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이 교회 나오는 숫자가 줄었다면서요?"
유천이 강 목사 사무실에 들어서니 회전의자를 돌리다 멈추고 질문을 한다.
유천이 당황한 표정으로
"네. 그러나 걱정할 것은 없어요.
진리를 깨닫고 율법에서 자유 해지며 나타나는 자연 스런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예배나 교회의 정기적인 모임에 참여하는 숫자는 줄었지만 신앙은 더 진솔하고 깊어지고 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그들의 편리한 시간 이곳저곳에서 자주 만나고 있거든요.
때로는 빵집에서, 때로는 그들의 집이나 우리 집에서 때로는 공원에서 형편에 맞게…..
청년들도 그들의 학업과 직장에 충실할 수 있어 좋아하고요."
강 목사는 눈을 찡그리면서
"예배 참석을 소홀히 하면서?
예배를 소홀히 하면서 무엇을 한다는 거예요?
일하고 공부하는 것이 예배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삶의 중심이 예배가 되고 교회가 되어야 하는 데, 교인들을 혼돈스럽게 하면 어떻게 해요?
유천은 강목사와 신앙이 같다고 생각했는데 둘 사이에 큰 강이 있는 듯 다름을 느끼지만 진실을 나눌 확신이 없다.
모른 척, 우둔한 척, 하고 싶은 말을 적당히 들러대느라 머리가 뜨거워진다.
"청년들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낀 것이 있어요.
교회에 나오는 이유 몇 가지를 발견했어요.
좋아하는 이성도 있고, 서로 처지가 같아 소통하기 편한 친구들 때문이기도 하고,
사회생활의 도움을 받으려는 친구들도 있고.
그것까지는 좋다고 생각해요.
처지가 같아 서로 만나 위로하고 위로받고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중요하니까.
그러다 보면 신앙이 점점 깊어질 테니....
문제는 교회에 있는 자체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고 착각하는 친구들도 있는 거예요.
그리고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물론 평안을 누리는 것이 필요 하지만 잘못된 믿음에서 생긴 가짜 평안을 진짜로 착각하는 것은 바로 잡아야 할 것 같았어요.
평안을 누려서는 안 되는데 평안을 누린다면 그것은 속고 있는 것 아니에요?
교회에서 일하거나 기도를 많이 하면 하나님이 좋은 직장 잡는데 도움 주실 거라는 믿음을 가진 친구들도 있어요.
교회에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어 주신다고 믿는다면 이는 헛다리 짚는 것 아니에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만이 기도라고 생각한다면 기도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고….
이러한 신앙은 스스로를 해롭게 하는 것 아니에요?
거지 근성과 노예근성을 점점 크게 하면서…..
이러면 신앙이 "마약 주사 맞는 것"과 같은 것 아니에요?
하나님은 우리들이 진리와 소통하고 자기 자신의 감정을 바르게 하고, 진실을 밝히 보고, 지혜를 얻는 가운데서 오는 평안과 용기와 꿈을 가지고 이 세상을 주체적으로 당당하고 복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인데.....
위기감을 느낄 때 하나님 앞에 나가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 냉철하게 보고,
주어진 현실을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신 일로 믿고,
내면세계를 보고 고칠 것은 고치고
주신 용기와 지혜에서 온 능력으로 어려움을 축복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의존만 하려는 청년들이 많아요.
무조건 의존하는 것을 좋은 신앙이라 믿으며.
그러니 기도하라고 하면 "이것 해 달라 저것 해달라" 열심히 구하기만 해요.
냉철하게 문제를 보고 해야 할 일과 지혜를 구하지는 않으며.
저는 기도가 하나님께 필요한 것을 구하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청년들로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렇다고 자기의 실력과 노력만 의지하라는 뜻은 아니에요.
좋은 직장을 얻는 것만이 최선이라는 뜻도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극복할 것은 극복하고 창의력을 발휘하며 하나님과 인격적인 대화 가운데서 오는 지혜로 하나님이 맡기신 뜻을 이루는 삶을 사는 신앙인이 되게 하려는 거예요.
이것이 교회의 사명 아니에요?
그래서 사람들을 교회에만 머무르게 하려는 교회의 프로 그램에 무조건 다 나오라고 강요하지 않았어요.
대신 그들과 토론하며 진리를 깨닫게 해 주고, 맑은 영으로 하나님의 영과 교감하게 훈련하여, 그들이 처한 환경과 시대의 흐름과 자신을 바로 보며,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데 필요한 실력을 키워주고 싶어요.
이러한 생각을 하기 전에 저의 마음을 하나님의 밝은 빛 앞에 비추어 보았어요.
