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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위 ouioui Oct 29. 2022

포리듬을 아시나요

나얼 <서로를 위한 것>을 듣고

몇일 전 나얼님의 <서로를 위한 것>이라는 명곡을 발견하고 그 무한 반복 청취의 굴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신곡인가 했는데 벌써 일년도 전에 발매된 것이었다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대중음악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던 건지 충격이었다. 유튜브를 통해 본 신용재님 라이브를 통해 이 미친 명곡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처음에는 내가 고등학생일 때나, 대학생일 때를 지나 2-30대 때 들었던 브라운 아이드 소울 혹은 나얼님의 음색과 어쩜 이렇게 한결같은지 놀라면서, 추억에도 잠겨 보면서, 그리고 보컬 만렙을 이미 예전에 뛰어 넘은 그의 실력에 놀라면서 들었다.


그러다 이 음악에 내가 왜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꽃혀 있는지 생각해 봤는데, 그것은 역시 수준급의 대한민국 최정상 세션맨들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또 (인프피답게) 예전 기억에 빠져들었다. 대형 음악 기획사에서 에이앤알로 재직하던 시절, 업무 만족도 최강이었던 포리듬 녹음 날의 그때로..


업계에서 얘기하는 포리듬이라고 하면 드럼, 베이스, 기타, 키보드의 네 가지 악기들로 구성된 세션의 합주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 세션맨들로부터 얻어지는 기본적인 편곡의 과정이라는 것이 그냥 작곡가가 멜로디에 코드만 적힌 악보 한 두장과 몇 가지 요청사항을 넘겨 드리면 정상급 연주자들이 몇 번 합을 맞춰 본 후 거의 즉흥적으로 연주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 실로 놀라웠다. 스트링 편곡자는 심지어 포리듬 세션들이 녹음도 되기 전 이미 작업 요청을 받아 미리 편곡을 진행중인 경우가 많은데, 이 (미친) 프로들의 합은 놀랍게도 몇일 밤낮을 새워가며 머리를 맞대어 짜고 만든듯 자연스러운 것이다.


대한민국의 전설과도 같은 세션맨들의 이름은 일부러 외우려 하지 않아도 눈에 익고 귀에 익숙했다. 왜냐하면 나는 어린 시절 한 앨범을 사면 그것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는 습관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레전드 연주자들이 세월이 지나도 또 다른 명곡들을 양산하고 계셨던 것.


포리듬 녹음이 있는 날이면 녹음실로 가서 선생님들을 (연주자분들을) 뵙고 몇시간씩 이어질 작업을 위해 밥도 시켜 드리고 커피도 사드리고 하는 것이 내 업무 중의 일부였다. 어떤 이는 내가 이러려고 음대 나왔나! 할 수도 있을 상황이지만, 나는 그 업무마저 감격이었다. 아니.. 길은경님이 내가 사드린 커피를 드시고 계셔..! 함춘호님께서 내가 시켜드린 밥을 드시고 계시다니! 등등.. (웃음)


연주하는 시간을 빼면 그들은 정말 정말 인간적이고 어떨 그냥 동네 이모 삼촌 아저씨같은 느낌까지  정도로 소탈하고 겸손하셨던 기억이다. 그러다 연주에 돌입하면 그냥 말도 안되는  호강의 시간.  분들의 연주를 실시간으로 이렇게 들어도 되나 좌불안석 하는 와중에 너무 은혜롭고도(?) 감격적인 경험을 하는 것이다.


나얼의 서로를 위한 것이 나에게 왜 그렇게 특별하냐면, 이러한 한국 레전드 세션맨들이 90년대, 2000년대에 하던 작업 방식이나 그로 인한 옛감성을 그대로 채택했지만 그의 음악적 역량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탁월해지고 세련되어져서 듣는 이로 하여금 어떠한 일련의 혼란을 준다는 것(ㅎㅎ)에 있는 것만 같다. 오죽하면 부르기 어려운 이 노래의 유튜브 노래방 베스트 댓글은 "이 노래를 부르지 않는 것이 서로를 위한 것"이라는 것인데, 웃프고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내가 30대 후반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 나얼님의 이러한 명곡을 들을 수 있었음에 감사한다. 아날로그의 시대를 거쳐 메타버스가 어쩌고 하는 시대까지 거쳐온 나에게 익숙함과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는 데다 개인적인 업무적 추억, 나를 거쳐간 사랑과 이별 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게 하는 것을 4분짜리 음악으로 옛다 하고 선사하는 그는 대체 천재라는 흔한 말 외에 뭐라 설명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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