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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준호 Mar 07. 2023

폐허에서도 피는 꽃

"폐허에서 핀 꽃의 의미가 뭐예요?"

 유천이 눈을 찡그리고 질문을 한다.

  

“전쟁 통에도 만남의 아름다움이 베풀어지고,  폐허는 가치를 높이는 기회가 된다는 뜻이지."

할머니께서 대답을 하신다.


"전쟁통에서 어떤 만남이 베풀어졌어요?"

유천이 눈을 깜빡이며 질문을 한다.


할머니가 여유 있는 얼굴로

"아들 다섯을 잃고 그래도 목숨을 유지하려 피난 다닐 때였어. 짐승처럼 별의별 고생을 하며 살아가는데 큰 코 배기 군인들이 색시 색시하며 처녀들을 찾아다니는 거야."


유천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왜 코 배기들이 색시 색시하며 처녀들을 찾아요?"


할머니가 단호한 어조로

"노리개 감으로 삼으려는 거였지. 하나 되지 못하고 폐허가 되게 한 땅에 사는 처절함이었어."


유천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때 어머니는 몇 살이었어요?"

  

"19살이었다. 한참 영근 처녀였었지. 예쁘기도 했고…. 그러니 밖에서 활동하며 살 수가 없는 거야. 때로는 노적가리 속에, 때로는 방공호 속에 숨어 지낼 수밖에 없었어. 그 놈들이 너희 어머니를 보면 무슨 짓을 할 줄 아니. 억울함을 당해도 하소연할 곳도 없는데…..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어. 인간의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못했으니까. 이렇게 짐승처럼 근근이 생명을 유지하며 살고 있을 때 형과 함께 살고 있던 네 아버지를 만나게 된 거야.


네 아버지를 보니 인물도 좋고 선하게 보이더라. 예의도 있어 보이고, 부지런해 보이고. 처음 보는 순간 남이 아니다는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양코 배기 군인들에게 딸을 빼앗기기보다 빨리 시집보내는 것이 좋겠다 결정하고 너희 아버지와 예를 올리게 한 거야."


폐허에서 피는 꽃을 본 듯 평안하고 화사하게 보이는 할머니에게 유천이 묻는다.

"엄마가 면사포도 썼어요?"

   

할머니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아니. 그때는 머리에 족두리를 쓰고 양쪽 볼엔 연지 곤지를 찍었지."


유천이 할머니를 쳐다보며

"엄마도 연지 곤지를 찍었어요?"  


할머니가 환한 얼굴을 하고서

"그럼…. 연지 곤지를 찍고 족두리를 쓴 네 엄마가 얼마나 예쁜 미인이었는데.

너희 엄마와 아빠가 서로 높은 상을 마주 하여 서고, 예식을 인도하는 사람이 가운데서 주례를 했지.


예식인지 놀이인지 모두가 싱글벙글하면서도 하늘이 주관한다는 진지함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었어.

폐허에 아름다운 꽃이 피는 순간이었지.


주례자가 서로 맞절하라고 하니 너의 아버지는 싱글벙글하면서 절하고 너의 어머니는 부끄러워 고개도 못 들고 있었지. 그러니 사람들이 부축해서 절을 하게 했지...."


유천이 신기한 듯

"부끄러운데 왜 절도 혼자 못해요?"


할머니가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내숭이지 뭐.

혼인은 비밀한 일을 서로 나누도록 하늘과 사람이 모여 허락하는 예식이거든…..  

비밀을 드러내니 부끄러워지는 것이고, 부끄러운 일을 스스로 하기 어려우니 사람들이 돕는 것이지.


이렇게 부끄러운 일이 인생의 수많은 행복 중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순간이거든….


그래서 술잔을 나누며 행복을 모두의 것으로 만든다고나 할까?  

그러며 너희 엄마와 아빠가 부부가 되었지."


할머니는 유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리고 10달 후 네가 태어난 거야.

나에게는 동족이 서로 피 터지게 싸움하는 결과로 5 아들을 잃게 하고 그것이 너희의 탓이 아니라며 아들을 선물로 받게 된 거고."


유천은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들을 삭히느라 천장을 바라보다 질문을 한다.

"엄마 아빠가 결혼하고 신혼여행도 갔어요?"  


할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신혼여행이 뭐야! 전쟁 통인데…. 지금 너희가 사는 집 안방이 신방이었어."


할머니는 생기 돋는 미소를 지으며

"첫날밤 너의 엄마와 아빠가 어떻게 하는가 보려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지. 문 창호지에 침을 발라 구멍을 뚫고 캄캄한 방안을 서로 들여다보려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다  문까지 부서트렸지...."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린다.

 "불 꺼진 방에 뭐가 보인다고 그 난리들을 쳤는지."


할머니는 행복한 추억에 잠기는 듯  

"이때부터 네 아버지와 우리가 함께 살기 시작을 했어. 전쟁이 끝나고 사위와 장인의 재산과 힘을 합치니 동네에서 제일 부자가 되더라. 그래서 가장 큰 집을 짓고 살았지. 그러니 동네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우리 집에 모여 회의도 하고 놀이도 하곤 했다."

  

"동네 회관이었네요!"

유천이 신난 반응을 한다.


 "그랬지, 겨울이면 청년들이 안채 마루에서 신파를 하고 동네 사람들은 행랑채에서 구경을 하며 즐거워했지. 너는 바로 그 집에서 태어난 거야."


유천은 자기가 태어나게 된 배경을 들으며 자신이 어느 별 나라에서 온 것 같다.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들을 먼 나라에 보내고 말동무 없이 외롭게 살아오던 할머니가 다시 돌아온 아들을 만나 다정하게 소곤거리는 듯하다.


밖에서 눈 내리는 소리가 은혜를 소복소복 쌓는 듯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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