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에서 수평 관계로 전환 한 신앙
될까, 안될까?.... 기대와 불안이 밤새도록 뇌리에서 엎치락뒤치락거렸다. 신앙과 불신까지 밝고 화려하게, 검고 무섭게 배경 화면을 비추며 싸움판에 끼어들었다. 난 '잠 좀 자자, 잠 좀 자자' 뒤척이며 애걸하다 "에이"소리치고 포근하고 따뜻하게 감싼 이불을 거칠게 걷어차버렸다.
벌떡, 허리를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도 캄캄한데 빨간 글씨로 시계가 5시를 알리고 있었다. 난 큰 숨을 내 쉬고는 결단을 내렸다. '어차피 쉴 수 없을 바에야, ' 지친 몸을 겨우 일으켜 샤워실로 향했다. 찬물을 틀었다. 화들짝 놀란 심장이 헉헉 소리를 뿜어내며 몽롱한 정신을 깨웠다. 하지만 싸움판의 잔영들로 머리가 띵했다. 머리를 흔들어 그들을 털어내며 외출 준비를 하고 교회로 향했다.
시야 오른쪽으로 하얗게 열리는 하늘을 흘긋거리며 드라이브하고 았을 때였다. 달려들어 할퀴기라도 하려는 듯 요괴할멈 같은 검은 구름이 머리 위에 있었다. 난 그만 불길한 생각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때 '집까지 저당 잡히고 교회를 마련해 사명을 감당하려는데.... 어련히 은혜를 베풀어주시지 않겠어?' 신앙이 맞섰다. 하지만 그때 다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던, 채, 피지 못한 여린 새싹의 짓밟히는 영상으로 되치기 했다.
기대와 불안의 싸움으로 기진맥진해 있을 그때다. 이글거리는 하얀 불빛이 거친 검은 구름 밑에서 타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심장이 고동을 쳤다. 베푸실 은혜의 징표가 분명했다. 돌연 여유 있어진 난 몸을 기울여 서쪽 방향으로 핸들을 가볍게 틀었다. 그리고 구불구불 언덕길을 오르며 차 창문을 활짝 열었다. 상쾌한 바람이 훅훅 소리 내며 차 안의 먼지와 불안까지 시원하게 날려버렸다.
주택들 정원에 핀 빨갛고 하얀 장미꽃들이 화사한 얼굴로 반겼다. 난 콧노래로 화답하며 유유자적하게 마을길 드라이브를 즐겼다. 이윽고 메스키토 나무와 회전초 사이사이로 앙칼진 잎 줄기 끝에 핀 야한 선인장꽃으로 태초부터 가꾸어진 검푸른 정원이 나왔다. 황량한 사막에서 자라는 신비로운 생명력에 탄성이 흘러나왔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찬송을 흥얼거렸다.
언덕 정상에 삼각형으로 우뚝 솟은 아름다운 교회가 보였다. 창립 예배드리던 지난 주일의 북적대던 순간이 가슴 벅차게 떠올랐다. 하필, 이때 또다시 '오늘은.... 가족 외의 다른 성도가 있을까?' 하는 불안이 다시 살아났다. 이때 교회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붉고 화려한 불빛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 호랩산의 떨기나무 불꽃 앞에 서 있는 모세가 되었다.(성경 출애굽기 3장 1-12) 백미러에서도 붉게 타오르는 태양이 비췄다. 난 두 불빛 사이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느꼈다. 자신의 충성된 종에게 '두려워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라고 외치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깊은 내면에 숨어 있던 두려움과 외로움, 초조함과 불안했던 모든 일들이 모아져 북받쳐 올랐다. 양볼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파킹 낫에 도착한 난 육체의 굴레를 벗은 신성한 존재라도 된 듯 사뿐히 주차를 했다. 아래로 벌집처럼 가지런히 정돈된 주택들이 평화롭게 널려있었다. '사랑과 지혜가 필요한 이들이 저 안에 살고 있겠지....' 동쪽을 바라보다 북쪽 마을을 향하고, 서쪽, 남쪽에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주택들을 번갈아 보고는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아직도 이글거리는 화로의 숯불처럼 구름들이 하얗게 타고 있었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 해 상처받은 얼굴들, 억울하게 오해받고 오해하며 쪼그라든 사람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술을 벗 삼아 곤고하게 사는 이들이 이곳에서 치료받고, 지혜를 배우고, 용기를 얻고, 꿈을 꾸고, 내일을 향해 힘차게 출발하게 해야지.' 나는 어금니를 지긋이 물었다.
어느새 하얗게 변한 태양이 검은 구름과 파란 하늘을 들락거리며 숨바꼭질하고 있었다. '인생은 선과 악 사이를 여행하는 것이야'라고 이야기하는 듯했다. 난 품격 있게 교회 정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었다. 하늘과 맞닿은 동산의 숲과 잘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고딕 양식의 교회 앞에 선 난 성스러운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정문 앞 정원엔 요염하게 빨갛고 하얗게 핀 두 양귀비꽃이 옥색 잎과 줄기 끝에서 하늘거리고 있었다. 새들이 한 짓일까? 누군가 가꾸던 것일까? 하필 정문 앞에 양귀비꽃이 피어 있을까? 길하고 불길한 예감이 머릿속에서 또다시 엎치락뒤치락거렸다.
출입문을 힘주어 열었다. 하늘로 향한 유리문으로 뿌연 통로를 만들며 들어온 빛이 실내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지그시 눈을 감고 활홀감을 즐기다 떴다. 천사들에게 어울릴 옥색 의자들이 극장식 기울기에 따라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중앙 복도엔 빨간 카펫이 성도들을 거룩한 제사장으로 대우하려는 듯 펼쳐져있었다. 아래론 '가르치고 선포하는 설교가 아니라 섬기는 자세로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해'라고 이르듯 가장 낮은 곳에 보면대가 놓여있었다. 옆에 놓인 하얀 백합은 '순결해야 해'라고 말하고 피아노에선 은은하게 '어메이징그레이스'의 음률이 흐르는 것 같아 살포시 눈을 감았다.
성도들이 활동하는데 불편한 점은 없을까? 식당, 화장실, 성경공부방 구석구석을 살폈다. 그러곤 사무실로 돌아와 안락한 소파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하지만 초조함이 쉬도록 두지를 않았다. 시계를 보고 또 보았다. 바늘이 껑충껑충 뛰었다. 10시 반이 되었다. 이때 시험장으로 들어가는 자녀를 지켜보는 초조한 어머니의 눈빛을 한 아내가 아들 딸과 함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난 "오늘 주보야"라며 아내에게 주보 뭉치를 건넸다. 채점하는 선생님처럼 꼼꼼히 훑는 동안 북새통이던 지난 주일의 기억이 고요함을 불안한 적막으로 바꿨다. 아내가 이를 뛰어넘으려 두 손 들어 파이팅 하고 사무실을 나갔다.
