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귀한 예우

정직한 영혼과 영혼이 만날 때 공감의 언어로 소통되는 신비

by 지준호

꽤 오래전 청운의 꿈을 품고 목회를 시작했다. 하나님 닮기 원하는 사람들이 모인 천국 닮은 교회에서 사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 진실하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장애물이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까지 돕는데.....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품었던 꿈이 아침 햇살에 안개 끼는 듯했다. 그리고 나는 무얼까? 내 인생의 가치는 무얼까? 하나님은 무얼 하고 계시는 걸까? 과연 교회가 하나님의 집일까? 하는 회의가 그 자리에 채워지고 있었다.

그즈음이었다. 한 할머니께서 교회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예배가 끝난 후 식당엘 갔다. 할머니께 다가가 의례적인 인사를 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가 교회에 나온 건, 죽을 준비 하러 나온 거예요. 천국 간다는 건 양심이 허락 치를 않지만 그래도 장례는 치러야 할 것 아니에요. 그러다 혹 천국행 티켓이라도 딴다면 복권 타는 셈 치려고요"라고 말하곤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리스인 조르바'(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가 나를 두목이라 부르며 앞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해처럼 밝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어머님, 장례와 천국 둘 다 보증할게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목사님이 이해하실 것이 있어요. 딸이 5살 때 남편이 죽었어요. 어떻게 해요. 새끼 키우며 생존은 해야 할 것 아니겠어요. 체면 챙기는 건 사치였어요. 행복이고, 가치고, 천국이고 그딴 걸 생각할 겨를도 물론 없었고. 제 말이 거칠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세요."라고 말하곤 고개를 떨궜다.

내 입에서 머릿속에 없던 말이 툭 튀어나왔다.

"꾸밈없이 대하시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귀한 예우입니다."

"감사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정직한 것 하나는 자신 있어요."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신선하고 신비스러운 에너지를 느꼈다.

"정직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는 아리송했던 말씀이 선명해졌다. 영혼과 영혼이 정직하게 만날 때 공감의 언어로 사랑이 깊어지며 하나 되게 하는 지혜가 보인다. 정직하게 묻고 대답하면서 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섬세하게 보게 하며 진리를 드러내는 오묘함에 활짝 웃었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친밀한 관계를 맺는 데 정직 보다 더 훌륭한 것이 있을까? 이보다 더 세상살이를 쉽게 하는 것이 있을까?

하지만 체면치레와 질투 그리고 경쟁 치열한 세상에서 정직하기란 생명을 포기하는 듯 힘겹다. 그러나 그 너머에 새로운 생명을 숨겨 두신 하나님의 심술에 짜릿함을 느꼈다.

이 후로 신앙의 패러다임이 전환되었다. 수직이 아닌 수평관계로 나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져 가슴이 뜨거워졌다. 나의 인격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내 안에 계시며 정직하게 질문하게 하시고 그에 따라 답하시며 지성을 키우시는 은혜가 새롭다.

내 기도가 달라졌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며 떼쓰던 기도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는 무얼까? 깨닫게 하시는 것은 무얼까? 질문하는 기도로. 다양한 성도들의 신앙, 성격, 호불호를 섬세하게 바라보며 그에 따른 적절한 대응은 무얼까? 질문하고 응답받았다. 그즈음부터 목회가 쉬워지기 시작했다.

인간은 생존과 번식, 욕망과 사랑, 현실과 이상 사이에 저마다의 비중을 두고 산다. 따라서 각 개인이 모두 다르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도 없다. 더러는 감정에, 더러는 이성에, 더러는 성경에, 더러는 사랑에, 더러는 예식에, 더러는 죽어서 가는 천국에, 더러는 삶에서 경험하는 천국에 초점을 맞추고 나름의 신앙생활을 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면 듣고 이해하는 것이 먼저다. 다름을 파악하고 진리와 사랑을 대입하며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지혜 중의 지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는 말씀이 새롭다. AI가 쓰나미처럼 무서운 속도로 밀려오는 시대에.

'미래는 어떻게 될까? 어떤 직업이 사라지는 것일까? 생존을 위해 무엇을 할까?' 염려에 사로잡힌 채 살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나가 자신을 보고, 질문하고, 답을 들으며 주어진 환경을 아름답게 다스려 나와 인간들에게 유익한 존재가 될 꿈으로 가슴이 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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