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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준호 Mar 09. 2023

빌지만 말고 바른 선택할 실력을  

사랑스러운 손자를 바라보며 할머니는      


"때때로 네가 아플 때면 목사님께 찾아가 기도를 받곤 했다.


어느 날 목사님께 기도를 받고 나오면서 뒤를 힐끗 보니 사모님이 네가 앉았던 자리를 열심히 물걸레로 닦는 거야.


네게 있는 병균이 방바닥에 달라붙어 있을까 봐.

사람이 방에서 완전히 나간 다음에 닦아도 될 텐데……

어차피 방바닥에 붙었을 병균이라면 조금 일찍 닦으나 늦게 닦으나 별 차이가 없는 것인데…..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연약한 거야. 그러나 그땐 참으로 서운하더라.

하나님보다 물걸레를 더 믿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우리가 빨리 떠나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말해 봐야 서로 마음만 상 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


유천이 애틋한 사랑을 느끼며

"내가 아플 때마다 그렇게 업고 다녔어요?"

 

"아플 때만 아니고 건강할 때도 업고 다녔지.

미소를 지으며 할머니가 말씀을 하신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더라.

'외손자를 섬길 바에는 방아공이를 섬기는 것이 더 낫다고….'

참 – 나. 외손자는 공들여 사랑을 해도 성이 다른 남이기 때문에 소용이 없다는 거야.


성이 다르면 어때서. 성은 다르지만 너희들 안에는 내 피가 흐르는데. 성이 같으나 다르나 피 흐르는 양은 똑같은 것 아니야?"  


유천이 질문을 한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왜 양아들을 드리려고 하셨어요?"


"바보 같은 짓을 한 거지.

몇 대를 걸치면서 자기 피가 희미하게 되었는데도 성 하나 같다고 양자로 삼고 재산을 모두 주려는 거야. 정도 없고 피도 가깝게 흐르지 않은 자식이 우리 죽은 다음에 제사 잘 지내 주면 무슨 소용이 있어.


그리고 먼 훗날 제사를 지낼지 안 지낼지 누가 알겠어.

그렇게 대를 잇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그런 사람을 양아들로 삼고 재산을 물려주려고 하다니.

바보도 그런 바보가 어디에 있어!"   


유천이

"차라리 믿고 신뢰하고 살던 이웃사람 중에 한 사람을 양 아들 삼는 것이 더 나을 걸 그랬어요. 그 사람들은 속이라도 아니까. 살면서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정들은 사이기도 하고….."

    

"그래서 양아들을 드리지 말고 딸과 사위 그리고 외 손주들과 함께 살자고 할아버지께 이야기했지.


그동안 살며 정이 얼마나 들었는데, 왜 아픈 이별을 사서 하느냐고….


그랬더니 사위와 함께 사는 것이 창피하다나! 사위와 함께 사는 것이 어때서.

사위에 함께 사는 것이 창피하다면 며느리와 함께 사는 것도 창피해야지.


어차피 인생은 남과 사는 거 아니야?

부부도 알고 보면 남남이고 아들 딸도 혈육으로는 하나 같은데 알고 보면 남 아니야?

어차피 인생이란 남과 남이 만나 어우러지면서 사는 것인데….."


할머니가 흥분하신 듯 높아진 목소리로 말씀을 하신다.


 "그런데 왜 할아버지는 그러셨어요?"

유천이 질문을 한다.


"법이 그러니 따라야 한다나!

실질적인 삶의 행복을 빼앗기면서 전통과 문화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거지.

전통과 문화가 뭔데.


난 전통과 문화도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어야지 우리가 전통과 문화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래서 우리들의 행복을 빼앗아가는 전통과 문화는 폐기하거나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의 행복을 크게 맛볼 수 있도록 전통문화를 발전시켜 나가는 사람들이 현명한 것 아니야?


난 사랑하는 가족은 누구든 함께 정을 나누며 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고 믿어.

왜 이미 정든 사랑하는 사람들이 헤어져 살아야 해?

왜 남의 눈에 노예가 되어 쓸데없는 사회 풍습에 매여 누릴 수 있는 행복을 버려?"


유천이 할머니와 눈 맞춤을 하면서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지요."



