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얼 <서로를 위한 것>을 듣고
몇일 전 나얼님의 <서로를 위한 것>이라는 명곡을 발견하고 그 무한 반복 청취의 굴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신곡인가 했는데 벌써 일년도 전에 발매된 것이었다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대중음악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던 건지 충격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본 신용재님 라이브를 통해 이 미친 명곡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처음에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나, 대학생일 때를 지나 2-30대 때 들었던 브라운 아이드 소울 혹은 나얼님의 음색과 어쩜 이렇게 한결같은지 놀라면서, 추억에도 잠겨 보면서, 그리고 보컬 만렙을 이미 예전에 뛰어 넘은 그의 실력에 놀라면서 들었다.
그러다 이 음악에 내가 왜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꽃혀 있는지 생각해 봤는데, 그것은 역시 수준급의 대한민국 최정상 세션맨들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또 (인프피답게) 예전 기억에 빠져들었다. 대형 음악 기획사에서 에이앤알로 재직하던 시절, 업무 만족도 최강이었던 포리듬 녹음 날의 그때로..
업계에서 얘기하는 포리듬이라고 하면 드럼, 베이스, 기타, 키보드의 네 가지 악기들로 구성된 세션의 합주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세션맨들로부터 얻어지는 기본적인 편곡의 과정이라는 것이 그냥 작곡가가 멜로디에 코드만 적힌 악보 한 두장과 몇 가지 요청사항을 넘겨 드리면 정상급 연주자들이 몇 번 합을 맞춰 본 후 거의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 실로 놀라웠다. 스트링 편곡자는 심지어 포리듬 세션들이 녹음도 되기 전 이미 작업 요청을 받아 미리 편곡을 진행중인 경우가 많은데, 이 (미친) 프로들의 합은 놀랍게도 몇일 밤낮을 새워가며 머리를 맞대어 짜고 만든듯 자연스러운 것이다.
대한민국의 전설과도 같은 세션맨들의 이름은 일부러 외우려 하지 않아도 눈에 익고 귀에 익숙했다. 왜냐하면 나는 어린 시절 한 앨범을 사면 그것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는 습관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레전드 연주자들이 세월이 지나도 또 다른 명곡들을 양산하고 계셨던 것.
포리듬 녹음이 있는 날이면 녹음실로 가서 선생님들을 (연주자분들을) 뵙고 몇시간씩 이어질 작업을 위해 밥도 시켜 드리고 커피도 사드리고 하는 것이 내 업무 중의 일부였다. 어떤 이는 내가 이러려고 음대 나왔나! 할 수도 있을 상황이지만, 나는 그 업무마저 감격이었다. 아니.. 길은경님이 내가 사드린 커피를 드시고 계셔..! 함춘호님께서 내가 시켜드린 밥을 드시고 계시다니! 등등.. (웃음)
연주하는 시간을 빼면 그들은 정말 정말 인간적이고 어떨 땐 그냥 동네 이모 삼촌 아저씨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로 소탈하고 겸손하셨던 기억이다. 그러다 연주에 돌입하면 그냥 말도 안되는 귀 호강의 시간. 이 분들의 연주를 실시간으로 이렇게 들어도 되나 좌불안석 하는 와중에 너무 은혜롭고도(?) 감격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다.
나얼의 서로를 위한 것이 나에게 왜 그렇게 특별하냐면, 이러한 한국 레전드 세션맨들이 90년대, 2000년대에 하던 작업 방식이나 그로 인한 옛감성을 그대로 채택했지만 그의 음악적 역량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탁월해지고 세련되어져서 듣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일련의 혼란을 준다는 것(ㅎㅎ)에 있는 것만 같다. 오죽하면 부르기 어려운 이 노래의 유튜브 노래방 베스트 댓글은 "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이 서로를 위한 것"이라는 것인데, 웃프고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내가 30대 후반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 나얼님의 이러한 명곡을 들을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아날로그의 시대를 거쳐 메타버스가 어쩌고 하는 시대까지 거쳐온 나에게 익숙함과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데다 개인적인 업무적 추억, 나를 거쳐간 사랑과 이별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게 하는 것을 4분짜리 음악으로 옛다 하고 선사하는 그는 대체 천재라는 흔한 말 외에 뭐라 설명해야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