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태어나는 생명

by 지준호

"그런데 무엇하러 그렇게 열심히 했어요?"

유천이 답답한 듯 질문을 한다.


할머니 : 아직 정성이 하나님께 전달되지 않았는데 무엇을 주시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 목사님이 그러시더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이시라고. 그리고 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가 되면 복을 주신다고…..' 하나님의 때가 언제가 될지 누가 알겠니? 그래서 좋은 일을 놓치지 않으려 언제나 변함없이 열심히 섬겼지.


유천 :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열심히 섬겼어요?


할머니 : 정성을 다해 섬기는 사람도 있었지만 적당히 체면치레로 하는 사람도 있었고,

마지못해 하는 사람도 있었지. 사람마다 다르니까. 그런데 얌체처럼 믿는데도 신비하게 축복을 많이 받는 것 같은데 나에게는 떡고물 같은 부스러기도 하나 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더구나.


유천 : 그 사람들은 어떤 축복을 받았는데요?


할머니 : 아들 딸도 잘 낳고, 땅도 잘 사들이고…… 그러니 난 점점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거야. 나는 선택받지 못한 사람인가?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시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유천 :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할머니 : 목사님께 모두 말씀을 드렸지.


유천 : 목사님이 뭐라고 하세요?


할머니 : 교회를 다니면 사단이 방해를 많이 한다고 하시더라. 의심 마귀가 찾아오기도, 주위 사람들이 싸움을 걸어오기도, 어려운 일을 만나 낙심도 하게 된다는 거야. 그러나 그 시험을 이기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해 주신다는 거야.


유천 : 하긴 들어가자마자 축복을 주면 그것 다 받아먹고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해!


할머니 : 그래서 의심과 서운 한 마음이 들 때 변덕스러운 감정을 이기고 또 이겼지. 주기도문을 외우고 찬송하며 사단의 역사를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면서.... 정성이 하나님께 인정받는 날이면 신비한 기적도 보여 주시고 더 큰 축복을 줄 거라 기대하고 최선을 다 했어. 그러다 문득 다른 사람들에게 많이 주어지는 복을 나만 빼놓는구나 하는 섭섭한 생각이 또 드는 거 있지.


유천 : 사단이 주는 시험이었네요.


할머니 : 그런데 그때는 사단의 시험이란 생각이 들지를 않았어. 완전히 버림받은 존재가 된 것 같고 점점 외롭고 쓸쓸해지더라. 그 마음을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하나님도 도와주시지 않고…..


유천 : 왜 하나님은 그렇게 실망하도록 버려두셨을까요?


할머니 : 나도 모르지. 하나님이 있으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더라고.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잖아! 그렇게 선을 베풀며 열심을 다해 섬겼는데….. 그런데 더 억울한 것은 동네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고, 피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거야. 하긴 아들이 5명이나 죽었는데 바로 보이겠어? 가까이하기가 꺼려졌겠지. 버림받은 사람과 가까이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고…. 뭔가 보이지 않는 큰 죄가 있으니 그럴 것이라 생각했겠지. 부정 탄 사람이라 여기기도 했을 것이고…. 그래서 나를 피하려는 것 같았어.


이때부터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느껴지는 거야. 화단에 피는 백일홍과 채송화도, 아름다운 밤하늘의 별들도, 들꽃과 벌 나비도, 농사가 잘 되어 풍년이 드는 것도 모두 헛 된 것으로 느껴지는 거야. 봄이 되어 동네 사람들과 함께 강에서 하는 천렵도. 모두 재미가 없어져 버렸어.


유천 : 전에는 그런 것 좋아했어요?


할머니 : 그럼, 내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여름에 봉숭아 꽃을 손톱에 물들이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 봉숭아 꽃을 따서 그릇에 담아 방망이로 콕콕콕 찧어 너희 엄마와 이모의 손톱 위에 묶어 주고 잠을 재우곤 했다. 그러면 너희 엄마와 이모는 밤에 예쁘게 손가락 물드는 꿈을 꾸며 잠을 설치곤 했지. 손톱에 묶여 있는 봉숭아가 잘못될까 꼼짝 못 하고 누워 잠자는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던지… 안쓰럽기도 헸고. 그런데 그것을 보는 행복이 참으로 컸어. 이튿날 아침, 싸맨 손가락을 풀면 봉숭아 꽃 물이 손톱에 얼마나 은은하게 예쁘게 들어 있는지 몰라. 그때 너희 엄마와 이모가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난 덩달아 행복했고…..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모두 쓸데없는 것이라 여겨지더라. 세상살이가 다 의미 없고 허무하게 느껴지고. 딸들과 이웃 그리고 풀 벌레들, 나무, 하늘의 별들까지도 다 나를 외면하는 것 같았어. 우주로부터 버림받아 홀로 된 외로움을 느꼈어.