11시 10분 전이다. 성경과 찬송가를 옆구리에 끼고 거울 앞에서 허리를 곧게 펴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리고 엄숙하게 성전을 향해 걸었다. 빨간 카펫을 지나고 낮은 곳에 놓인 보면대 앞 의자에 앉아 눈을 감았다. "성도들을 보내 주세요" 기도하고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아무도 없는 공허한 공간에 요괴할멈이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11시 정각이다. 초연해지려 숨을 크게 들이쉬어 내뱉고는 보면대 앞에 위엄 있게 섰다. 왼쪽으로는 아들이 오른쪽으로는 딸이 걱정스럽게 두리번거리며 들어와 중간 정도의 의자에 앉았다. 아내는 몸을 옴츠린 채 주보를 두 손으로 모아들고 발을 동동 구르며 출입구에서 성도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 허공에 눈길을 향하고 "시간이 되었으므로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을 때 한 청년이 엉거주춤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와 뒷 좌석에 앉았다. 난 에둘러 태연한 태도로 예배를 인도하고 '신앙은 삶의 기본인 마음을 평화롭게 다스리는 일'이라고 설교를 했다. 청년은 고개를 끄떡이며 공감을 표했다. 아내와 아들 딸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고 또 두리번거렸다. 모두 일어서서 찬송을 부른 뒤 난 두 손을 들고 "이제는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한량없으신 은혜와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하심과 성령의 감동 감화 교통하심이 오늘 예배한 성도들 머리 위에 영원히 함께 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라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축도를 했다. 그리고 서둘러 성전 입구로 이동해 예배한 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내가 기도를 마치고 먼저 나오고 아들과 딸과 청년이 그 뒤를 따라 나왔다. 한 명 한 명 각기 다른 뜻이 담긴 감각으로 악수를 했다. 청년에게는 손을 힘 있게 잡아끌며 말했다.
"식사하고 갈 수 있지요?"
"아, 네." 라며 청년이 고개 숙여 답했다.
모두가 식당으로 가 식탁에 들러 앉았다.
"유천입니다." 오른손을 내밀고 청년에게 살갑게 인사했다.
"황수환입니다."
"어떻게 교회에 오시게 되었나요?"
"교회가 너무 예뻐, 지나다 들렸어요."
성스럽고 아름다운 교회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는 데 성공한 기쁨에 아내와 난 서로 눈맞춤했다.
"평소에 신앙생활을 하셨나요?"
"어릴 적 몇 번 여름 성경학교에 친구를 따라간 적이 있어요."
"그러셨군요."
"하나님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지만 아름다운 교회를 보며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나와 아내는 행복한 미소로 또다시 눈을 맞췄다.
"저희 교회는 감정과 이성을 진리와 사랑 안에서 조화롭게 다스리며 생명력 있는 삶으로 인도하려 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유함 속에서 각자에게 창의력과 은사를 마음껏 발휘하게 하면서. 가족처럼 지내며 함께 신앙이 주는 생명력과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청년이 고개 숙여 답했다.
나와 아내는 부엌으로 가 지난밤 준비 해 놓은 갈비탕을 하얀 사기그릇에 담아가지고 나왔다. 겨우 5명이지만 풍성하고 여유 있는 듯 헛웃음을 웃고 떠들며 식사를 했다. 10명 분의 음식을 준비한 아내는 남은 갈비탕을 병에 모두 담았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청년에게 건넸다. 그는 어쩔 줄 몰라 꾸뻑 허리 굽혀 인사하고 떠났다. 아내가 "한 주에 한 명씩만 나와도 1년이면 52명이 될 텐데..."라며 염려와 소망을 함께 담은 미소를 지었다.
두 번째 주일이 되었다. 사무실에서 난 무릎을 꿇었다.
"진리와 사랑 안으로 인도할 성도들을 보내 주세요"라고 마음을 모아 기도했다.
성전으로 들어와 보면대 앞에 선 난 수환의 양 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청년 둘을 보았다. 먹이를 찾아 창공을 날던 굶주린 매가 토끼를 발견한 듯 반짝 눈동자가 빛났다. 이때 또 아들처럼 보이는 학생과 함께 중년 여인이 그들의 뒷자리에 앉고 있었다. 이글거리며 타오르던 붉은 태양이 "약속 지켰지?"라며 방긋 웃는 것 같았다. 누구든 무엇이든 이해하고 용서하고 품을 수 있을 듯 넓은 가슴이 되었다. 불안 따위는 얼씬도 못할 자신감 넘치는 위엄 있는 목소리로 설교를 했다.
예배 후 식당으로 간 난 새로 나온 두 청년과 인사를 하고는 아들과 나란히 앉아 있는 중년 여인에게로 갔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고는 악수를 청했다.
여인은 올려다보며 말없이 손만 내밀어 응했다.
"아랫마을에 사시는군요."
"네. 지난주에 이사 왔어요."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에 잘 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깊게 엮이고 싶지 않아 거리를 두려는 눈치가 읽혔다. 불쾌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이제 좋은 교회를 찾는 일만 남았군요."
"네, 하지만 교회는 많은데...." 하고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으며 낚시꾼 떡밥 던지듯 물었다.
"교회를 찾는데 특별히 고려하는 것이 있나요?"
"성령 충만한 교회를 찾고 있어요. 아들의 신앙을 잘 지도할 수 있는....."
덥석 미끼를 문 여인에게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사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을 거예요."
"목사님은 성령충만한 교회가 되기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면접관 앞에 선 듯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하지만 낚시에 걸린 물고기를 놓칠 수 없는 의지를 담아 또박또박 답했다.
"성령을 어떻게 이해하는지, 어떻게 성령충만하게 되는지를 성도들과 먼저 나누려 해요. 신앙은 주입하는 것도 강요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한 교회 안에서, 한 하나님을 믿으며 갈등하고 다투다 분열하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고."
신선한 답에 화사한 반응을 기대하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원하는 답이 아닌 것을 몸이 먼저 알고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것이 어떻게 토론할 주제가 되느냐'는 듯 찌푸린 표정으로 말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 아니에요? 성령충만한 교회가 되려면 성령충만한 설교가 선포되어야 하는 것이고.... 물론 성도들도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하는 것은 성령충만한 목사이지요."
잠시 깊은숨을 몰아쉬고는 공감으로 먼저 마음을 사려 말했다.
"맞아요.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러나 성령은 어린아이와 어른,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중동의 각 나라에 사는 사람은 물론, 배우고 배우지 못하고,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가난하거나 부자이거나, 석기시대나 AI시대를 사는 사람이거나 관계없이 순수하면 누구나 공감하며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의 주인이기도 해요. 그런데 오로지 신비한 기적으로 신앙인의 이기심과 욕심을 채우는 사랑의 영으로만 알고 있어 성도들이 기사 이야기 책을 읽고 망상에 사로잡힌 '돈키호테'가 되는 거예요."
사이비 기사에게 공격당한 풍차처럼 그녀가 날렵하게 반격했다.
