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봉

흐르는상념46

by Magic Finger


내가 대청봉에 가기로 한 것은

지금이 아니면 대청봉에 갈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잠시나마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집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단 하루라도 누리고 싶어서였다.


그곳이 대청봉이든 아니든, 어디든 상관 없었다.

내가 아무리 높이 오른다고 해봤자 그래도 땅에 발을 딛고 있는 인간일 뿐인데도.


아무튼 나는 집을 나서서 대청봉을 향했고 산으로 들어가 안개 속으로 나를 파묻었다.

미세한 물방울은 내 마음까지 스며들어서 나는 젖은 빨래마냥 축 처졌고

발걸음은 점차 무거워졌다.

몸에서 기운이 다 빠져나갔다.


그렇게 터덜터덜 걸으며 나를 괴롭혔던 생각들,

내 마음 속에 깊게 뿌리내렸던 한 뭉치의 기억들이 서서히 나로부터 분리되고 있었다.

왜 그 사람은 그토록 나를 야멸차게 대했던가,

왜 그렇게까지 표독스럽게 나를 밀쳐내야 했던가를 끊임 없이 곱씹었다.


그 기억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뿌리까지 떨어져 나왔고

나는 그것을 숲 속에 그대로 버려둔 채 산을 내려왔다.

잔뿌리까지 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오랫동안 마음 한 구석에서 썩은 내를 풍기던 그것은 그렇게 나와 분리되었다.


대청봉에 오른 것은 내게 집으로부터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라

몇 년간 나를 얽매고 옭죄었던 어떤 기억으로부터의 자유를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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