어. 그리고 저 사람의 진정한 속은 무엇일까? 의심하며 고민도 하고."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유천이

"그럼 기도하지 말라고 그러지 그러셨어요!"


할머니 : 그만해 소리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 그러나 그럴 용기는 없었어.

어떻게 기도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감히 할 수가 있니? 하나님이 서운해하실 것 같은 마음도 들고.


나를 위해 하는 일인데 부끄럽게 만들 필요까지는 없잖아. 그래서 참고 또 참았지.


그러며 차라리 낫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할 바에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기도 해 주면 좋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지.


그래도 그렇게 기도해 달라고는 말할 수가 없더라. 사실은 낫게 해 달라는 소리가 좋기도 했어.

그러나 그렇게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하나님께 원망이 생기는 거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렇게 성경에서 강조하며 하신 말씀이 헛말이라는 생각이 들고....


정말 하나님 계실까? 의심이 생기는 거야. 더욱 내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는데 기도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까지 믿을 수가 없게 되니 더 허망하고 외로워 눈물만 하염없이 흐르고.


 난 이대로 아픔만 경험하는 인생을 살다 허무하게 죽는구나 생각이 들면서 두렵고 서럽더라.

알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 하나도 없고.


 모두가 날 속이는 존재들인 것 같아 혼자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지.

큰 소리 내어 마음껏 울었어.


다른 사람들 하나도 의식하지 않고. 그날 밤이었어.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어. 그것이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 내가 깊고 캄캄한 좁은 구덩이로 한없이 떨어지는 거야.


떨어지며 보니 내가 있던 곳은 환한 빛이 있는 곳이었는데 그곳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거야.

그리고 그 빛이 가물가물해지며 희미해져 곧 사라지게 될 것 같은 순간이었어. 이것이 내 인생의 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유천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무섭지 않았어요?"


할머니 : 무서운 생각은 없었고. 그냥 이대로 떨어져 내 인생을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독하게 드는 거 있지.

그래서 위를 향해 손을 들고 젖 먹은 힘을 다해 흔들며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을 했어.


주님! 나를 이대로 버리실 겁니까? 주님! 주님! 큰 소리로 부르고 또 불렀어. 큰 소리로 울면서.


유천이 눈을 찡그리고  

 "밥 먹을 힘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큰 소리를 칠 수 있었어요?"


할머니 : 그것이 기적이었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평생을 살면서 겪은 모든 아픔과 설움이 이 부르짖음에 담겨 터져 나오는 것 같았어.


체면이고 뭐고 없이 처절하게 울부짖었어.  


바로 그때였어. 위를 보니 내가 떨어지기 시작한 아주 먼 곳에서 꺼져 가던 작은 불빛이 다시 살아나는 거야. 그리고 조금씩 밝아져 나를 비추기 시작하는 거야. 그리고 깊고 어두운 구덩이로부터 밝은 빛이 비치는 곳으로 내가 다시 서서히 오르기 시작을 하는 거야.


"새 깃털처럼?

유천이 천진스럽게 묻는다.


할머니 : 아니, 깃털보다 더 가볍게, 성스러운 하얀 깃털로 된 천사의 옷을 입은 것처럼….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어. 


근심과 걱정 외로움 모두가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거야. 사랑받고 있음이 느껴지고…. 


천국이 이런 것이로구나!  상상이 되었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거 같았어. 꿈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 후 난 점점 기운을 차리게 되었지." 


할머니가 평온한 모습으로 이야기한다. 


유천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로 일어났어요?”

  

"아니, 새로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을 해서 물을 마셔 보았지. 마실 수가 있는 거야. 그다음 죽을 먹고 그리고 이튿날 밥을 조금 먹게 되었지. 이렇게 되니 내 임종을 보고 장사 지내려 모였던 친지들이 머쓱해하며 모두들 돌아가게 되었어. 죽어야 하는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나게 되니…… 몰라….. 그들이 돌아가며 무어라 말을 했는지…." 


