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늘지 않는 나의 독서량에 관하여
중학교에 입학해 첫 물상 시간으로 기억한다. 아니, 어쩌면 첫 시간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물상교과서에서 그 단원의 제목이 “운동”이었던 것 같다. 운동, 체육 시간에 하는 그 운동이 아니라, 우리가 건강을 위해 헬스장에 가서 하는 그 운동이 아니라, 물리에서 나오는 운동 말이다.
각설하고, 우리의 물상 선생님은 열심히 운동과 일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일을 한 양은 거리 곱하기 힘이다. 힘을 적게 들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힘이 적게 들어가는 대신 거리가 길어져 결과적으로 일의 양은 같아진다.
이 점에 대해 배우면서 왠지 대단히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 힘을 적게 들이고 거리도 길어지지 않으면서 일 한 양은 많아져야 이득을 본 것 같은데 말이다. 물론 여기는 일한 양이 같을 때 거리가 짧아지면 힘이 많이 들고 힘이 적게 들면 거리가 길어진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문득 이 내용이 왜 생각이 나느냐 하면 나의 변하지 않는 독서량 때문이다. 나는 요즘 변하지 않는 독서량에 문득 ‘변하지 않는 일의 양’이 떠올랐고 그때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던 것처럼 변하지 않는 나의 독서량에도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면서 이 내용이 기억났다. 운동량 보존의 법칙도 아니고 질량 보존의 법칙도 아닌데 어찌하여 나의 독서량은 보존되는지… . 이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멍하게 시간을 보냈다.
독서량은 독서 시간과 독서 속도에 비례한다. 책 읽는 속도가 느리면 그만큼 많이 읽어야 하고 속도가 빠르면 짧은 시간 읽어도 같은 양을 읽을 수 있다.
나는 다른 이들보다 이해력이 떨어져서 한참을 끙끙대고 읽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오랜 시간 읽어야 다른 이들의 독서량과 비슷해진다. 사람이 태어날 때 수면량, 주량, 수다량은 모두 타고난다는 데 아무래도 독서량도 그런 것 같다. 이 모든 것들이 타고난 능력, 재주, 기질 혹은 체질에 들어가니까.
그런데 얼마 전부터 책 읽는 속도가 조금 빨라졌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좋아했는데 대신 눈이 쉽게 피로해져서 책을 오래 읽을 수 없게 됐다. 게다가 책을 조금 읽다가 눈을 돌려 쉬어야 하니 읽는데 자꾸만 맥이 끊긴다.
거참, 책 읽는 속도가 빨라졌다고 좋아했더니 대신 책 읽는 시간이 줄어 결국 독서량은 제자리다. 그냥 내가 타고난, 독서량에 만족해야하나보다. 운동량도 질량도 아닌 내 독서량은 늘어날 줄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줄지 않는 게 다행일지도 모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