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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준호 Jun 19. 2023

단순 너머에 있는 단순을 즐기다    

신앙이 주는 단순함으로 하루를 열며 하는 신앙 고백 

"믿습니까?" 단순한 신앙의 질문에

"아멘"의 한마디로 화답하고 싶었다.  


의심 하나 없는 신앙고백을 할 수 있다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쉬울까?   


하지만

"믿어지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일까?

그렇다면 진리의 하나님일 수 있을까?

논리와 질문은 신앙의 적일까?

창의력과 상상력과 탐구력은 신앙의 방해꾼일까?

질문 없이 주어진 믿음을 가진다면 과연 나는 인격 있는 존귀한 존재일 수 있을까?

내 의지로 믿음을 좌지 우지 할 수 있는 것일까?"  

끝없이 내면에서 저항을 한다.  


결국 신앙의 단순한 신비를 즐길 수 없어 우울해지던 어느 날 두 단순함이 보인다.


하나는 세뇌되었거나 맹목적인 사고에서 나오는 이분법적이고 편견 된 단순함이고

다른 하나는 맑고 순수한 영혼에서 나오는 논리가 이루어 내는 단순함이다.


자신의 감정을 빛에 드러내고 진리를 깨닫고 내면에 있는 공감의 언어를 들어야 하는 일이 넘기 어려운 장대가 되는가 보다.  


하나는 쉽고   

다른 하나는 어렵다. 


이 둘 중 


인간의 연약함에서 오는 의지 하고픈 마음 때문일까?

게으름 때문일까?

내면을 비추는 빛이 싫어서일까?

내면에서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일까?

신비한 기적의 달콤함에 현혹되어서일까?  


단순하게 "믿고, 충성하고, 봉사하고, 희생하고, 사랑하라"는 명령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따르는 쉬운 쪽을 택하는 신앙인들이 부지기 수다.


결국 이들은 커다란 빌딩에 인파를 가득 채운 대형 교회를 세우는데 공신이 되고 이를 주도한 성직자를 능력 있는 종교지도자로 섬기며 세상을 혼돈케 하는데 기여를 한다.  


신앙을 통해


편견에서 자유하고

욕심에서 자유하고  

치유받고 사랑받은 맑고 순수한 영혼들이

진리와 사랑의 음성을 들으며

실체를 바르게 볼 수 있는 능력으로     

진실의 말을 단순하게 할 수 있어 공감하며 연합하는데 기여하여 존재가치를 누리게 되는데,  


이를 위해 문화와 역사와 예술이 어우러진 경전이 존재하는데  


때로는 문자적으로 

때로는 구미에 당기는 구절만 떼어 내어 

때로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알로고리칼하게 경전을 해석하며 


진리를 왜곡하여 갈라져 싸우고,  

사고력과 창의력과 탐구력을 무시하고 어리석은 단순한 말에 맹종하게 하는 종교가 판치는 세상이다.    


강요된 신앙에서 온 위선 섞인 사랑, 어리석은 착함으로 부정부패의 온상이 된 종교가 눈살을 찌푸려지게 하는 시대에 단순한 한마디의 질문에 답하기 힘겨워 방황한 것이 은혜였음이 새롭다.


그리고 높은 목표의 장대를 힘겹게 넘고 낙하하는 성취와 자유를 누리 듯 단순하게 사는 신앙의 맛을 즐긴다. 

  

잠자리에서 밝아오는 빛을 감지하고 벌떡 일어나 게으름을 이기고, 

잠자리를 정돈한 깔끔함을 즐긴 후 밖으로 나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을 한다. 

아랫말산을 오르기 전 푸샵으로 부드러워지는 근육을 즐기고

헐떡이며 정상 오르느라 이마에 흐른 땀을 산 바람에 식히며 누리는 성취감에 눈을 지그시 감고 양팔은 하늘을 향하여 들고 큰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동산을 거닐며 싱그런 숲과 맑고 고운 새소리와 어울리다 멀리서 못된 뻐꾸기 우는 소리가 도덕으로 좁아진 마음을 넓힌다.  


주어질 환경을 대하며 "할 수 있는 것인지 할 수 없는 것인지" 분별하여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발견될 때까지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려야지.      


신선한 맑은 공기를 실컷 들이마시고 내뿜고 

적절하게 먹고 마시며. 


듣고 또 듣고 이해하고 말하며 난제를 풀며 이해 폭을 넓히는데서 오는 공감을 누려봐야지

우주의 모든 것들과 평등한 관계에서 어우러지는 평화를 누리며. 


때로는 나약한 인간임을 인지하고 눈물 흘릴 때 위로받고 치료받으며 누리는 사랑을 누리고, 

장애물 너머에 있는 단순함에서 오는 눈으로 실재와 잔리를 바르게 보고 삶을 즐길 기대를 품고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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