할머니가 미소 띤 얼굴로 이야기한다.


유천이

"고개를 갸우뚱갸우뚱거리며 ‘이상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분명히 죽을 줄 알았는데…..  ‘ 그러지 않았겠어요?"

  

"모르지. ‘파놓은 묘지는 다시 매워야 하나? 그냥 두어야 하나? 사놓은 삼배는 물려야 하나? 다시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나? 목사님 기도의 응답일까? 저절로 낫게 된 걸까?’ 그러지 않았겠어?"


할머니가 반주 넣듯 반응을 한다.


유천이 

"목사님 기도의 응답은 아닐 거예요. 응답될 거라고 믿지도 않고 체면치레로 했는데… 할머니의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 같아요."

    

"목사님이 빈말로야 했겠어?  그리고 남의 진심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심각한 죄라고 생각해. 


여하튼 난 홀로 죽음에 이른 무서운 고독 함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품을 느끼는 신비한 기쁨을 경험하게 되었어. 그때부터 난 홀로가 아닌 느낌이 들었어. 그리고 내게 빛을 비추신 분이 하나님이라 믿어지고 그분에게 사랑받음이 느껴지게 되었어."


할머니가 차분이 말씀을 하신다. 


유천이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 것이네요." 


할머니가 웃으며 

"몰라. 새로운 생명인지 아닌지는.... 그러나 이때부터 밤하늘의 달과 별들, 들꽃을 찾아다니며 꿀을 얻는 벌 나비, 하늘을 날며 지저귀는 새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아름답게 보이고…. 모두가 하나님이 나에게 준 친구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것들이 나의 마음을 아는 것 같고, 그들과 대화가 되는 것 같았어. 


이 후로 열심히 주일 예배 수요예배 새벽 예배를 빠짐없이 참석을 했어. 집에 찾아오는 행상들과 거지들을 빈손으로 보내지도 않았고. 그들이 천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데도 난 다른 사람들처럼 기도는 안 되는 거야.

  

남들처럼 좔좔좔 끝없이 기도하고 싶은데….. 기도를 하려고 엎드리면 눈물만 나는 거야. 구할 것은 생각도 안 나고." 


유천이 답답한 듯

"왜 할 말이 생각이 안 나? 아들 달라는 소원이 있었으면서." 


할머니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몰라. 왜 그러한 생각들이 떠 오르지 않았는지. 그냥 모든 것이 만족하다고 만 여겨지는 거야. 그리고 기도하려 엎드리면 주체할 수 없는 눈물만 났어. 한 인간으로, 여자로 살아오며 겪은 서러운 일들, 힘겨웠던 일들, 외로웠던 순간들, 이러한 것들이 울음으로 터져 나온 것인지,  감추어졌던 깊은 속내를 모두 이야기할 수 있어서 그랬는지, 사랑을 느껴서 그랬는지. 나를 온전히 아는 분 앞에 있어서 그런 것이었는지.


분명한 것은 내 마음 모두가 하나님께 전달된다고 느껴지는 것만으로 만족이 되었어. 사실 하나님이 나를 온전히 아는데 무슨 구할 말이 있겠니?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완전히 아시고,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 분이 날 이미 다 알고 사랑하고 있는데. 나의 필요한 것을 다 알고 있고."


유천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그러면 웃음이 나와야지 왜 울음이 나와요?"


"웃음과 울음은 같은 가 봐. 그래서 좋아도 슬퍼도 눈물이 나는 거 아닐까?  

그러니 눈물이 나는데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느낌이 들지. 

평안한 마음이 들고. 두려움과 외로움은 하나도 없고, 자신감이 넘치는 거야. 


그때부턴 남들 기도 잘하는 것, 땅 사들이는 것, 아들 딸 잘 낳는 것 부럽지 않았어, 그러니 

그냥 열심히 즐겁게 교회를 다닐 수 있었던 거야. 


할아버지가 교회를 다니지 못하게 구박을 해도 주눅 들지도 않았고. 그러니 주일날 사람들을 사서 타작을 해도 난 교회를 갈 수가 있었어.


