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속에서 잉태된 사랑과 신앙

by 지준호

비포장 도로를 덜컹 거리며 달리던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 뽀얀 먼지를 뒤집어쓰며 멈춘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손을 휘저어 먼지를 쫓으며 꼬부라진 할머니가 무릎을 짚고 힘겹게 허리를 펴며 일어난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리는 손님들을 살피다 손자들을 발견하곤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허우적 거린다.


반년 만에 사랑을 만나는 기쁨의 눈물일까? 외로움의 눈물이 모아 젔다 터져 나오는 것일까? 눈물을 옷소매로 훔쳐내곤 유천과 유상의 손을 차례로 감싸 잡고 볼을 비빈다.


버스가 떠난 후에도 손자들을 아래위로 훑어보고 만지기를 거듭하다 셋은 밭 갓 외길로 들어서 걷기 시작을 한다. 서로 돌아서 얼굴보기를 거듭하며 걷는 사이 평창 강 뒤로 우뚝 선 백덕산을 마주 보고 서 있는 초가집에 다 달았다. 사립문 문 밖에서 서성이다 빙긋이 웃으며 할아버지께 반긴다. 유천과 유상은 허리를 깊게 숙이고 인사를 한다.

"안녕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 대견스레

"많이 컸구나. 반년 사이에." 하시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겸연쩍은 상봉을 마친 유천과 유상은 뜨락을 오르고 마루를 지나 문을 열고 방에 들어서서는 벽과 천장을 두리번거리며 살핀다.


낯설어하는 손자들에게 할머니는 가을 내내 이웃에게 얻어 말린 평창 강의 생선을 내어 놓으며

"배고프겠다. 우선 이것 먹어라" 하신다.


맛있게 먹는 손자들을 얼 나간 듯 바라보다 땅 속에 묻어둔 밤을 꺼내려 밖으로 나간다. 마른 생선을 뜯어먹으며 일어나 따르는 손자들 흘끗 흘끗 돌아보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밤이 묻힌 곳 앞에 섰다. 손자들을 그리며 정성스레 가을에 주어 묻어둔 밤을 꺼내며 힘이 솟고 행복에 겹다.


시간이 사라진 듯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는데 눈발이 날리다 함박눈으로 변한다. 달도 별도 없는 밤 소복소복 내린 흰 눈이 천지를 은은하게 비춘다. 백덕산 줄기의 산봉우리를 휘감아 도는 평창강을 바라보며 초가 군락을 형성한 도돈 마을이 하얗게 변하여 성스럽다.


포근하게 눈 덮인 지붕 아래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 손자 둘이 누웠다. 유상이는 곧 잠들어 버리고 유천은 사랑스럽게 자신을 바라보는 할머니를 초롱 초롱한 눈으로 측은하게 바라본다.


말 상대 없이 지내던 할머니는 말 귀를 알아들을 만하게 자란 외손자를 사랑스레 바라보며 가슴속에 담겨있던 이야기를 소곤소곤 털어놓는다.


"난 평생 다섯 명의 아들과 딸 둘을 낳았다. 그런데 딸들은 건강한데 아들들은 모두 병에 걸리 더구나."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긴 한숨을 내 쉬곤 이야기를 잇는다.

"아들 하나하나가 병들 때마다 절에 가서 정성을 다해 시주를 하고는 수 없이 많은 절을 하며 빌고 또 빌었다. 혹시 부정이라도 탈 까 봐 목욕을 깨끗이 하고..... 추수 때는 시주할 벼를 따로 베었지. 그리고 손으로 한 톨 한 톨 탈곡 한 벼를 방앗간에서 곱게 정미를 했어. 이렇게 준비한 쌀을 이고 반나절을 송학 산 절에 올라 부처님께 공양을 했지. 그리고 절하고 또 절하며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다.


그런데도 병든 아들이 낫지를 않는 거야. 그래서 별들에게도, 서낭당의 큰 소나무에게도 능력 있다 여겨지는 것이면 무엇에게든 무릎 꿇고 두 손 모아 빌고 또 빌었다. 효험이 있을 거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다 했어. 무당을 들여 굿도 해 보고, 점쟁이가 시키는 대로 다 해보았다. 아들 살리는 일인데 무슨 일인들 못하겠니? 그중에 하나만이라도 맞으면 되는 거 아니야?"


할머니가 눈물이 글썽 해지면서

"그러나 아들 대신 나를 데려가라며 기도를 했는데도 하나도 들어주지를 않더구나. 그렇게 한 명 한 명 아들 5명이 일제 식민지 시대와 6.25 전쟁을 지나며 다 잃고 말았다."


할머니는 눈을 감고 깊은 한숨을 들이쉬고 내 쉬신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있다 쓴웃음을 웃으며

"이런 중 살아남은 두 딸이 하나는 네 어머니이고 하나는 네 이모야."