"문제를 풀 열쇠는 목회자의 기도이지요. 성도들이 뜨겁게 찬송하고 기도하며 죄를 회개하고, 죄의 유혹을 이기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삶에 임하여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행하게 하는 것이 기도잖아요. 제자들이 치료하지 못한 귀신 들린 아이를 예수님이 고치니, 사람들이 질문을 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은 왜 귀신 들린 아이를 치료하지 못하였느냐'라고. 그때 예수께서 '믿음 없는 세대'라 탄식하시며 '기도 이외에는 이런 유가 일어날 수 없다'라고 말씀하셨잖아요." (마가복음 9장 14-29)
당연한 것을 모르면 어떡하냐'는 듯한 질타에 안면 근육이 마비되는 듯했지만 애써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네, 맞는 말씀이에요. 하지만 많은 성직자와 성도들이 울고 불며, 새벽에, 밤에, 골방에서, 산에서, 교회에서 처절하게 기도하고 있어요. 그러니 '신비한 기적이라도 보여줄까? 세상을 보는 뛰어난 안목이라도 보여줄까? 아름다운 인격이라도 보여줄까? 현명한 지혜라도 보여줄까?' 사람들이 비록 남의 일이라 관심 없는 척하고 있지만 귀는 쫑긋 그쪽을 향하고 있어요. 그러다 대화조차 할 수 없는 답답함을 느끼곤 그들과 엮이지 않으려 피하고 있어요. 그런데 신분상승이라도 된 양 '남들과 다르다, 선택받은 사람이다' 떠벌이고 있어요. 그러다 외톨이 됨을 느끼고 '말세라'며 세상을 탓해요."
기운 싸움판에서 승기를 되찾으려 그녀가 날카롭게 물었다.
"예수를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예수와 구원에 대하여 먼저 설명해 보시겠어요? 그러면 제가 답을 드리죠." 미소 지으며 되치기 했다.
빨갛게 얼굴이 달아오른 여인을 보고 얼른 입을 열었다.
"예수는 한마디로 설명하기 힘든 분이세요. 하나님이고, 인간이고, 진리이고, 사랑이고, 구원자이고, 전능자이고, 상담자이고, 목자이고, 창조자이고, 종이고, 화평케 하는 자이고..... 이런 분을 어떻게 작은 머리와 새치의 혀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가 있어요. 구원 또한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용어입니다. 인간이 벗어나야 할 다양한 상태가 있잖아요. 이 두 개념을 먼저 일치시킨 후 '예수는 구원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느냐'를 말하고 '그것을 믿느냐?'라고 질문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예수와 구원의 개념이 아리송한데 '예수를 믿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느냐?'라고 물으면 아리송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잖아요."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가 될 수 없을 거라고 여긴 사람 앞에서 예상치 못했던 말들이 터진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인간이 사는 세상은 선과 악이 뒤섞여 있어요. 이런 곳에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지각을 동원해 생존과 종족 번식과 다양한 욕망을 성취하며 행복을 누리려 하는 존재가 인간이에요. 그런데 모든 감각이 오류투성이예요. 아주 미미한 지식의 한계를 가지고 있고. 그러니 두려움과 의심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경험한 행복과 실패의 아픔이 더러는 의식에, 더러는 무의식에 숨어,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개입을 해요. 그래서 우리는 혼돈 속에서 삽니다. 시와 때를 가리지 않고 별의별 죄를 지으며. 그런데 그렇게 지은 죄가 또 자신의 존재가치를 쓰레기처럼 여기게 해요. 이러한 문제에서 구원되려면 먼저 맑고 순수한 영혼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순수함으로 이 세상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여인이 예리하게 허점의 꼬리를 잡으려는 듯 물었다.
"정직한 영혼이면 당연히 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지요. 순수하면 생존하지 못할 것 같은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말이고, 정직하려면 자존심과 생명까지 던질 용기가 필요하다는 뜻을 품은 질문이니까."
공격적이던 여인의 표정이 누그러지는 것에 평안을 느끼고 조곤조곤 말했다.
"영혼이 맑고 순수해야 우리와 연결되어 있는 실체와 진리를 선명하게 볼 수 있어요. 그래야 모든 관계를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면 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거예요?"
그녀가 따졌다.
"지은 죄의 대가를 십자가의 죽음으로 대신 치르시고 '괜찮아, 다시 시작해' 라며 죄로 인해 상실된 하나님을 닮은 인간으로의 자아와 존엄함과 가치관을 회복하시기 위해서지요. 그리고 탄생부터 부활 후까지의 모든 삶이 말씀이 되어 진리에 눈뜨게 하는 거예요. 이러한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두려움과 이기심과 욕심으로부터 자유케 되어 창의력과 주어진 은사를 마음껏 발휘하며 가치 있고 행복하게 살다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하는 거 아니에요. "
할 말을 잃고 멍해진 여인을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정직하고 순수하게 되는 것은 나의 몫'이라는 고백도 해야 합니다. 고유하고 존엄한 인격으로 대우해 주는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그때 신앙을 삶에 옮기도록 하나님이 용기를 주지요. 결국 신앙은 믿고 의지하고 구하기만 하는 노예와 거지 근성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인격대 인격, 책임과 의무가 서로 교차되는 가운데 아름답게 형성되는 관계입니다."
자존심과의 갈등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여인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며 말했다.
"맹목적인 신앙도 있고, 진리와 사랑이신 하나님과 소통하며 감정과 이성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신앙도 있어요."
여인이 침을 꿀꺽 삼키는 것을 보며 말했다.
"무조건 믿고 충성하고 빌고 떼만 쓰면 어떤 신앙의 열매를 맺을지 상상해 보세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진리와 사랑이신 하나님과 소통하는 신앙의 열매는 어떤 것이 될까요?"
여인이 자존심을 지키려는 빛과 호기심의 빛이 다투며 눈동자가 일그러졌다.
"부끄러운 자신이 보이면 콧등에서 땀방울이 맺히고, 얼굴이 홍당무가 되지요. 이때 들리는 음성이 있어요. 이것이 되는 사람은 인격이 아름다워지고 진리를 깨달아 지혜가 커지지요. 그러나 욕심에 사로잡혀 '신비와 능력의 성령'을 믿는 사람은 오해와 착각에 오염된 뜨거워진 감정으로 왜곡된 신앙에 빠지지요. 그러곤 자신을 이용하려는 무엇인가의 종이 되지요."
여인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었다.
"순수하고 맑은 영혼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 성령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성령과 교통 하는 사람이 이런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진리 안에서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 맛을 보면 볼수록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점점 커지고, 한없이 넓은 사랑으로 원수를 품을 수 있는 여유까지 가지게 되는 거예요. 그러며 인간이 무엇인지, 세상은 어떤 곳이고 어떻게 운행하는 지를 아는 지혜 있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 되고요. 그러나 순수하기만 하고 음성을 듣지 못하고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순수함은 어리석음이 될 뿐인 거지요. 그런데 많은 이들이 이 진리를 모르고 감정이 뜨거워지는 것이 성령 충만 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성을 무시하는 뜨거워진 감정으로 신비한 기적과 축복을 구하며 교회나 성직자에게 충성하고 봉사하고 돈을 바치곤 하지요. 그렇게 바쳐진 뇌물이 미세먼지처럼 흩날리며 세상을 혼돈스럽게 하고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거 아니에요?"
