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를 꼭 얻어야 읽었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디서였더라. 책 관련 어떤 모임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한국 사람들은 책에서 교훈을 얻고 싶어해요.”
기본적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도 훌륭한 행동으로 인지하고 따라서 책 속에서 반드시 무언가를 배워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아이가 나도향의 <물레방아>나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교훈이 도대체 뭐냐며 구시렁거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글쎄, 이 소설들이 주는 교훈이 뭘까. 이솝우화를 읽으며 교훈을 찾는다면 모를까 소설에서도 꼭 교훈을 얻어야 하는 것일까 자문해본다. 그런데 요즘은 교훈을 넘어 무언가 꼭 이득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이 책을 읽으며 뭔가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정말 강한 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요즘 세태를 보면 비단 독서 행위에서만 뭔가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해본다. 무슨 일을 하든, 하물며 인간 관계를 맺는데도 얻을 것이 있어야 유지되니까.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욕망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과거보다 젊은 세대로 갈수록 그 열망이 강해지는 것을 보면 본성을 넘어섰다고도 느껴진다.
그런데 내가 왜 불쑥 교훈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냐면, 며칠 전에 조카의 동화책을 고르러 갔는데 책 뒷부분에 온통 이 책을 읽고 나면 얻을 수 있는 지식에 대해 늘어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화책은 그냥 책이요, 이야기니 읽고 즐거우면 그만일 법도 한데 요즘 세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부모님들은 하나라도 더 배울 수 있는 책을 고르는 것 같다.
책의 뒤편에는 책 내용이 누리 과정과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 혹은 생각다지기, 내용과 연계된 지식을 설명해둔 것, 문화나 동식물 생태에 관한 부수적 지식들, 비슷한 사례들의 예시 등 다양하게 언급했다. 책 내용에 관한 질문을 해둔 책을 보면서는 이것은 문제집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니엘 페나크는 소설을 소설처럼 읽으라고 했다. 시험을 보거나 다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 대가 없이 그저 할머니가 해주시던 옛날 이야기를 듣던 것처럼 이야기 자체에 빠져들라는 것이다. 그래서 <읽고 나서 침묵할 권리>, <건너뛰며 읽을 권리>, <읽다가 말 권리>, <군데군데 읽을 권리>를 누려도 좋다고 했다. 누구든 어떻게 책을 읽든 내 멋대로 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어린이들은 책을 읽고 나서 제대로 이해했는지 주변 어른들에게 검증을 받아야 할 처지에 이르렀다. 책을 읽고 나서 어른들에게 시험 아닌 시험을 치뤄야 하는 어린이들을 볼 때 참 측은하게 느껴진다. 나처럼 책을 대충 읽기를 즐기는 사람으로써는 참으로 가혹한 처사가 아닌가.
한 가지 더 언급하자면, 책을 파시는 분은 그림책의 고증을 강조했다. 명작동화라면 삽화를 사실적으로 그려야 하며 정확한 고증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신데렐라>는 17세기 프랑스가 배경이니 삽화 역시 17세기 프랑스 풍의 의식주 양식으로 그려야 옳다고 강조했다. <선녀와 나뭇꾼>에서 나뭇꾼은 바위 뒤에 숨어서 선녀를 훔쳐보는데 그렇지 못한 책들과 비교해 보여주었고 하늘나라로 두레박을 타고 올라감에도 그렇지 못한 ‘오류’들을 지적했다.
창작동화는 마음껏 상상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창의적으로 그린 그림이 적절하지만 명작동화의 경우는 다르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정확한 지식을 전달해주고 궁극적으로 두뇌 발달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예전에 미술 작품에 대한 강연을 들을 때 강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현대 미술은 감상자가 멋대로 상상을 하며 즐겨도 좋지만 명화는 정확한 지식을 갖고 감상해야 한다고. 이와 마찬가지로 명작동화 역시 정확한 삽화가 필요한 것일까.
어렸을 때 중동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동화를 읽은 적이 있다. 그 때 등장인물이 무화과 열매를 먹는 장면이 있었는데 나는 무화과 열매를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해 이 열매를 내 멋대로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경우 사실적인 삽화가 그려져 있다면 물론 유익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 몇 분동안이지만 조물주가 되어 내 머릿속에서 무화과라는 과일을 창조해냈다. 그 무화과가 획기적이고 신통방통한 것은 아니었지만 내 상상력의 범위 안에서 생김새와 색깔과 향기를 만들어냈으니 비록 아주 작은 경험이지만 이 또한 멋지지 않은가. 왜냐하면 이런 상상은 오직 책으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 때문이다.
구세대인 나는 잘 모르겠다. 명작 동화에는 반드시 사실주의 삽화가 들어가야 하는지, 교훈을 넘어 수많은 지식을 얻어야 그 책을 읽었다고 할 수 있는지, 책 내용이 도덕적 범주를 벗어났다면 모를까 그럼에도 책 내용이나 그림을 옳거나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지. 더군다나 그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이들의 두뇌발달의 척도가 되어야 하는지.
아무튼 지금 세대의 어린이들은 너무 피곤하구나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얼렁뚱땅, 어물쩍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 어수룩하게 약간의 손해도 용납되지 않는 시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