유천이 안쓰럽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며 묻는다.

"엄마와 이모는 병에 안 걸렸어요?"


할머니가 허탈한 웃음을 웃으며

"잔병치레도 한번 하지 않더라. 그러니 미워지는 거 있지. '딸이 병에 걸리지 하필이면 왜 아들만 걸려!' 하는 생각도 들더라. 그러다 너의 엄마와 이모를 보니 죄책감이 들어 괴롭기도 했고..... 그래서 서낭당과 절에서 그리고 별들에게도 잘못했다고 싹싹 두 손을 비비며 빌었지. 그리고 좋다는 약이라면 무엇이든 먹으며 아들을 낳으려 별의별 짓을 다 했어. 그러는 사이에도 세월은 흘러 난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나이가 되고 만 거야. 그러니 할아버지는 씨받이를 들이 더구나."


유천이 몸을 일으키며

"씨 받이가 뭐야?"


할머니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대신 아이를 낳아 주는 사람."


유천이 놀란 눈으로

"할머니 대신?"


할머니가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이신다.


유천이 할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한 집에 살며?"


할머니 : 그럼

유천 : 밉지 않았어요?


빙그레 웃으며 할머니가 대답을 하신다.

"왜 밉지 않겠니.

미운 것보다 나 자신이 더 비참해지더라.

세상에 아무런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고.

'무슨 큰 잘못을 해서 이렇게 저주를 받나?' 하는 생각에 외롭고 괴로웠어.

'아들도 하나 키우지 못하는 것이 살아서 무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유천이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한다.


유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할머니는

"죽고 싶었지

그러나 죽을 용기가 없었다.

네 할아버지가 씨받이 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자존심도 상하고 질투도 생기지만 독한 마음이 들더라.

'어떻게 해서든지 조물주에게 잘 보여 축복을 받아야 되겠다' 다짐을 했다.


그래서 씨받이가 밉고 죽이고 싶은 마음도 생겼지만 더 잘해 주려고 했다. 어쩌겠니. 내가 더 이상 아들을 낳지를 못하는데. 씨 받이가 아들을 낳으면 난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되겠고, 못 낳아도 걱정이고….. 남몰래 많이 울었지. 하늘을 보며 원망도 했다. 신세 한탄을 많이도 했지. 그러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씨받이가 아들을 낳아 주기를 바라며 기도하고 또 했어."


의아한 눈으로 유천이

"어떻게 미운 사람을 위해 기도 할 수가 있어요? 아들을 낳으면 찬 밥 신세가 되는데….."


할머니는 쓴웃음을 웃으며

"마음을 곱게 써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 같아서 억지로라도 했지. 신이 하시는 축복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니….. 씨받이를 미워하면 오히려 해가 될 것 같아서 더 했다. 못된 생각이 생길 때마다 마음을 고쳐 먹고 또 고쳐 먹었어. 그리고 정성을 다해 절을 다니고, 나그네들을 대접하며 씨받이를 통해서라도 집안에 대 끊기는 일을 막아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그렇게 정성을 들이는데도 허망하게 할아버지께서 씨받이를 내보내는 거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천이 질문을 한다.

"왜요?"


할머니가 헛웃음을 웃으며

"모르지. 물어보지도 않았어.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고.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를 않았어."


유천이 가벼워진 마음으로 반응을 한다.

"시원했겠어요."


할머니

"그랬지.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그런데 허무한 생각도 들더라. '절을 다니고 비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때부터 부처님을 믿는 것도 서낭당에서 비는 것도 모두 그만 두어 버렸어.


그런데 참 사람 마음이 간사하더라.


의지하던 모든 것을 버리니 더 허탈해지고 외로워지는 거 있지. 세상에 좋은 것도 의욕도 모두 사라져 버리고….. 아마도 그때가 내 일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것 같아. 그렇게 힘들어하고 있을 때 고래미에 사시는 구 권사님이 나를 자주 찾아와 위로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가시곤 했어. 참으로 고마분이지. 그런데 한편으로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거야. 교회에 같이 가자. 권유를 했으면 좋겠는데. 하시지를 않는 거야. 같이 가자고 해도 가지도 않을 거면서."


"왜 아들을 살리기 위해 별의별 짓 다하며 교회는 가지 않았어요?"


유천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질문을 한다.


할머니께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절에 다니며 교회를 가는 것이 마음에서 허락되지를 않았어."


유천이 할머니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따지듯

"무당에 가서 굿도 하고, 서낭당에서 빌기도 했잖아요."


할머니께서 손자의 질문이 날카로워진 것에 흐뭇하기도 당황하기도 하면서

"글세, 깊이 생각은 해 보지 않았어. 동양 귀신에 나는 익숙돼 있고 서양 귀신은 낯설어서였는지,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한다는 말에 빌 가치도 없다고 생각을 해서였는지,

동양 귀신을 섬기다 서양 귀신을 섬기면 동양 귀신이 질투할 것 같아서였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교회는 내가 가서 빌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


유천이 고개를 갸웃 둥 하고서

"교회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면서요."