여인은 얼 나간 표정으로 한동안 나를 바라보다 교회를 떠났다.
세 번째 주일이 되었다. 치열한 영적인 싸움을 벌였던 중년 여인은 보이질 않았다. 새로 나온 성도도 없었다. 성전 안에는 가족들과 청년 3명만이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으스스한 무덤 안 같았다. '그럴 줄 알았으면서, 나오지 않기를 바랐으면서, 왜, 이토록 나는 교회 문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는 것일까? 행하게 열려있는 교회문이 '들어온 성도를 그렇게 쫓아내면 어떻게 해'라며 속상해하는 것 같았다. 함께 이야기하고 또 하고, 질문하고 또 하고 공감되는 말로 이치에 맞는 길을 따라가고 또 가다 보면 숲 속을 헤매다 산삼을 발견 한 심마니처럼 환희를 맛볼 것인데, 사랑으로 하나 되어 태어나게 한 새 생명의 신비를 함께 바라보는 부부처럼 행복할 것인데, 치열한 전투에서 승리하고 얼굴을 마주 보며 승전가를 부르는 군인들처럼 영광스러울 것인데. 가슴 깊이 숨어 있는 상처들, 얼굴 빨개지게 하는 어리 석음들, 그리고 콧등에 땀나게 하는 부끄러움을 나누며, 진리를 찾아가면 수많은 생명들로 가슴 벅차게 하는 신비한 지혜의 맛을 볼 것인데.....'
허망하게 잃어버린 사랑으로 두 볼에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다섯 번째 주일이 되었다. 울적함을 달래 주려는 듯 젊은 여인이 늙으신 어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예배 후 식당으로 들어온 내게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가 교회에 나온 건, 죽을 준비 하려 나온 거예요. 천국 간다는 건 양심이 허락 치를 않지만 그래도 장례는 치러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러다 혹 천국행 티켓이라도 딴다면 복권 타는 셈 치려고요"라고 말한 후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가 나를 두목이라 부르며 앞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걱정 마세요 어머님, 장례와 천국 둘 다 보증을 할게요"라고 했다.
"감사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이해하실 것이 있어요. 딸이 5살 때 남편이 죽었어요. 어떻게 해요. 새끼 키우며 생존은 해야 할 것 아니겠어요. 체면 챙기는 건 저에겐 사치였어요. 행복이고, 가치고, 천국이고 그딴 걸 생각할 겨를도 물론 없었고. 제 말이 거칠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세요."라고 말하곤 고개를 떨궜다.
"꾸밈없이 대하시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큰 예우예요."
"그렇게 생각하시니 너무 감사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행복은 이제부터 챙기셔야죠"라고 따뜻하게 말했다.
"모르겠어요. 그것이 될지."
"챙기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이라도 있나요?"
잠자코 생각에 잠기곤 "네"라고 몇 끼 굶은 소리로 답했다.
"그것이 뭐예요?"
"나라고 왜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고, 맛있는 것 마음껏 먹고 마시며 신나게 놀고 싶고, 돈 벌어 체면치례하면서 이름 내며 살고 싶지 않겠어요. 그런데 그럴 때마다 꼭 간섭하는 놈 하나가 있어요."
"아.... 아. 숨겨놓은 누군가가 있으시군요."
"숨겨놓은 누군가가 되고 싶어 하는 놈들이 있긴 했지요"라고 말하곤 숨 넘어갈 듯 또 깔깔거리곤 말했다.
"제가 그런 시시껄렁한 놈팡이들에게 휘둘릴 것처럼 보이세요?"
"그럼 딸?"
"딸은 놈이 아니잖아요."
"그럼..... " 하고는 수수께끼의 답을 떠올리려 애쓰고 있을 때였다.
"몰라요. 놈인지 년인지...."
나는 그녀의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나 좋은 대로 무언가를 하려 하면 가슴 안에서 간섭하는 것이 있어요. 그래도 무시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려면 찜찜하게, 울적하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는 거예요.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눈 찔금 감고 원하는 대로 해 버리면 '네가 사람이야?, 네 딸이 그걸 보고 자라면 어떻게 되겠어'라며 눈을 흘기다 우울해져 고개를 툭 떨구는 것 같아요."
"대화도 해요?"
"아니요. 신세타령만 하지요. '이놈의 팔자는 복도 없다고, ' 그러면 때로는 감싸 안고, 때로는 위로하고, 때로는 용기를 주기도, 때로는 자상하고 따뜻하게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면 실컷 울어요."
난 잠시 눈을 감고 있다 말했다.
"어머니는 예수님과 교통하고 있는 거예요."
"무슨 소리예요. 교회도 나가지 않는데....." 라며 어리둥절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어 우리 안에 계시며 필요에 따라 그에 맞는 사랑을 해 주시는 분이세요."
"그분을 믿어야 천국에 간다고 하던데...."
"그분과 이미 교통하고 있는데 믿고 안 믿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어요."
"사실, 잘 길들여진 강아지처럼 그에게 순종할 때가 더 많긴 했어요. 그에 따르려 손해 볼 때도 많았고, 갈등할 때도 많긴 했지만...."
"하나님께 순종하신 삶이에요. 각박한 세상에서 홀로 생존하시며 딸을 키워내시느라 많이 힘드셨을 텐데...."
어머니는 평생 겪은 산전수전의 이야기를 눈물을 글썽이다, 코를 훌쩍거리다, 깔깔거리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끊임없이 털어놓았다. 난 고개를 끄떡이다, 눈을 맞추며 "맞아요. 나쁜 놈들, 어떻게 그것을 이기셨어요" 등으로 추임새를 넣으며 그녀와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딸이 미안한 눈짓을 내게 보이며 "어머니, 목사님은 바쁘신 분이세요"라고 말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봐, 내가 이렇다니까" 하시곤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홀로 살고 있어 누추하지만 수요일 점심이나 대접하고 싶은데 저희 집에 방문해 주실 수 있으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물론이지요"라고 답했다.
그녀는 "그럼 그때 뵐게요"하고는 돌아서 가다 다시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다시 돌아서 가다 돌아서 또 인사를 하고, 다시 돌아서 가다 또 돌아서 인사하고 떠났다.
수요일, 아내와 함께 분홍꽃이 활짝 핀 양난 화분을 들고 시니어 아파트 105호 노크를 했다. 어머니가 활짝 핀 해바라기처럼 미소 지으며 문을 열고 반겼다. 신혼부부집처럼 아기자기하고 수려하게 가꾸어진 리빙룸 가운데 둥근 상이 놓여 있었다. 앞치마에 손을 닦던 어머니가 말없이 수저와 냅킨을 놓고 있는 낯선 할머니 소개를 했다.