생각해 보면 그때 할아버지는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어. 10명이 넘는 일꾼들에게 새참과 점심을 해 먹여야 하는데 안 주인이 없으니. 믿음의 결과였는지 뜨거운 감정의 결과였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미안하고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려." 


할머니는 눈을 지그시 감고 미소를 짓는다.     

"그런데 점점 세월이 흐르며 교회에서 찬송을 뜨겁게 부르고 기도를 하다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방언, 예언, 입신 같은 은사 체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거야. 


그러니 나도 그들처럼 뜨거운 기도를 하고 은사 체험도 하고 싶어 지는 거 있지. 신비한 경험을 하면 믿음이 더 좋아지고 행복할 것 같고.


난 온전한 믿음을 위하여 은사를 달라고 열심히 기도를 했어. 찬송도 뜨겁게 부르고 큰 소리로 힘껏 부르짖으며.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를 않는 거야. 기도도 좔좔좔 할 수 있게 되지도 않고. 평안해지던 마음이 사라져 버리고.


그러니 하나님이 날 사랑하지 않나 걱정이 또 되는 거 있지. 더욱 어처구니없는 것은 죽다 살아나며 경험한 신비한 빛도 우연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야. 무엇에 되게 채 했다 내려간 것이라 여겨지기도 하고."


할머니는 큰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며  

"사람 마음이란 살랑거리는 연한 깃털 같다는 걸 한참 후에야 알았어. 

그땐 그것을 모르고 목사님에게 물었어. 다른 사람들은 다 경험하는 신비한 은사를 왜 나는 체험할 수 없는지." 


유천이 

"목사님이 무어라 대답을 했어요?" 


"'잘잘한 나무 가지들은 솔솔 부는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지만 큰 나무의 원 기둥은 흔들리지 않는다'라고 말씀을 했어. 그러니 '걱정하지 말라' 고. 이 말 한마디에 마음이 편안 해지더라. 내 믿음이 큰 기둥 같다고 인정받으니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였는지."


겸연쩍은 미소를 짓는 할머니를 보며 유천이

"자존 감을 세워주는 말이라 효과가 있었을 거예요."  


할머니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런데 걱정스러운 마음은 사라졌는데 그런 것 구하고 신비한 은사를 즐기는 사람들을 깔보는 마음이 생기는 거 있지." 


"교만한 사람으로 둔갑이 됐네요." 

유천이 얼른 대답을 한다.

   

"말 한마디에 마음이 요동치는 연약한 형편없는 존재였던 것이지. 이 일 후 난 그냥 겸손하고 정직하게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살려고 마음먹었어. 


사실 욕심으로 구하지 않으면 구할 것이 없더라고. 그래서 그때부터 내 진심과 처지를 하나님이 안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양심을 통하여 주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려고 했어."


유천이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구하는 것이 없는데 신앙생활하는 맛이 있어요?"


할머니가 생기 넘치는 표정으로  

"있더라. 이때부터 잃은 아들들 대신 너희들을 하나님이 주셨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야. 아들에 대한 미련과 아픔도 많이 사라지고. 나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과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하며 감사와 즐거움이 다시 솟는 거야." 


유천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해가 되지 않아요. 어떻게 손자를 아들처럼 느껴요?"


할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신앙을 통해 변화하는 마음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이해할 수가 없을 거야. 그래서 너희 할아버지가 아들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를 못했던 가 봐.  그리고 양 아들 들일 작정을 하였지. 그놈의 양아들이 무슨 소용이 있길래. 


죽으면 사위가 장사 지내면 되고, 죽은 다음에 뭘 알겠어! 누가 장사 지내는 것이 무엇이 중요해. 쓸데없이 재산만 엉뚱한 사람에게 주는 거지.”

  

옆에서 잠자던 할아버지가 돌아누우며 구시렁거린다. 

  "잠이나 자지, 쓸데없는 소리는 애들에게 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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