할머니가 쓴웃음을 웃으며

"아들 다섯을 모두 잃은 후에야 교회에 관심이 생겼어. '그쪽에 가서 빌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구 권사님의 인품에 끌리기도 하였고."


유천이 안타까운 표정을 하며

"교회 가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그랬어요!"


할머니가 생각에 잠기다

"글쎄, 괜스레 구차한 생각이 들었어. 구걸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그런데 점점 더 권사님이 다녀 가신 후에는 교회가 궁금해지는 거야. 그곳에는 내 기도를 들어줄 하나님이 계실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내가 그곳에 가서 기도하면 바로 들어주실 것 같은 마음도 생기고. 구 권사님은 나와는 다른 사람 같이 보이기도 하고…."


유천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권사님이 부러웠겠네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떡이며

"부러웠지. 품위도 있어 보이고…. 축복받은 사람, 거룩한 사람. 그래서 어려움이 하나도 없는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어. 예전에는 권사님이 집에 와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할 때, 사실, 하고 있는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어. 그래서 건성으로 듣고 대답을 하곤 했지.


교회 가자는 이야기는 언제 나올까 기대를 하면서..... 그러다 돌아가실 땐 허전하고 서운한 생각이 들었어. 권사님이 오실 때면 '오늘은 교회에 같이 가자고 이야기하시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에 목마름이 생기곤 했어. 별의별 상상을 다 하며..... 나와 같이 교회 다니는 것을 싫어하시는 걸까? 나 같은 것은 교회에 가면 안 되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 인심 잃고 살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렇게 지나던 어느 날이었어. ‘예수를 같이 믿으시면 좋을 것 같다’고 권사님이 어렵게 말씀을 하시는 거야.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피느라 말까지 더듬거리며…."


유천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권사님은 왜 그동안 같이 신앙생활을 하자고 말씀하지를 않으셨지요? 교회에서는 전도하라고 가르친다는데."


할머니께서 웃으시며

"내가 절을 다녔으니까. 내 눈치를 보신 것이지. 지금은 가지 않아도 절을 완전히 떠났는지 아닌지 분별이 안되었던 모양이야. 절을 다니는데 교회를 가자고 하는 것은 실례가 될 수 있으니 ….."


유천이 할머니 동의를 구하는 듯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깊은 분이시네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떡이며

"그래서 동네에서 존경을 받았는가 봐."


유천이 궁금한 것을 다시 생각해 낸 듯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한다.


할머니가 쑥스러운 웃음을 웃으며

"권사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얼른 '그렇게 할게요' 대답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를 않는 거야. 그래서 ‘나 같은 것도 교회 갈 수 있어요?’ 하고 되물었지."


유천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러니 뭐라고 하세요?"


할머니께서 천천히

"물론이지요. 저 같은 것도 다니는데요. 그러시더라. 그러면서 예수님이 그러셨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죄지은 자도 오라, 목마른 자도 오라 와서 값없이 먹고 마시라.’ 그 말을 들으니 눈물이 핑 도는 거 있지. 그리고 위로가 되고 새로운 힘이 솟더라. 사랑도 느껴지고…."


유천이 할머니 눈을 바라보며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할머니가 대답을 하신다.

"’잘 지도해 주세요.’ 했지. 그때부터 난 교회에 나가서 권사님이 어떻게 하는지 살피며 권사님이 하는 대로 열심히 따라 했어. 정성을 다해…. 그리고 열심히 빌고 또 빌었어. 연보도 열심히 하면서….."


유천이 오기심 어린 눈으로

"뭐라고 빌었어요?"


할머니 빙그레 웃으며

"그냥 빌었지. 하나님이 사랑만 해 주시면 좋은 일 알아서 주실 거라 믿고서. 그런데 그러다 보면 꼭 눈물이 나왔어. 그래서 늘 울기만 했어.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 하나님을 대하 듯하려고 했고. 아브라함이 나그네를 대접했는데 그 나그네가 천사였었다고 목사님이 설교하시는 말씀을 듣고서…. 평상시에는 인간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한 일이기는 한데. 그것만이 아니었어. 첫 수학한 곡식은 무조건 하나님께 바쳤지."


유천이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무엇이든 다?”


할머니가 당연하다는 듯

"그럼. 호박 오이 무 배추…. 논과 밭에서 나는 것은 모두. 닭이 첫 계란을 낳으면 그것도 가장 먼저 목사님께 드렸어. 첫 알이라서 피가 빨갛게 묻었었지. 그것을 잘 닦아 가지고."


유천이 질문을 한다,

"그렇게 열심히 섬기면서 달라진 것이 있었어요?"


할머니가 고개를 가로로 저으며

"아니! 아무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