"가족보다 더 가까운 친구입니다. 바로 옆집 106호에 살아요."
"그러시군요.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유천이라고 합니다. 함께 교회도 나오시면 좋겠습니다."
"그러잖아도 그러려고요. 친구가 목사님 칭찬을 얼마나 하든지....."
"그러셨어요? 딱 한번 뵈었을 뿐인데." 두 손을 모으며 쑥스럽게 말했다.
"이 나이 먹으며, 모든 것이 나빠졌는데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아직도 괜찮아요."라고 말하곤 어머니가 수줍게 웃었다.
친구가 소녀처럼 쑥스러워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꼬리곰탕 끓이는 냄새가 밤새 온 동네에 진동했어요."
"꼬리곰탕엔 깍두기가 짝꿍이라며 친구가 가져온 거예요." 빨그스레한 깍두기를 가리키며 어머니가 말꼬리를 돌렸다.
포근한 고향의 어머니 집에 온 것 같았다. 네 명이 한 상에 둘러앉았다.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 모두 눈을 감고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하나님, 두 분의 어르신들이 사랑으로 음식을 준비했습니다. 정성스러운 손길을 축복해 주시고, 우리의 만남을 통해 잃어버렸던 행복을 다시 찾아 신나게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 수저를 들려고 주위를 살필 바로 그때다. 날렵한 매의 발톱이 다람쥐를 낚아채 하늘로 치솟듯 어머니가 내 밥그릇을 가로채었다. 그리고 내 국그릇에 푹 쏟았다. "아이고, 아니에요" 라며 손을 휘저었지만 이미 모든 밥이 국그릇에 철퍼덕 쏟아져 버렸다. 황망하여 넋을 잃고 있는데 전투에서 승리한 장군이라도 된 듯 어머니가 명령하듯 말했다.
"다 드시고 더 드셔야 해요."
난 침노당한 사랑의 기쁨으로 말아진 국밥을 모두 먹어치웠다.
이 후로 두 분의 할머니는 나의 수호천사라도 되는 듯 매 주일 교회 맨 앞 줄에 앉아 고개를 끄떡이며 설교를 맛있게 먹고 마셨다. 난 그녀가 깔깔거리며 거침없이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괜스레 배가 불렀다.
한가한 토요일 정오였다. 수환과 친구들 세 명이 찾아와 아파트문을 두드렸다.
"아이고, 어쩐 일이세요?" 예상치 못한 방문에 당황한 아내가 문을 열고 말했다.
"오늘이 목사님 생신이지요?"라고 수환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오른손에는 커다란 맥주 박스가 들려있었다.
"아, 네" 아내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답하고는 주위를 도둑고양이처럼 살폈다. 그리고 얼른 맥주를 받아 냉장고 안에 넣고는 "감사해요, 이렇게 목사님 생일까지 챙겨주셔서"라며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영적인 지도자인데 당연히 챙겨드려야지요." 함께 온 청년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우리 부부와 세 젊은이가 함께 식사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수환이 친구들과 턱과 눈짓으로 말하고 일어나 냉장고로 향했다. 아내가 미소 지으며 물었다.
"맥주 찾으시지요?"
"네."
"저녁에 목사님이 약속이 있어서..... " 라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아, 그러시군요."
겸연쩍게 수환이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는 것을 보며 내가 입을 열었다.
"술이 때로는 생명에 활력을, 때로는 삶에 흥이 넘치게, 때로는 막힌 하수관을 시원스레 뚫듯 닫힌 마음을 열고 소통하게 하는 신비한 묘약이 되지요. 그러나 때로는 패가 망신하게 하는 아편이 될 때도 있어요. 그런데 교회에서는 아편으로 취급을 해요."
"천주교에서는 거리낌 없던데...." 수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말했다.
"교회의 문화가 아니고 개신교의 문화네요" 라며 아내가 미소 지었다.
"개혁한 사람들과 개혁당한 사람들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네요."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묘약의 신비한 능력을 함께 즐길 날이 기대가 돼요."라고 내가 말했다.
우리는 이미 묘약의 신비를 즐기듯 질문하고 답하고 질문하고 답하며 미래에 있을 행복까지 가불해 소통의 즐거움을 누렸다.
1년이 지났다. 새로운 성도들이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며 찾아와서는 더러는 발길을 끊고 더러는 정착하여 모인 교인이 50명가량이 되었다. 하지만 아내는 여전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웨이츠레스로 식당에서 일해 가족을 부양하고 교회 페이먼트까지 보탰다. 게다가 일요일조차도 성도들을 먹이느라 식당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교회를 이룰 꿈을 안고 열심히 성도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섬겼다.
그러던 우리는 어느 날부터인가 '하나님이 정말 계시는 걸까?'라고 의심하며 바싹 마른 화분의 화초처럼 시들시들해졌다. 때를 맞춘 듯 새로 나오던 교인도 발길을 뚝 끊었다. 꿈이 주던 용기와 힘까지 앗아가 버렸다. 순수함으로 하는 목회에 한계를 느끼며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혼돈에 빠져버렸다.
매달 갚아야 하는 교회당 페이먼트 날짜는 몇 주씩 건너뛰고 오는 것 같았다. 한 달 두 달 밀려 연체 이자가 붙었다. 빈 몸으로 성경만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사람, 무언가 얻을 것을 살피는 교인들을 향한 미움이 싹텄다. 맹목적으로 헌신하고 봉사하고 헌금 내는 그동안 답답하게 여겼던 교인들이 그리워졌다.
생존만을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늦은 저녁이었다. 나는 혀끝으로 맛을 보고 또 보며 끓인 두부찌개를 식탁에 올려두고 아들 딸과 함께 아린 가슴으로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휘청거리며 문을 열고 들어 온 아내가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불안과 함께 찢어지는 통증을 느끼며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무슨 일이야?"
"미친놈들이 너무 많아요."
잔 부딪치는 소리가 혀 꼬부라진 소리와 어울려 시끌벅적한 연기 자욱한 저녁 식당의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말없이 아내를 품에 안았다. 연기에 절은 고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미안 해, 능력 없는 남편 때문에...." 하고는 힘주어 아내를 안았다.
창립 예배를 드린 지 1년이 지난 한가한 화요일 오후였다.
"동창들 모임에도 나타나지 않는 걸 보니 성도들과 사랑에 폭 빠진 모양이구나"라며 동창 녀석이 느닷없이 들이닥쳤다.
"미친놈" 하고 활짝 웃는 그를 얼싸안았다.
"연락이나 하고 오지, 마른하늘에 벼락 치듯 나타나면 어떻게 하냐."
"이제 좀 안정이 됐지? 창립 예배 드린 지가 1년이 지났는데."
난 한숨을 크게 쉬고 넋두리했다.
"최신 유행의 헤어스타일에, 번지르르하게 인사도 잘하고,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는 달변가로, 감동의 순간을 적시에 포착하는 예브게니 오네긴(푸시킨,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의 주인공)도 사랑하는 여인 하나 아내로 삼지 못하는데, 주변머리도 없고, 허풍하나 떨지 못하는 놈이 뭘 하겠나?"라고 말했다.
