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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목회를 다시 시작하며

듣고 주목하여 보고 만진 바

by 지준호

영어회화 테이프 외판으로 치열한 경쟁사회에 처음 뛰어들었다. 며칠 세일즈에 관한 교육을 받으며 난 자신감과 의욕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하지만 돈이 길에 걸어 다닌다고 강사가 말하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상황에 당황했다. 눈을 닦고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고 또 보아도 '돈 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직 자신의 밥벌이도 못하는 빈털터리 친구들만 보였다. 의기소침해진 나의 뇌리에 샛별처럼 반짝하고 친척 한 분이 떠올랐다. 큰 회사 회장으로 있는 분이었다. 수백 명의 직원들이 영어를 잘하게 된다면, 그들만이 아니라 회장도 유익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정당한 대가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고.

회사를 찾아가 비서실에 회장님 면담 신청을 했다. 잠시 후 잡상인의 면담을 허락한 의도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세련된 여비서가 나를 회장실로 안내했다. 허리를 90도로 굽혀 정중하게 인사한 나에게 회장님이 말했다.

"가지고 오신 상품을 소개해 보세요."

난 배우고 훈련받은 것에서 온 자신감으로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했다. 회장님은 인자한 모습으로 빙그레 미소 지으며 경청했다. 큰 오더를 따낼 수 있다는 기대가 더 열정적으로 영어회화 테이프를 소개하게 했다. 끝까지 들으신 회장님이 부러운 눈초리를 보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영어 회화를 잘해서 좋겠구먼."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얼굴도 화끈거렸다. 쥐구멍이라도 찾은 듯, 어떻게 짐을 챙겨 나왔는지도 모르게 회장실을 빠져나왔다. 난 영어 회화 테이프를 들어보지도 않았고 회화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남의 말만 듣고, 돈에 눈이 어두워 떠벌인 말들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나를 쓰레기 되게 한 것 같았다. 이후로 난 내가 듣고 보고 만지기까지 한 것이 아니면 어떤 것도 팔지 않기로 작정했다. 몇십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복음을 팔 준비를 하는데 그때의 회장님의 음성이 생생하게 들렸다. "자네는 듣고 보고 주목하여 보고 만진 생명의 말씀이 삶을 인도하여 좋겠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의 삶에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님이 선한 목자로 개입하는 것을 누리는 것이다. 그리고 생명의 말씀을 삶에서 듣고 자세히 보고 만지는 것이다.

인간은 자연 속에 있는 아름다움과 신비 그리고 산소와 먹을거리와 진리와의 관계, 가족과 신뢰와 사랑의 관계에서 얻은 용기와 건강한 영혼과 지혜로 사회에서 존재가치를 높이며 행복을 누리는 존재다. 그리고 문명을 통해 편리함을 맛보고 문화를 통해 표현하고 공감하며 행복의 질을 높이는 존재다. 이러한 우리들의 삶에 선한 목자로 상담자로 치료자로 개입하여 인도하시는 말씀을 듣고 자세히 보고 만지는 사이 우리의 인격과 능력이 아름답게 성숙한다.

은퇴 후 다시 목회를 시작하며 말씀으로 인한 지혜를 난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평안은 얼마나 누리고 있을까? 존재 가치를 높이고 있는가? 화평케 하는 일은 또 어떻고... 맑고 순수한 영혼으로 사실 관계를 분명하게 파악한 상황을 진리와 사랑을 품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사회에서 얼마나 하고 있는가? 그리고 누구의 말이든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며 충분히 따뜻함을 주고 있을까? 나를 살핀다.

난 자연의 신비스러움과 아름다움을 풍성하게 즐기며 상처를 치료받고 얻은 용기와 지혜를 가지고, 가족을 통해 소통하며 받은 사랑과 용기를 가지고, 말씀에 눈뜨지 못한 자, 상처를 입고 허우적거리는 이들, 지혜를 모르는 이들, 들을 줄 몰라 들어오는 행복을 버리는 이들을 위해 희생하며 헌신할 준비는 되어 있을까? 자연과 사회와 문명과 문화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인간들에게 목자이신 예수님이 개입하시려는 사랑을 듣고 주목하여 보고 만진 바를 어떻게 전할까? 확인하고 질문하며 다소곳이 무릎을 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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