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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위 ouioui Jun 05. 2020

아버지가 끓여주신 매운탕에서는 흙 맛이 났다

  나의 아버지는 낚시광이시다. 언젠가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쯤의 일이었을 것이다. 식구들 놔두고 주말에 또 혼자 낚시를 떠난다며 무시무시한 잔소리와 힐난을 퍼부으시는 엄마를 뒤로 하고, 아빠는 기어이 낚시 상자 한가득 살아있는 민물고기들을 잡아 오셨다. 도시의 어린이였던 나는 비좁은 상자 속에서 힘차게 움직이는 물고기들이 너무나 신기했다. 입이 떡 벌어진 내 표정을 보며 아버지는 평소에는 잘 볼 수 없는 호탕한 웃음을 웃어 보이셨다. 의기양양, 내심 뿌듯해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듬직하고 멋지다고 느꼈던 것 같다. 문제는 살아있는 생선이 요리가 되어 식탁으로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이었다.


 아버지가 화장실 바닥에 도마를 놓고 생선들의 비늘을 벗기는 등의 손질을 하시려기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지켜보았다.  , 통에 담아  생선  마리가 튀어 올라   자리를 이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펄떡펄떡 살아 움직이는 생선이 내가  있는 바로 앞까지 오다니! 경악할 노릇이었다. 애처로운 마지막 춤을 추는 물고기의 '생의 몸부림' '화장실'이라는 뜻밖의 장소가 만나면 악몽이 된다는  그때 알게 되었다.

 당시  구조는 기억이  나지만, 우리가 어렸을  살았던 집이니 분명 좁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엄마라면 협소한  주방에서 어떻게든 그것들을 손질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아빠는 당신이 잡아온 물고기인 만큼 손질부터 요리까지 직접 나서고자 하셨다. 아마 아버지의 DNA 새겨진, 생계유지 카테고리에 링크된 사냥의 본능이 발현된 것이리라. 어쨌든 아빠는 생선을 잡는  화장실이라는 최적의 장소를 선택하셨고, 나는 봐서는   것을 보고야 마는 아이의 역할을 맡으며 일종의 트라우마와 웃픈 추억을 함께 얻게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충격적인 광경에 도망친 것도 잠시, 어린이답게 나는 호기심을  이기고 '쓱싹쓱싹' 소리가 나는 화장실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살아 움직이는 생선은 이제 없었다. 검붉은 피로 물든 생선들만이 얌전히 누워있을 뿐이었다. 2 쇼크. (나는 효율적이지 못하게도 주부가  아직까지 살아있는 상태의 것들이 식재료가 되는 과정을 보지 못한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든 생선을  손질하고 아버지께서 자신 있게 매운탕을 끓여 주셨다. 생선과 마늘과 대파, 고춧가루가 섞인 맛있는 냄새가 보글보글. 아마 낚시터에서 아저씨들이랑 여러  끓여 보신 솜씨였을 것이다. 집안일이나 요리에는 전혀 나서지 않으시던 분이 부산스레 요리를 하는 모습이 어쩐지 생경하기도 하고, 그런 아빠의 음식은 과연 어떤 맛일지 조금 설레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매운탕에서는  맛이 났다. 어린 나는   떠먹고는 어리둥절해했다.  나무 (?)같기도  것이, 생전 처음 맛보는 '야생의 '이었다. 생선  속에 깊이 배인  , 아무리 열심히 발라내도 여전히  속에 박혀있는 자잘한 뼈들, 국물만이라도   먹고 싶은데 이미 부서질 대로 부서져 숟가락으로 얄궂게 들어오는 생선 살들... 나에게 민물생선 매운탕은 그리 유쾌하지 못한, 불편한 맛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집에서  TV 보시고 우리랑 거의 소통을 하지 않으시던 아빠가 직접 잡아오신 생선으로 자신 있게 선보이시던  매운탕의 기억만큼은 따뜻하게 남아있다.

 아버지와 물고기 하면, 새벽에  잠을 자는 어린 나를 깨워서 직접  싱싱한 회를 먹여주시던 날도 생각난다. 당시 내가 싫어하는  가지가 있다면 첫째가 '자는데 누가 깨우는 ', 둘째가 '' 였는데 아빠는   가지를 한꺼번에 시전 하셨던 것이다. 당연히 나는  미터는 삐져나온 입으로 툴툴거리며 눈도 뜨지 않은 채로 아빠가 주시는 회를 받아먹었다.
 충격의 맛이었다. 쫄깃하고, 향긋하고.. 순수하기까지   것의 맛이라니. 20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그토록 맛있는 회를 먹어본 일이 없다.

 이런 기억들 때문인지 아버지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  ,  것의 맛들이 생각난다. 혹시 아버지의 인생도 그런 맛들의 연속은 아니었을는지. 젊은 나이에 가장이 되어 우리 뒷바라지하는데 평생을 바치신 아버지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취미는 홀로 떠나는 낚시였다.

   우리의 반응이 너무 시큰둥해서였을까, 이후 아빠는  이상 직접 잡아온 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여 주시지 않았다. 물론  이후에는  그랬듯 정성 가득한 엄마의 음식들로 식탁이 채워졌기에 허전함 같은  딱히 느낄  없었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 유난히 아빠의 매운탕이 그립다. 코로나19 인해 한국에 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어서 더더욱. 모든 상황이 잠잠해지고 한국에 가면 아빠와 함께 낚시도 가고, 거기서 잡은 생선으로 칼칼한 매운탕  냄비 끓여 달라고 해야겠다.  맛에는 웬만큼 무뎌졌을 혀의 감각만큼 성장한 딸의 모습으로,
"우와, 아빠 이거 진짜 맛있어요! 아버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달달함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어요!" 하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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