"목사라는 놈이 하는 말이라고는....." 그가 눈을 흘겼다.
"처음 몇 달 동안은 하나님이 돕는 손길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어. 아름답고 권위 있는 성전과 경건하고 순결한 낮은 자세의 목사에게 끌려 사람들이 찾아오는 줄 알았지. 물론 더러는 따지고, 계산하고 떠나는 이들도 있긴 했지만.... 그렇게 정착한 성도들과 사랑을 나누느라 달콤했었어. 그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봉사하며 펑펑 헌금도 할 줄 알았고. 때가 무르익으면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 성도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올 것이라는 다부진 꿈을 품었어"라고 말하고 허망한 웃음을 웃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희망도, 용기도, 말할 의욕조차 사라져 버리는 거야. 그 자리엔 대신 빈집에 쌓이는 먼지처럼 불신과 불안만 차곡차곡 쌓였어."
"창립 예배 드리는 날 친구들이 둘로 나뉘었었어. 목회도 비즈니스 마인드로 해야 한다는 편과 아니라는 편으로."
"난 형제들의 믿음을 합해 재산까지 하나님께 바치면서 한 일이야."
둘은 말없이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
친구가 눈을 몇 번 껌뻑거리고 말했다.
"첫 예배드리던 날 정문 앞에 피었던 양귀비 꽃이 떠 오르네."
"한 쌍처럼 빨갛고 하얗게 피었던 꽃 말이야?"
"응" 하고 친구가 고개를 끄떡거렸다.
"사실 그 꽃을 보고 안에서 다툼이 일었지."내가 말했다.
"다툼?"
"응."
"어떤 다툼?"
"왜 하필 양귀비 꽃이 성전 앞에 피어있을까? 불길한 생각이 들었어. 그러나 헛웃음으로 무시하고 먼지 털어 버리듯 떨쳐 버렸어. 그리고 지나치고 걸음을 옮기다 다시 돌아보았어. 그때 그 꽃이 '아편의 능력으로 복음을 팔려는 못된 장사꾼'이라며 요염하게 눈을 흘기는 것 같았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나도 그 생각했어. 교회 건물이 아편이 된 거야. 이제 잊어버려.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일이야. 주신 것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시는 것도 하나님'이시야."
"그러려니 교회가 술집이나, 돈 많은 이단들에게 넘어가는 상상이 떠오르는 거 있지."
"까마귀를 동원해 엘리야를 먹이시는 하나님이 도우실 거야."
"글쎄..... 위로는 고맙지만 그렇게 일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왜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게 내버려 뒀겠어"라고 말한 후 나는 고개를 떨궜다.
"사실, 나도 잔잔한 물 위에 떠 평화로이 노니는 오리 신세야.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물밑에서 물갈퀴질해야만 하는.... '나는 무엇이고,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이지?'라는 회의에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 돼. 맹목적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기대하는 이들, 목회자의 거룩한 생활에 대리만족을 하려는 이들, 소셜 하러 나오는 이들, 거룩한 직분을 맡아 신분상승을 원하는 이들의 비위를 적당히 맞추는 수고의 열매지.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에게 '기도할게요, 기도 합시다' 그러다,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할 땐 '사기꾼'이라고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 그래서 '이 자리를 어떻게 면할까?'라는 생각을 하면 '네 스스로 먹고살 능력이나 있어?'라는 물음에 손톱 물어뜯는 버릇이 생겼어."
1년 1개월의 첫 주일이 되었다. 처음 보는 중년 신사 부부가 앞자리에 앉아있었다. 중후한 몸가짐이었다. 명예와 돈과 지식을 겸비한 사람이 분명했다. '일용할 양식을 물고 온 하나님이 보낸 까마귀'라는 기대가 풍선에 산소 불어넣듯 부풀어 올랐다. 원고에 없던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이 설교 중에 툭 튀어나왔다. 위기에 몰린 목사의 입이 구원자를 먼저 알아보고 아부를 했다. 그는 변호사였다. 난 그만 몸과 마음과 신앙의 색깔을 그에 맞게 변화시키는 카멜레온이 되었다.
다음 주일 그 부부는 두 부부를 더 데리고 나왔다. 성전이 가득 찬 것 같았다. 교회 재정 문제를 해결할 기대에 감사 기도가 나왔다. 식사 시간에 알게 된 것이지만 한 명은 중견 기업의 사장이었고, 한 명은 대학 교수였다. 이때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이야, 아니야' 뇌리 속에서 또 다툼을 벌였다.
몇 주가 지나도록 이들은 성도들과 어울리지를 않았다. 헌금도 하지를 않았다. 자기들끼리만 테이블에 모여 앉아 즐겁게 수다 떨며 식사하고 떠나곤 했다. 나는 태양 빛이 강하게 내리 쪼이는 뜨거운 모래사막을 홀로 걷는 듯 목마름을 느꼈다. 상대의 돈과 지위에 따라 움직이는 나 자신이 길에서 생존을 위해 꿈틀대는 지렁이 같았다. 구름을 보고도,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도, 꽃 피는 것을 보고도,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도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용기를 얻고, 불안해하는 나를 보며 파르르 떨었다.
1년 4개월이 지난 두 번째 목요일 오후 이들 6명이 우르르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쩐 일이세요." 기대반 긴장반인 통생강 씹은 말투로 물었다.
"목사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그러세요? 성도님들이 교회에 앉아 계시는 것을 보면 든든합니다." 아첨하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아, 그래요? 그렇게 인정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변호사가 말했다.
"목사님의 목회를 몇 주 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진리를 깨우치려 애쓰시는 모습과, 겸손하게 섬기시는 신선한 목회에 마음이 끌렸습니다." 교수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는데 교회와 목사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니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변호사가 입을 열었다.
"교회와 저를 위해 하시는 건데요. 걱정하지 말고 말씀하세요."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보여요."
"아, 그래요."
"순수하고 진리를 깨닫는 것만 가지고는 교회가 부흥할 수 없어요. 성령의 신비한 능력을 구하는 시대도 지났고. AI시대잖아요."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신가요?"
"비니지스마인드가 필요해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직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지위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을 평신도 지도자로 세워야 해요. 교회의 어려운 재정 문제를 그들이 해결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도움 받고 싶은 사람들이 덤으로 들어와 교회가 부흥하는 거예요."
"네, 맞는 말씀이에요. 그러나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상처받을까 염려가 되네요. 물론 순수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그렇고."
"부작용을 감수하지 않고는 큰 뜻을 이룰 수가 없어요. 순수하고 착하기만 해서는 선과 악이 섞여 있는 세상에서 생존할 수가 없어요. 보세요. 성도가 50명이나 되어도 사모님이 웨이츠레스를 면 할 수가 없잖아요."
순수한 성도들을 향한 끙끙거리던 불만이 후련하게 치유가 되었다.
