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와 글

메모의 위대함, 리뷰의 위대함

때로는 불평이며 때로는 헛소리이며 늘 횡설수설하는 나의 리뷰

by Magic Finger



메모는 큰 일을 이뤄낼 수 있어. 메모는 사람을 끌어 모으고 전투 준비를 지시할 수도 있지. 메모는 선언문이기도 시이기도 해. 메모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어(Memos are for important thing. A memo can bring people together. A memo can be a call to arms, a manifesto, a poem. A memo can change the world.).


--- 애니메이션 <보스 베이비>에서 ---




한때 적자생존, 즉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말의 유행어가 돌았다. 기록의 중요성에 대해 말한 것인 것인데 예전부터 기록의 중요성은 누누히 강조되어 왔다. 놀라울 만큼 꼼꼼히 기록하는 일본인들의 기록 습성에 대한 일화들도 많이 들었고 과거 우리 선조들도 기록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울 만큼 기록을 중시하는 사람들이라서 수많은 기록 문화 유산을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적는다는 것, 이것은 모두 메모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메모는 시일 수도 있고 선언문일 수도 있다는 이 대사에 공감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여행을 하며 쓴 일지일 수도 있고 하루 일과를 쓴 일기일 수도 있으며 수업시간에 제출할 보고서가 될 수도 있다. 작게 보면 장을 보러 가기 위해 사야 할 물건 목록이 될 수도 있고 갖고 싶은 물건, 하고 싶은 일을 적은 소원 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 또 할 일을 적어둔 수첩 속 글귀일 수도 있다. 즉 짧게 쓴 메모들이다. 나 역시 이 글을 쓰기 위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두서 없이 적는 것부터 시작했다.


누구도 글쓰기와는 무관할 수 없다. 그래도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는 뭐니뭐니해도 글이란 책을 읽고 쓰는 감상문, 책 리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책을 읽고 나서 자유롭게 적는 글들. 나는 책을 읽으며 떠올랐던 생각들을 책 리뷰에 기록해둔다. 길게는 몇 문단의 글을 쓰기도 하고 짧게는 모르는 용어 한 두개를 적어놓기도 한다. 한두 문장의 발췌문을 기록해두기도 한다. 나에게 와닿는 낱말 하나가 어느 순간 깊은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하거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리뷰를 쓰기 시작한 것은 깊이 있는 사유를 하고 싶어서였다. 너무나 얄팍한 지식과 사유에 어떻게 하면 더 깊고 넓게 생각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찾은 방법이다. 처음부터 깊이 있고 논리적인 글을 써내려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일단은 뭐든지 닥치는 대로 적고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책과 무관한 내용을 쓰기도 했고 작가에 대한 불만을 적기도 했고 책 내용에서 연상된 어릴 적 기억을 적기도 했다. 물론 다니엘 페나크가 말한 <침묵할 권리>를 누릴 때도 있었다.


간혹 자신의 책 리뷰가 책 리뷰답지 못하다며 스스로의 글을 초라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논리적이며 전문적인 용어들을 섞어가며 멋지게 써 내려간 글들도 있으며 많은 이들이 이렇게 쓰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책 리뷰는 누가 시켜서 쓰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 것이니 잘 쓰고 못 쓰고의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없다. 물론 남에게 멋있게 보이기 위해 현란한 수사와 현학적 지식을 뽐내는 것도 나름의 자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제법 많은 리뷰들을 써왔다. 어떤 리뷰는 오, 제법인데! 이런 생각이 드는 글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리뷰는 다음에는 이런 부분에 유의해서 읽어 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한다. 이것이 리뷰를 씀으로 얻는 최대 장점이 아닐까.


또 책을 읽다가 예전에 이와 비슷한 내용이 다른 책에 있었지 하며 그 책의 리뷰를 읽어볼 때도 있고, 첫만남에서 나를 혼란과 좌절로 빠뜨렸던 책을 다시 읽고 나서, 첫만남에서 남긴 리뷰와 두번째 만남의 리뷰를 비교해 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첫 만남에서 놓친 부분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고 새롭게 깨닫는 점도 있다. 첫만남에서 중요 포인트라고 내 멋대로 기록해둔 것이 다음에 읽었을 때 틀리지 않았음을 두번째 리뷰를 쓰며 확인할 때는 첫 만남이 헛되지 않았음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지난 몇 년간 숱한 리뷰를 써왔지만 내 사유는 여전히 야트막하다. 하지만 리뷰의 내용은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나의 리뷰들 역시 사소한 메모들이다. 그러니 내 리뷰들 역시 때로는 시이며 때로는 선언문이다. 그리고 가장 분명한 것 한 가지는 내 리뷰가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않을지라도 적어도 나 자신은 변화시킨다는 사실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독서량 보존의 법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