청년들이 교회에 나와 출석 인원수를 많게 하려는 욕심이 저에게 있더라고요.
청년들의 숫자가 늘면 목사님도 교회의 재직들도 저를 칭찬할 거 아니에요?
그러나 내가 이렇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에 이끌리면 삯꾼이 된다는 확신이 드는 거예요."
강 목사가 중얼거린다.
"잘난 부목사인 줄 미처 몰랐군!"
불쾌감이 커진 강 목사이지만 본심을 숨기고 근엄하고 거룩한 말로 유천에게 훈계를 한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예수만 잘 믿게 하면 되는 거예요. 예배와 기도 생활에 충실하게 인도하면서…..
교회도 사람들이 많이 나와 돈과 인적 자원이 풍부해져야 구제와 봉사와 교육과 전도를 잘할 수 있는 거예요.
청년들이 많이 나오면 부모들이 교회에 더 많이 나오게 되고,
그래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늘어날 뿐 아니라 큰 일 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예요.
전도사님은 이상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현실도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이거든요.
물론 목회의 경험이 없어 그런 것이라 이해는 되지만…..
유천은 강 목사가 욕심에 사로잡힌 것인지,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지, 겉과 속이 다른 이야기를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하는 것인지 아리송하다.
유천은 상상을 한다.
"학생들을 많이 나오게 하여 목사에게 성도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숨은 부끄러움을 털어놓을 때 목사도 함께 감추어진 이기심과 욕심을 고백한다면 서로 신뢰가 깊어진 가운데 소통하는 기쁨을 더 크게 누릴 수 있을 텐데….. 그리고 함께 일하며 나타나는 능력의 기쁨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인데….."
한숨이 나온다.
"사람이 서로 부끄러움을 고백하며 진리 안에서 공감대가 형성될 때 신뢰가 커지며 소통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인데…. 담임 목사와 부목사는 동역자와 친구와 가족처럼 되면서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를 성도들에게 보여 줄 수 있을 것인데.…."
담임 목사와 대화에서 진실은 숨기고 한 마디 한마디의 말을 머리에 열이 나도록 계산해야 하는 현실이 피곤하고 서글퍼진다.
유천은 강 목사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대하는 태도와 단 둘이 있을 때의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을 느끼며 만나는 것이 점점 불편해진다.
유천은 고민을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도 수 늘리기를 담임 목사는 원하고,
양심은 소신껏 해야 한다 말하고,
담임 목사의 말에 따라야 하느냐 양심을 통하여 들려주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야 하느냐?" 갈등이 된다.
양심의 소리를 들으려니 성도들에게 담임목사와 부목사가 불화하는 못난 모습을 보일 것 같고,
먹고사는 데 지장이 생길 것 같다.
목사가 원하는 대로 눈 찔끔 감고 하려니 청년들을 먹고사는 도구로 이용한다는 가책에 기운이 빠지며, 하나님이 주시는 창의력과 지혜가 나로부터 멀리 도망치게 할 것만 같다.
유천은 깊은 상념에 빠진다.
"교회 안에서 조차 이런 갈등을 겪어야 하다니…. 악과 선의 싸움일까? 이상과 실재의 싸움일까?
처음 강 목사의 부탁을 받고 목회를 시작할 때의 설레던 순간이 그립다.
그리고 부목사로 오기 전의 강목사를 알고 있던 것과 너무 다름에 마음이 아프다.
유천은 강 목사와 미팅을 마치고 우울해진다. 그리고 미움에 사로잡힌다. 그가 하는 일 모두가 의심스럽다.
"속셈이 무엇일까? 진심은 무엇일까?”
그와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로 보이게 하는 알쏭달쏭의 샘이다.
유천은 미움과 의심과 분노에 갇힌 자신을 보며 질문이 인다.
"강 목사도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고, 예수로부터 사랑받는 사람이고 자신의 의로운 가치를 높이려는 사람일 텐데….
생존 본능이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것일까? 무지에 따른 무속적인 신앙 때문일까? 현대 교회의 흐름에 그저 따라가는 것일까?"
피조물의 한계를 실감하며 삶의 기본이 되는 에너지가 소진되던 유천이 청년들과 함께 하며 생기가 다시 솟는다.
토론하며 진리를 깨닫고 나누며 목사와의 관계에서 생긴 우울함도 치유가 된다.
불통으로 온 피곤을 정직한 대화와 진리를 깨닫고 이해하는 순간들로 하나님께서는 회복하게 하시는 가보다.
교회 전통의 권위에 눌려 질문하지 못하던 청년들이 문제의 답을 맛보고 질문이 봇물 터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