"이상은 생존 한 다음에 이루어도 늦지 않아요. 존재할 수 없는데 이상만 가지고 있으면 뭘 해요."
"하나님의 자녀로 누구나 공평하게 대우받을 수 있게 하려는 마음이 이상일까요?"
"굳이 따지면 이상이라곤 할 수 없겠지만 현실과 동떨어지게 하지요."
"누구나 공평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교회라면 존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교회가 없어져도 좋다는 말씀입니까?"
"바르지 않은 교회라면..... 당연히"라고 말하곤 입을 굳게 닫았다.
그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일어서려 하였다. 다급해진 내가 말했다.
"떠나시기 전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그들은 못 이기는 척, 다시 앉았다. 나는 천천히 침착하게 말했다.
"신학교를 졸업할 즈음이었습니다. 유학 가는 친구들, 대형교회 부목사로 부임하는 친구들, 개척하는 친구들 각기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서로의 길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누군가 찾아와 아름다운 교회가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온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특별한 욕망이나 계획 없이 아내와 함께 가 보았습니다. 훌륭한 교회였습니다. 이곳에서 낮은 자세로 정직하게 목회하면 사람들이 몰려올 것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건강하고 바른 목회를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내가 차분하게 답하는 거예요.
'당신의 마음 알아요. 저도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페이먼트 감당할 만큼의 헌금이 들어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돼요. 단 한 명의 성도라도 있는 것도 아니고, 형제들의 공동명의로 있는 집까지 저당 잡혀야 하는데....'라며 부정적으로 말했습니다.
제가 의견을 냈지요. '형제자매들과 상의해 보자고' 그래서 다섯 명의 형제자매들이 모였습니다. 의견이 갈리더군요. '하나님의 뜻이다, 아니다. 하나님이 일하신다, 일은 하지만 그런 방법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페이먼트를 감당치 못해 매물로 나온 교회인데, 형이라도 별 수 있겠어?'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습니다.
뜻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아 잠잠해졌을 때 막내 여동생이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3 대째 내려온 신앙의 집안에서 겨우 목회자 한 명 나왔는데, 뜻을 펴도록 형제들이 힘을 모아 주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형제가 뭐예요' 하는 거예요. 아무도 대꾸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여동생의 말 한마디가 방 안의 공기를 하나가 되게 했지요. 그땐 그것이 우리 형제들의 사랑과 신앙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고 믿었고. 하지만 아니었어요. 감정에서 태어난 의리일 뿐이었어요. 결국 착각을 신앙으로 여기고 교회를 구매하고 창립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로 내 마음은 불안과 기대의 싸움터가 됐어요. 구름을 보고도, 태양을 보고도, 하물며 꽃을 보고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뜻을 읽으며 일희일비했어요."
"목사님의 그러한 순수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부족함을 채우시려 우리를 보내신 것 같아요." 기업인이 은혜충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구체적으로 부족함을 채우실 뜻이 있으신가요?" 재정을 책임지겠다는 말을 듣고 싶어 물었다.
"평신도 리더십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목사님은 베일에 싸인 신성한 모습으로 목회만 하시는 거예요. 신비하고 능력 있는 말씀을 선포하고 기도해 주는 역할만하시는 거예요."
사이비 종교 교주가 되라는 듯 해 두근거렸다.
"목사님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시면 교회가 부흥할 수가 없어요. 성도들이 교회 나오는 이유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고 나오는 거잖아요. 그러나 하나님이 보이질 않으니 대신 목사님을 바라보는 거예요. 그러한 성도들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목회가 성공하는 거예요. 성도들을 깊이 생각하게 하면 안 돼요. 단순히 믿게만 해야 하는 거예요.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신앙은 자라지 않고 머리만 커져요. 그리고 따지고 시비만 걸어요. 헌금도 내지 않으며. 당연히 목회하기가 힘들어질 수밖에요. 그런 교회는 부흥할 수가 없어요. 보세요, 부흥하는 교회를. 성도들의 감정을 뜨겁게 만들어서 오로지 믿게만 하든지, 단순하게 '믿어라 믿어라, 믿어라, 그러면 축복하신다'를 반복해서 외치며 세뇌시키는 교회잖아요. 목회자는 신성한 카리스마 빵빵한 존재가 되어 있고요."
변호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따뜻하고 부드럽게 나를 설득했다.
난 눈을 감고 잠자코 있다 차분하게 말했다.
"난 '신앙은 첫 단추를 바르게 끼우는 것'이라고 설교하며 첫 단추를 잘못 끼우고 목회를 시작했어요. 이젠 첫 단추를 바르게 끼워야 할 때라 생각합니다."
그들은 다시 주일에 보이지 않았다.
창립 예배를 드린 지 1년 3개월 3번째 월요일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둘째 동생이었다.
"은행에서 연락이 왔어.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다네."
맑은 물에 던저진 동전이 기우뚱거리며 바닥으로 가라앉듯 마음이 차분해졌다. '축 창립기념 예배'의 배너 앞에서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보았다. 기대에 부풀고, 좌절하고, 사랑을 느꼈던 행복했던 순간들, 거룩한 옷을 입고 벌였던 치열한 싸움판의 다큐가 생생하게 재생되었다.
난 영화관람을 마치고 나온 듯 가벼운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담담하게 앉았다. 그리고 좌판을 두들겼다.
"양귀비 꽃 핀 아름다운 교회를 포기하기로 했다. 신앙의 단단한 껍질을 깨려 그리도 치열했던 내적인 갈등이 있었나 보다. 마침내 겨우 갓 세상으로 나와 함초롬이 젖어 있는 비틀거리는 병아리처럼 몸을 파르르 떨며 글을 쓴다. 하지만 날 수 있을 듯 마음은 가볍다. 맑고 신비 가득한 세상이 선명하게 보이는 듯하다. 이렇게 되기까지 신뢰하고 기다려 준 동생들의 사랑에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욕망을 성취하고 싶은 마음을 절제하도록 도우신 주님께도 감사드린다. 우버 기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로 결정하니 가슴이 오히려 싱싱하게 부풀어 오른다."
보내기 버튼을 꾹 눌렀다.
막내 여동생이 바로 답을 보냈다.
"오빠, 잘했어요. 잃어버린 재산을 통해 우리 형제자매의 신앙과 우애를 확인한 것에 감사해요. 비로소 오빠가 학문과 실재의 조화를 이루었다고 여겨지네요. 우버 손님들로 만나는 성도들을 상대로 하는 목회에 아름다운 열매가 맺힐 거예요. 사랑해요. 오빠."
마지막 예배 드릴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다. 깊은 꿀잠이었다. 오랜만의 쉼에서 깨어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상쾌한 주일을 맞았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싱그런 새벽 산소의 맛과 감촉을 즐기며 교회로 향했다. 마을을 지나 구불구불한 태초부터 있는 사막의 정원을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드라이브하고 있었다. 교회 스테인글라스에 비친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불이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백미러에 꼭 맞춘 주황색 꼬마 태양도 비췄다. 나는 갓길에 자동차를 세우고 뒤를 돌아보았다. 핑크 빛 넓은 하늘 가운데 붉고 둥근 태양이 가슴 벅차게 솟아오르며 말했다.