 "그렇지? 전통과 문화에는 유익한 부분도 있지만 쓸데없는 부분도 있고 심지어는 해로운 면도 있는데….. 사람들은 생각 없이 전통과 문화를 무조건 따르려고 만 해.

문화 속에 있는 진리와 의미는 모른 채 말이야.


전통과 문화를 지키는 것이 스스로를 품위 있게 한다고 생각하는 바보 같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아.

그러니 사회에 뒤쳐지고 어그러진 사고방식 속에서 행복을 잃어버리고 사는 멍청이가 되는 것이지.

세상은 점점 혼돈스러워지고.


법에 노예가 된 사람들이 만드는 거짓과 위선과 어리석음 때문에 더욱.

법과 전통에 혜택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기심도 작용을 한 것이고.

그리고 그들이 기득권자들이 되어 사회의 문화와 전통을 유지하려 발버둥을 치기도 하지.

그래서 세상은 다시 억울함이 생기고."   


할머니가 억울함이 되살아 나는 듯 이야기한다.


유천이

 "그래서 양자 들이는 것을 그렇게 말리셨군요."


할머니가 힘없는 목소리로

  "그런데도 할아버지가 일을 끝내 저지르고 말았어."


유천이

"끝까지 반대를 하시지 왜 안 하셨어요?"


할머니께서 크게 한숨을 크게 쉬시곤

 "그래도 할아버지가 이 집에 가장 이잖아!

서로 의견이 다를 때 논리적으로 설득하다 안 될 때는 하나님이 주신 질서에 따라야 된다고 생각했어.

서로 달라 다툴 때 원수 되는 일을 피하라고 주신 법이라고 이해를 했거든.


그래서 너희 아버지와 분가를 하고 평창으로 이사를 온 거야.

그러나 평창으로 와 양아들을 찾으려니 마당치를 않았어.

재산이 탐나 전통의 법으로도 안 되는 양자를 억지로 이루려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친척 간에 의 상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지."

 

유천이 의아한 얼굴로

"그런데 왜 그렇게 급하게 이사를 하셨어요?"

  

 "그 생각만 하면 한숨만 나와.

그래서 농사 지을 땅이 너희도 우리도 반으로 줄어 서로가 먹고살기 어렵게 된 것이야.


바보짓을 한 거지.  

사랑하는 손주들과 헤어져 사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너희를 살기 어렵게 만든 것은 미친 짓이었어."   


할머니가 화난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코를 골며 잠자고 있던 할아버지가 시끄러워 더 이상 잘 수 없어 짜증이 나지만 손자가 있으니 큰 소리는 못 내고 조용히 한마디 한다.


 "잠이나 자.

있지도 않은 하나님을 믿더니.  쯧쯧쯧쯧.

하나님이 있다면 그렇게 기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쟁이 나서 수많은 사람들을 억울하게 죽게 해?

그리고 불구자와 바보가 태어나고 그래?"


할머니가 대꾸를 한다.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다 알아요!"   


할아버지가 답답하다는 듯   

 "대를 이어야 할거 아니야.  대가 끊어지면 어떻게 해."    


할머니가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중얼거린다.   

 "양 아들로 대를 이어 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데."


할아버지는 더 이상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 중얼거림을 못 들은 척하고

 "교회에서는 말하는 것만 배우는가 봐." 중얼거리며 옆으로 돌아 누어 버린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할머니는 손자의 응원을 느꼈는지 속상했던 일들을 끊임없이 털어놓는다.

"할아버지는 논과 밭의 반을 팔아 여기 와서 작은 초가집 한 채와 논과 밭 사는 일을 술집에서 다 했어.

술 먹여 놓고 달콤한 소리를 하니 도둑놈들이 하자는 대로 그냥 한 거야. 그러니 재산이 반 실이 될 수밖에. 정상으로 팔고 사기만 했어도 너희들이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할머니는 다시 한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쉰다.


멀리서 평창강 흐르는 소리가 지나간 일을 탄식하고 후회 한들 무슨 소용이 있느냐 는 듯,  이제는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듯, 그리고 새 날의 행복을 위해 의지하고 빌지만 말고 바른 선택 할 실력을 키우라는 듯 밤이 깊어질수록 점점 요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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