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샤데이Sade의 음악을 왜 이렇게도 사랑하는 것일까.
그녀의 음악은 아마도 이렇지 않을까?
한 여름 초록 같은 청춘들에게는 물음표, 불 같은 연인들에게는 관능적 BGM, 상쾌한 아침엔 졸음의 끝자락, 하루 일과를 마친 피곤한 밤엔 무기력의 연장, 파티 피플에게는 청승, 미니스커트 여대생에겐 너무 성숙한 느낌의 엄마 립스틱, 아줌마들에겐 비현실적인 연회복을 입은 마네킹, 아저씨들에겐 일상을 잠시 잊으려 찾을 술집의 마담..
오늘 시카고의 아침은 먹구름이 가득하고 바람이 불어 왠지 모를 불길함이 감도는 분위기였다. 속이 쓰리지만 습관처럼 커피를 만들러 주방으로 향했다. 모카포트 특유의 번거로움을 즐기며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만든 커피를 들고 소파에 앉아 창 밖을 봤다. 구름이 아니라 어떤 거대한 기류의 움직임인 듯 잿빛 하늘이 우글거렸다. 이런 날은 역시 샤데이Sade다.
85년에 Smooth Operator가 빌보드 차트 top 40에 올라 13주간 자리를 지킨 이래로 그녀는 주로 여자의 사랑과 인생에 관한 내용을 관조적이고도 시적으로 표현해왔다.
Your Love is King (당신이 짱이랍니다..?)라고도 하고,
The Sweetest Taboo (넌 나에게 가장 달콤한 금기를 줬어), Is it a Crime (사랑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라고도 하는 등 때론 사랑의 기쁨을 찬양하고 때론 처절하게 깨진 사랑에 아파한다.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처음으로 'By Your Side'라는 곡을 통해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땐, 무슨 백인 남자가 부른 건 줄 알았다. 허스키하고 중성적이지만 따뜻하고 관능적인 세이렌의 목소리. 그녀의 음악은 대체 뭘까.
아득함.
샤데이의 음악엔 말로 표현 못할 까마득함이 있다.
그것이 저 멀리 지평선 너머의 무엇일지
바다 깊은 심해 속의 무엇일지 알 수 없는 기묘함.
기쁨도 슬픔도 아닌 어떤 아련함이다.
유명 뮤지션이자 전 보스였던 P는 내가 샤데이를 좋아한다고 하자 스팅이나 샤데이같이 그들의 '존재 자체'가 고유한 장르인 가수들이 있다고 하였다. 사람이 장르가 될 수 있다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철저하게 상업적인 그는 역시 그녀가 대중적으로 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가수는 아니지 않냐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내 기준으로는 그녀의 히트곡이 스무 개도 넘는데.)
언제부터 내가 샤데이에게 매료 되었나. 나는 스물 여섯 즈음에 잠깐 데이트를 했던 어떤 남자의 차에서 샤데이를 다시 들은 이후 홀린듯 충성스런 헤비 리스너가 되었다. (그 남자와는 얼마 안 가 헤어졌지만.) 그녀의 주옥같은 곡들이 돌아가며 시시때때로 나를 위로해주었기에 질풍노도의 20대 중반~30대 초를 무사히 넘겼다고도 할 수 있을 정도다.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학교 앞 떡볶이다', 하고 아련하게 회상하는 느낌이다. 이렇게 엄마 같기도 하고 여신 같기도 한 여자가 또 있을까?
어쨌든 그녀는 timeless며, classic이다.
그녀에게 매료되었다는 것은 도시적인 것에 매료되었다는 말도 되지만 동시에 현실 너머의 어떤 모호함에 매혹되었다는 것과도 같다. 항상 그녀의 음악을 들을 때면 언젠가 일기에 쓴 것처럼 도시의 노래를 인어가 부르는 느낌이 들고 만다.
나는 그 옛날 얘기 속 뱃사람들처럼 세이렌의 홀림에 넘어간 것일까.
생각할수록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샤데이는 밴드 이름이다. 샤데이 아두 Sade Adu가 프런트 우먼으로 메인보컬을 담당, 80년대 결성된 이후로 단 한 번도 밴드 멤버들이 바뀐 적이 없다. (The Sweetest Taboo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기타, 건반, 베이스, 드럼을 담당한 멤버들의 귀여운 미소를 볼 수 있다.) 내가 샤데이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물론 매력적인 보컬의 힘도 크지만 세션맨들이 만들어내는 사운드의 깊이와 내공이 정말 대단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은 스튜디오 앨범으로 듣는 것도 물론 좋지만, 라이브 영상이 몇 배는 더 환상적이다. Somebody Already Broke My Heart의 제일 유명한 공연 실황 (Lovers Live, 2002)을 보면 이들의 연주가 얼마나 훌륭한지 알 수 있다. (록음악 공연도 아닌데 관객들의 그 열광하는 반응이란!)
샤데이가 인어의 목소리로 노래를 하면, 베이스가 헤엄치는 고래 같은 사운드를 내고, 키보드가 바다의 소리를 내며 현실을 잊게 한다. 정말이다. (저음부가 묵직하면서도 알맹이 사운드를 잘 잡아주는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듣는 것을 권유한다.) 연주 스킬만 좋다고 이런 음악이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하면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음악적, 인간적 유대감 같은 것이 분명 이들에게 있는 것 같다.
개인적인 추천 앨범 : <Love Deluxe, 1992>
<The best of Sade,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