"진리와 사랑의 조화가 낳은 화평케 하는 예수와 소통하며 하나 되는 행복을 먼저 누려 봐. 거기서 나온 힘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될 거야."
가벼운 마음으로 마지막 예배를 위해 낮은 보면 대 앞에 섰다. 정들었던 성도들과 헤어지고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가슴을 저몄다.
"여러분께 죄송한 마음 먼저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양귀비 꽃 핀 요염한 교회를 세워놓고 여러분을 아편에 중독될 위험에 빠지게 했어요. '잘 못 끼워진 첫 단추를 바르게 하는 것이 신앙'이라 설교까지 하면서.... 하지만 오늘,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바르게 끼우려 합니다. 화평케 하는 이와 교통 하며 진리와 사랑이 조화된 삶으로 각기 다른 모든 존재들과 소통하는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일터로 출근하는 젊은 이, 여행 가는 연인, 진찰받기 위해 집을 나서는 노인, 디즈니랜드로 나들이 가는 가족들, 무거운 책가방 들고 도서관 가는 학생 등 다양한 손님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리는 보람을 느꼈다. 각기 다르게 사고하며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며 갇혔던 새장을 빠져나와 신기하고 새로운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는 카나리아가 된 것 같았다.
이른 아침 공항으로 향하는 중년 부인이 차에 올랐다.
"어서 오세요. 비 온 뒤의 세상이 초록색 이끼로 덮인 싱그런 숲 속 같아요."라고 인사를 했다.
물방울 떨어지는 듯한 인사에 귀가 번쩍 트인 여인의 동그래진 눈동자가 백미러에 비친 내 눈과 마주쳤다.
"어머, 목사님 아니세요?"
"제가 목사인 걸 어떻게 아세요?"
"아름다운 교회 창립 예배 드릴 때 성가대원으로 참여했어요."
"아, 그러셨군요."
"그런데 어떻게...." 안쓰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교회와 집이 은행으로 넘어갔어요."
"어머나, 많이 힘드셨겠네...."
"아팠지요. 하지만 지금은 따스한 봄 햇살에 통통하게 물오른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 된 것 같아요."
"아니, 어떻게 집과 교회 모두를 잃었는데....." 여인이 가련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양귀비 꽃 핀 교회를 떠났기 때문이에요."
"교회 정문 앞에 요염하게 피었던 두 양귀비 꽃?...."
"기억하시는군요. 꽃의 존재가 우연일까? 필연일까? 가슴속에서 1년 내내 엎치락뒤치락했어요."
"저도 사실 그날 '교회 성전 입구에 양귀비 꽃?' 하고는 갸우뚱했어요. 그러다 빚으로 산 교회인 줄 알고 걱정을 했어요. 빚을 다 갚으려면 아편을 팔아야?..... 상상하다 그만뒀어요."
"세상엔 누구에게나 공감되는 장면이 있나 봐요."
침묵이 흘렀다.
"자초지종이 궁금하네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여인이 물었다.
"성도님 상상이 맞아요. 아편을 팔려다 실패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여유 부리는 삶을 살 수 있어요."
"예수를 '화평케 하는 자'로 부르며 문제가 해결됐어요."
거울에 비친 내 눈을 현미경 들여다보듯 하는 여이에게 말했다.
"예수와의 관계가 수직관계에서 수평관계가 되었다는 뜻이에요."
"안개 자욱한 숲 속에 있는 것 같아요."
"예수님과 수직관계일 때는 먼저 내가 필요한 것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떼를 썼어요. 아프고 억울함도 호소했고. 그러며 예수께 잘 보이려 경건하고, 봉사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려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보니 내가 위선자가 되어 있는 거예요. 갈등하며 괴로웠어요. 그러다 교회와 집을 잃는 고통을 겪으며 화평케 하는 예수를 이해하게 됐어요. 그 후로 '이 상황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질문하고 상의하는 기도를 했어요. 예수님과 인격적인 수평관계가 된 거지요."
"그랬군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여인은 맞장구쳤다.
"'아들 대학시험에 합격시켜 달라, 남편 승진하게 해 달라' 기도했어요. 그때 네 아들 때문에 억울한 학생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지? 네 남편 때문에 유능한 직원이 탈락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소리가 내면에서 들리는 거예요. 기도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기도는 명상이라 여기고 아름다운 인격을 만들어 보려 애썼지요. 열심히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봉사하는 사람들이 허접하게 보이는 거예요. 그들과 어울려 있는 자체가 싫어졌어요. 설교를 듣고 있으면 오히려 화가 났어요. 방황하다 결국 교회를 떠나게 됐어요."
"그랬군요. 양귀비 꽃 핀 교회를 떠나니 '종교는 아편이라고 외치던 칼 막스도, 신은 죽었다던 니체도, 종교를 미워하던 쇼팬아우어와 촬스 도킨스까지 이해해 주어서 고맙다'라고 반가워하는 것 같아요. 칸트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르스토텔레스와 공자도, 맹자와 노자도 '순수함 가운데 각기 다르게 이해하고 표현한 사랑과 진리를 나누는 공동체에 들어온 것을 축하한다'며 환영해 주는 것 같아요."
"창립예배 때 하셨던 말씀 기억하세요?" 그녀가 물었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라고 말하곤 난 부끄럽게 웃었다.
"말씀 들으며 갸우뚱했어요. '빚을 얻어 산 아름다운 교회가 첫 단추를 바로 끼운 것일까? 가장 낮은 곳에 보면대를 놓으신 목사님이 진실일까? 연극일까? 언젠간 드러나겠지?' 라며 미래에 그 진실이 밝혀질까? 궁금했어요."
"산과 들에서 양귀비 꽃 핀 교회를 떠난 모두가 함께 예배를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날씨 좋을 땐 공원이나, 해변이나, 산의 운치를 맛보고 비 오는 날이면 피할 곳을 찾는 즐거움도 누리며....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교회는 없다고 생각되는데...."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혼돈 속에서 탈출해 나온 난 판단하고 결정하기가 쉬운 삶을 느끼며 말했다.
"그렇게 하죠. 미성숙하고 죄짓는 인간이 서로 만나, 고백하고, 들어주고, 이해하며, 용기를 주고받으며 진리와 다름을 보고 깨달아 함께 나누며 성숙하는 공동체, 상상만 해도 가슴이 부풀어 올라요. AI시대를 맞아 일자리 뺏길 염려에, 하고 있는 일과 공부의 무의미를 예상하는 불안으로 의욕과 웃음을 잃고 있는 이들에게, 사고의 능력이 소멸되는 세상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 외치고 싶어요."
"너희 모든 목마른 자 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이사야 55장 1-2절 )
"공감의 언어로 세상을 다스리며 행복하기를 원하는 분은 오세요."
여인이 추임새 넣듯 소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