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통증을 느끼는 상황을 만났는데도 우리는 감사를 해야 하나요?
사실 '거짓말하고, 무례하고, 이기적인 사람을 만나거나 불의를 만나 어려움에 처할 때도 감사를 해야 하나?' 하는 질문이 일어요. 그리고 '범사에 감사하라' 시는 말씀을 무시하게 되는데 그때 마음 한편에서는 말씀에 따르지 못해 우울 해지는 거예요. 그러며 신앙이 병 주고 약 주고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승일이 질문으로 침묵을 깬다.
기숙이 승일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맑은 마음을 만들고
주어진 환경을 바르게 보고
진리에서 온 지혜를 적용하면
악하고 부정적으로 보이는 일도 훈련으로 삼아 성숙의 기회가 되어 결국 자신의 존재 가치를 높이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 아닐까요?
승일이 기숙의 이야기로 질문이 해결되지 않는 가보다.
하나님은 인간도 동물과 같이 주신 본능에 의하여 살게 하시지
왜? 갖가지 못된 감정에 휘둘리게 하셨는지 몰라요.
불의를 만날 때는 화내고, 바로 잡고
악한 이들을 만날 때는 싸워서 이겨야지 어떻게 감사를 해요.
예수님도 성전에서 화내고 욕하고 하셨잖아요.
예수님도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보고 하라시면 어떻게 해요.
범사에 감사를 하게 하려면 우리의 감정을 언제나 감사하게 만들어 놓아야지
왜 질투심, 이기심, 자존심, 욕심, 미움, 영웅심, 허영, 위선 등을 만드러 감사하기 어렵게 하셨는지 몰라요."
수철이 미소 지으며
"나도 그런 생각을 해 보았어요.
그러다 각가지 감정들 하나하나가 생존의 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가치를 높이는데 필요한 것이라고 이해가 되었어요.
모든 감정에 선과 악의 양면이 있어요. 이러한 양면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며 예술처럼 잘 조화시켜 사용할 때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알았어요.
영혼이 있어 가치를 높이는 존재로, 하나님을 닮은.....
그러나 생존 본능에 의하여서만 살든지, 범사에 무조건 감사하는 존재로 산다면 나무나 들에 잡초와 다를 것이 없는 것 아니에요? 동물보다는 못한, 영혼 없는 피조물로….."
눈알이 반짝 빛나며 영호가
"악한 감정을 이기고 선한 감정으로 바꾸어 고유하고 고귀한 존재 가치를 높이게 되니 결국 범사에 감사하라시는 것이로군요.
미숙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내 감정이 악한 것인데 선한 것이라 착각할 수도 있지 않아요?"
수철 : 그렇지요.
그러나 내면에 이는 감정을 보기만 해도 대부분은 선하고 악한 것이 저절로 분별이 되더라고요.
악에서 온 감정인지 선에서 온 감정인지.
이것을 분별하게 하는 빛이 곧 하나님이 아닐까요?
물론 내 마음이 순수하지 않고 이기적이면 혼돈이 되겠지요
진리 안에 있지 않아도 잘못된 정보로 오류가 발생해 선악을 분별하는데 오류가 발생할 것이고.....
그래서 마음을 순수하게 하는 일과
실체를 분명하게 확인하는 일과
진리에 눈떠 지혜롭게 되는 일 모두가 신앙생활에 중요한 일일 것 같아요.
그때 비로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고
긍정적 사고로 주어진 모든 환경을 대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는 것 아닐까요?"
승일이 질문이 해결된 듯
"오만 가지의 감정들을 맑은 마음으로 바라보고
바르게 다루어 선한 감정을 만들고
주어진 환경의 진실을 보고
진리에서 온 지혜를 가지고 주어진 환경을 대하는 전제로 '범사에 감사하라, 긍정적 사고를 하라, 시는 말씀이 이해가 돼요.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말씀을 논리적으로 이해하여 확신에 거하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아요.
예수님도 울기도 하시고 화도 내시고 질투도 하시면서 나에게는 왜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셔? 불평을 하였는데.....
자신도 못하시는 일을 나보고 하라시니..... 참! 하면서."
사실 악한 일을 마주쳤을 때 감사하면 안 되는 것 아니에요?
그라나 악한 일을 나의 가치를 높이는 일로 사랑하는 일로 나를 깨닫고 훈련시켜 성숙시키는 일로 만든다면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되는 진리가 오묘해요."
수천 : 범사에 감사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라는 말은 그 이해의 정도에 따라 허와 실이 있네요.
대부분의 청년들은 고개를 끄떡이며 표정이 밝아진다. 그러나 질문 없이 점점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남들이 웃을 때 덩달아 웃음을 웃는 청년들도 있다.
종교도 선과 악이 될 수 있는 것을 증명하는 듯 무거운 침묵이 다시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