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철 : 결국 가면을 얼마나 적재적소에 잘 쓰고 벗고 사느냐에 따라 신앙의 성숙도가 결정되는 거네요.
미현이 불편한 마음으로
"그것은 죄를 합리화시키려는 속 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지금 '정직하라고 했다가, 할 수 없는 인간이라고 합리화하고 있어요.
가면 쓰는 것이 죄라고 분명히 이야기하고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숙: 여기에 온전하게 속 마음 모두를 투명하게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람 있어요? 지금도 내 속에는 별의별 엉큼한 생각과 의심 미움 질투들이 들락거리고 있거든요. 모두 드러낼 수는 없는.....
미숙이 환한 웃음을 웃으며
"사실 나도 그래요."
유천이 고개를 끄떡이며
"가면 쓰고 연극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임을 인정하는 것도 정직한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가면을 죄라고 단정하기 전에 이해할 필요가 있네요.
가면이 나와 이웃에 해가 될 때도 있지만 득이 될 때도 있지 않아요?"
수천 : 나에게는 득이 되는데 남들에게 손해 되는 가면은 사기꾼의 도구가 되는 것이고, 나에게 손해가 되는데 남들에게 득이 될 때는 선한 일의 도구가 되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가면을 쓰는 것은 편리하고 쉬운 듯하고, 선한 도구가 되게 하는 가면은 인내하고 기다리며 어렵게 느껴지게 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먼저 된 자와 눈뜬 자와 사랑하는 자에게 아픔이 생기게 되는 것이고, 눈뜬 자가 사랑을 가지고 행동할 때 가면을 써야 하지만 아름다운 인격이 되기도 하는 것이고.
기숙 : 결국 가면을 쓰고 벗는 것은 영적인 싸움이군요. 가면이 사단의 도구가 되기도, 사랑의 도구가 되게도 하면서.....
수천 : 그래서 술도 선한 가면을 쓰고 마시거나 마시지 않거나 하며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게 그리고 하나님에게 유익하게 할 수 있는 것이로군요. 친구는 더 깊은 진실한 친구로 만들고, 거리를 두어야 하는 사람은 적당한 거리를 두면서……
유천 : 이러는 동안 하나님이 진리에 따라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주신 모든 것에 감사가 커지게 되지요.
결국 부족한 우리를 고백하며 때로는 자연스럽게 이해시키고, 때로는 설득하려 노력하시고, 때론 시간이 해결해 주기를 믿고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신앙인의 삶이라 생각이 돼요.
기철 : 그래서 물질이 선이냐 악이냐, 율법을 지켜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 아니고 나의 처한 상황에서 '무엇이 최선일까? 지혜는 무엇일까? 사랑의 음성은 무엇일까?' 하나님께 묻고 코치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이 예수를 상담자로 목자로 삼는 일이 되는 것 같아요.
유천 : 그래요.
수천 : 그러고 보니 율법도 본래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율법을 오해하여 율법주의자가 되어 우리 자신에게 무거운 짐이 되게 하는 것이 이해가 돼요.
기숙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예배도 그런 율법에 포함이 되나요?"
유천 : 물론이지요. 그래서 바른 예배는 자유 하게 행복하게 지혜롭게 만들지만 율법에 매인 예배는 위선 되고, 교만하게 만들며 답답한 고집쟁이 꼰대가 되게 하여 삶에 무거운 짐이 되지요.
수천 : 율법에 매인 사람들이 쾌락은 죄라 정의하고 답답하게 웃음을 잃고 살아갈 수도 있겠네요. 목에 힘주고 거룩하고 경건하게 예배하고 기도하고 설교를 들으며.
유천 : 결국 신앙생활을 해도 영혼의 자유 없는 노예 된 삶을 살며 지혜와 창의력을 잃고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요. 우리들의 삶이 자유하고 행복하고 가치 있어지는 것을 하나님이 바라시는데, 혼인 잔치 집에서 가장 질 좋은 포도주를 만들어 주기까지 하면서….
영호 : 쾌락을 너무 좇다 보면 해가 되는 일이 생기니 때와 장소 그리고 즐거움의 양을 지혜롭게 분별하고 절제하려 하지만 그것이 그리 만만치 않아요.
유천 : 그래서 예수님께서 항상 깨어 있으라 말씀하시는 것 아닐까요? 완전한 선도 악도 없고 선과 악이 혼돈된 상태로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청년들이 자유로워지는 얼굴들의 표정이다. 그러나 몇몇은 어두운 그림자가 얼굴에 서린다.
유천은 청년들의 솔직한 질문과 답하는 것을 보고 들으며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냇물이 되어 강이 되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듯 진리가 이곳에도 흐르는 듯하다.
내숭 없이 진실을 주고받는 데서 소통의 행복을 맛보며 진리에 눈뜨며 얼굴이 밝아지는 청년들의 표정을 보며 존재감이 커진다.
그러나 진실을 드러내지 못하고 어두워지는 얼굴을 보며 가슴이 아리다.
한편으로는 보람 있고 한편으로는 아픈 마음을 가지고 나날을 보내는 유천을 강 목사가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