할머니는 큰 숨을 몰아 쉰다.

"그렇게 우울하게 하루하루를 지내는데 점점 기운이 없어지는 거야."


유천 : 아픈 곳도 없이?


할머니 : 응, 밥도 먹기 싫어지고. 그러던 어느 날부터 먹어야 살겠다는 생각이 들어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려니 넘어가지를 않는 거야. 무서운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 그래서 억지로라도 먹으려 했는데 안 되더라고. 먹고 마시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먹고 마시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 그 두려움은 말할 수 없이 컸어.


유천 :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할머니 :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 그냥 누워있을 수밖에….


유천 : 병원을 가 보았어요?


할머니 : 그땐 병원이 없었어. 난리 통이고.

이때 사람 마음이 참으로 간사한 것을 알았다.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처음엔 들더라.

그런데 죽을까 봐 두렵다, 죽고 싶은 생각이 또 들다

살아 보려고 좋다는 약이라면 무엇이든 다 먹기 시작을 했어.


그러나 약을 억지로 먹고 또 먹어도 효과가 없는 거야.

그러니 할아버지는 날 등에 업고 용한 의원을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거 있지.


할머니가 수줍은 웃음을 웃으며

"할아버지 등에 업혀 다니며 아무 효험 없어 초조해지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론 행복한 거야.

'죽게 되니 남편 등에 업혀 보게 되는구나' 하면서….


유천이 놀란 표정으로

"전에는 할아버지 등에 업혀 본 적이 없었어요?"


할머니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없었지. 그런 일은 망측하다고 생각했으니…."


할머니가 한숨을 쉬면서

"세상살이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인간의 마음이란 알다가도 모를 것이란 생각도 들고…. 죽어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좋고 한편으로는 두렵고 외롭고…..”


할머니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러다 더 이상 약 먹는 것과 용한 의원 찾아다니는 것을 포기하게 되더라. 무엇을 해도 효험이 없으니…… 그리고 방에 꼼짝 못 하고 누워 죽는 날만 기다리게 되었지."


유천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아무것도 못 먹고?"


"물만 조금씩 마셨지. 그런데 그렇게 몸이 아파 거동을 할 수 없는데 귀는 그렇게 밝은지….

밖에서 사람들이 소곤거리며 하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잘 들리는 거야."

할머니께서 대답을 하신다.


유천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무슨 이야기를 해요?"


할머니가 쓴웃음을 웃으며

"죽은 사람 염 할 때 사용할 삼배 사 오는 이야기, 묘지를 어디에 쓸까 하는 이야기….

내 앞에 와서는 '곧 낫게 될 거라' 이야기를 하고는 자기들끼리 내 장사 지낼 준비를 하고 있는 거 있지.


할머니께서 한숨을 크게 쉬고서

"그땐 배신감과 함께 외롭고 절망스러움이 얼마나 컸던지…..

하나님께서 낫게 해 주실 것을 믿는다며 눈물까지 흘리며 간절하게 기도를 해 놓고서….."


유천이 속상한 표정을 하며

"누가 그렇게 기도를 했어요?"


할머니가 더듬거리며

"목사님이 오실 때마다 교인들 친지들 모두 따라 들어와 함께 울며 불며 기도를 했지.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큰 소리로 외치며.

그리고 빨리 건강해져 함께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자고 모두 한 마디씩 하면서....


그럴 때는 낫겠다는 희망이 생겼어.

병마와 싸울 의지도 생기고, 기도 해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들고.


특별히 목사님이 내 머리에 손을 얹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마가 물러갈 지어다' 명령하는 기도를 할 때는 곧 낫게 될 거라는 확신까지 들었어.


나도 '아멘, 아멘' 하며 더 열심히 응답을 했어.

믿음대로 된다는 말을 믿었던 것이지.

그리고 일어나면 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겠다는 다짐도 했고."


유천이 화난 소리로

"그렇게 기도한 사람들이 방을 나가서 자기들끼리 장례 준비를 해요?"


할머니 한숨을 쉬며

"기가 막히더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우롱할 수가 있어?

움직이지 못하고 누워 있다고 바보 취급하는 거잖아. 그땐 너무 외롭고 고통스러웠어."


유천이 혀를 차며

"그럴 것이면 왜 기도를 해! 응답받는다는 신뢰도 하지 않으며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소리는 왜 해!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쇼하는 거잖아!"


할머니는 유천을 진정시키려는 듯

"나를 안심시키려고 그랬던 거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유천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할머니 : 그래서 그들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너무 속이 상했어.

신앙의 허구스러움과 이중성을 삭히는 것도 힘이 들었고.


그 후로는 사람들이 와서 낫게 해 달라 기도를 하면 화가 나는 거 있지.

믿지도 않으면서 나 듣기 좋으라고 입에 발린 기도하는 입을 찢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어.

