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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정체성

by Magic Finger

학문적 정체성


하루는 도양과 대화를 나누다가 수업 시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언어학 수업에서 왜 아도르노와 알튀세르를 언급하냐며 내가 약간의 불평 섞인 말을 늘어놓다보니 어느새 나와 도양의 이야기는 학문적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정체성이란 자신이 누구이며 현재 어디에 서있으며 앞으로 어디를 바라보며 나아갈지를 결정해주는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문제이다. 학문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들 역시 자신이 어떤 학문을 공부하고 있는가를 인식하는 것,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문제이며 자신이 어떤 학문에 발을 딛고 서 있는가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학문적 정체성은 학문의 길을 걸어가는데 바로 시작점이며 뿌리이며 자신의 학문의 길을 헤매지 않게 해주는 지지대임에 틀림 없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속담이 있다. 속담의 의미는 다르지만, 그리고 학자들이 장님은 아니지만 학문이라는 것은 학자들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이때는 코끼리 전체의 모습을 알고 있어야 한다. 모두가 코끼리를 만지지만 코끼리를 만지는 목적과 만지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코끼리 다리만을 만지고 어떤 사람은 몸통만 만지고 어떤 사람은 코끼리 코만 만진다. 또 똑같이 코를 만지더라도 코끼리 코가 어떤 이유 때문에 길어졌는지만 연구하는 사람이 있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코끼리 코가 이렇게 길어졌는가만 연구하는 사람이 있고, 코끼리 코의 외관이 아닌 내부만 관찰하는 사람도 있다. 코끼리 코의 구조는 어떤가, 혹은 코끼리 코의 기능은 무엇인가 등등 각자 다양하게 관찰한다. 이 모습이 각 학문 분야에서 학자들이 연구하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리 이글턴의 <문화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나는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차이를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테리 이글턴은, 문화를 사회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레이몬드 윌리엄스의 제자이다. 나는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문화’를 공부했던 터라 동일한 ‘문화’를 바라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서 말하는 문화와 내가 공부했던 문화에 차이가 있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문화의 내연(connotation)을 분석하느냐, 문화를 밖에서 바라보았느냐라는 차이라고 할까.


‘문화라는 것은 코끼리만큼이나 크고 광범위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 문화를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한 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문화의 개념을 두고 문화를 연구하는 방법 역시 다양할 수 밖에 없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꼈던 것이 <Reading Images>를 읽을 때였다. 저자는 도식에 대한 예시로 슈람의 커뮤니케이션 모델을 언급했다. 슈람의 모델을 두고 왜 이런 도식으로 그렸는가, 여기서 화살표의 역할, 삼각형과 사각형으로 표현한 이유, 즉 화살표, 삼각형, 사각형이 지닌 자질에 대해 분석해 두었다.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는 미디어가 어떻게 메시지를 전달하며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느냐를 연구한다. 그 과정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든 도식이지만 인문학은 도식 그 자체가 연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것을 바라보며 나아갈지를 고민하며 살아간다. 정체성이란 삶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학문을 한다’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어떤 학문을 딛고 서서 연구에 매진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학문을 하는’ 도양을 통해 학문적 정체성에 대해 곱씹어보게 되었다. 나는 학문의 세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전공한 학문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마침 <사유하는 구조>를 읽는데 나의 생각을 잘 표현해둔 글이 있어 기록해둔다(재인용).



“언어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가능한 모든 곳에서 언어를 발견하고 그것을 기술하려는 것.” (보리스 우스펜스키의 말, 김수환<사유하는 구조> 56쪽)





참고한 책.

문화란 무엇인가/테리 이글턴/문예출판사

Reading Images/Gunther Kress and Theo van Leeuwen/Routledge

사유하는 구조/김수환/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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