그 사람이 거짓된 사람으로 보이고.


그래서 기도를 마친 다음 얼굴을 다시 자세히 보곤 했어. 그리고 저 사람의 진정한 속은 무엇일까? 의심하며 고민도 하고."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유천이

"그럼 기도하지 말라고 그러지 그러셨어요!"


할머니 : 그만해 소리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 그러나 그럴 용기는 없었어.

어떻게 기도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감히 할 수가 있니? 하나님이 서운해하실 것 같은 마음도 들고.


나를 위해 하는 일인데 부끄럽게 만들 필요까지는 없잖아. 그래서 참고 또 참았지.


그러며 차라리 낫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할 바에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기도 해 주면 좋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지.


그래도 그렇게 기도해 달라고는 말할 수가 없더라. 사실은 낫게 해 달라는 소리가 좋기도 했어.

그러나 그렇게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하나님께 원망이 생기는 거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이렇게 성경에서 강조하며 하신 말씀이 헛말이라는 생각이 들고....


정말 하나님 계실까? 의심이 생기는 거야. 더욱 내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도 없는데 기도하는 사람들과 하나님까지 믿을 수가 없게 되니 더 허망하고 외로워 눈물만 하염없이 흐르고.


난 이대로 아픔만 경험하는 인생을 살다 허무하게 죽는구나 생각이 들면서 두렵고 서럽더라.

알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 하나도 없고.


모두가 날 속이는 존재들인 것 같아 혼자 울고 또 울고 또 울었지.

큰 소리 내어 마음껏 울었어.


다른 사람들 하나도 의식하지 않고. 그날 밤이었어.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어. 그것이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 내가 깊고 캄캄한 좁은 구덩이로 한없이 떨어지는 거야.


떨어지며 보니 내가 있던 곳은 환한 빛이 있는 곳이었는데 그곳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거야.

그리고 그 빛이 가물가물해지며 희미해져 곧 사라지게 될 것 같은 순간이었어. 이것이 내 인생의 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유천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무섭지 않았어요?"


할머니 : 무서운 생각은 없었고. 그냥 이대로 떨어져 내 인생을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 독하게 드는 거 있지.

그래서 위를 향해 손을 들고 젖 먹은 힘을 다해 흔들며 큰 소리로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을 했어.


주님! 나를 이대로 버리실 겁니까? 주님! 주님! 큰 소리로 부르고 또 불렀어. 큰 소리로 울면서.


유천이 눈을 찡그리고

"밥 먹을 힘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큰 소리를 칠 수 있었어요?"


할머니 : 그것이 기적이었어.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평생을 살면서 겪은 모든 아픔과 설움이 이 부르짖음에 담겨 터져 나오는 것 같았어.


체면이고 뭐고 없이 처절하게 울부짖었어.


바로 그때였어. 위를 보니 내가 떨어지기 시작한 아주 먼 곳에서 꺼져 가던 작은 불빛이 다시 살아나는 거야. 그리고 조금씩 밝아져 나를 비추기 시작하는 거야. 그리고 깊고 어두운 구덩이로부터 밝은 빛이 비치는 곳으로 내가 다시 서서히 오르기 시작을 하는 거야.


"새 깃털처럼?

유천이 천진스럽게 묻는다.


할머니 : 아니, 깃털보다 더 가볍게, 성스러운 하얀 깃털로 된 천사의 옷을 입은 것처럼….

그렇게 가벼울 수가 없었어.


근심과 걱정 외로움 모두가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거야. 사랑받고 있음이 느껴지고….


천국이 이런 것이로구나! 상상이 되었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거 같았어. 꿈인지 환상인지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 후 난 점점 기운을 차리게 되었지."


할머니가 평온한 모습으로 이야기한다.


유천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로 일어났어요?”


"아니, 새로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을 해서 물을 마셔 보았지. 마실 수가 있는 거야. 그다음 죽을 먹고 그리고 이튿날 밥을 조금 먹게 되었지. 이렇게 되니 내 임종을 보고 장사 지내려 모였던 친지들이 머쓱해하며 모두들 돌아가게 되었어. 죽어야 하는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나게 되니…… 몰라….. 그들이 돌아가며 무어라 말을 했는지…."


할머니가 미소 띤 얼굴로 이야기한다.


유천이

"고개를 갸우뚱갸우뚱거리며 ‘이상하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야…. 분명히 죽을 줄 알았는데….. ‘ 그러지 않았겠어요?"


"모르지. ‘파놓은 묘지는 다시 매워야 하나? 그냥 두어야 하나? 사놓은 삼배는 물려야 하나? 다시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하나? 목사님 기도의 응답일까? 저절로 낫게 된 걸까?’ 그러지 않았겠어?"


할머니가 반주 넣듯 반응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