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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위 ouioui Jun 03. 2020

도쿄에 단골 돈까스 집이 있다는 것은


도쿄에 단골 돈까스 집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언제나 같은 시간에 같은 맛을 내는 돈까스를 같은 아저씨가 튀겨내고 같은 아주머니가 서빙한다. 그들은 특유의 에너제틱함으로 오늘의 내 선택도 옳았음을 보여준다. 오픈 5분전에 입장, 처음으로 웨이팅 없이 들어와서 더 기분이 좋다. 원래는 언제나 줄이 길게 늘어져 있어서 기본 30분은 기다려야 하는 숨은 고수의 맛집인 것이다.

(2015년, 승무원 재직 시절 일기의 한 부분.)


이 돈까스 집은 도쿄에서 승무원 트레이닝을 받던 시절 선배들로부터 족보처럼 전해 들은 곳이다. 숙소가 비교적 외진 동네에 있었는데, 트레이닝 센터를 가기 위한 커다란 환승역이 '카마타'라는 동네에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왕십리역 느낌이랄까? 그 곳에서 크고 복잡한 상권을 지나 조금은 퇴폐적이고 오래된 골목으로 걷다보면 작고 허름한 가게가 하나 보인다. 그런데 웨이팅 줄은 어마어마하게 길다. 처음에는 그 허름함과 긴 줄에 놀라 들어가기가 좀 꺼려졌다. 줄 서있는 사람들을 보아하니 '찐' 오타쿠가 아닐까 의심되는 남자들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었다. 그러나 여자들 6명이면 못 할 게 없다. 왁자지껄 수다를 떨다 보니 (지금 생각해보면 좀 민폐) 차례가 왔다.

내부는 생각보다 더 좁았다. 디귿자 형태의 바 테이블에 손님이 다닥다닥 붙어 앉고, 그 ㄷ자 안에서는 요리와 서빙이 이루어지는 형태였다.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떠올리면 그 느낌이 맞을 것이다. 뭔가 톤다운 된 색감마저 비슷했다. 하지만 분위기마저 우중충한 것은 아니고, 오히려 생동감이 넘치는 곳이었다.

메뉴는 단출하게 등심, 안심, 생선까스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다만 크기를 선택할 수 있다. 큰 사이즈의 등심을 시키면 바로 튀겨낸, 스테이크만큼 두꺼운 고기에 흰 밥, 채썬 양배추, 돼지고기 미소장국이 세트로 나온다. 돈까스에는 특제 돈까스 소스와 겨자, 소금 등이 제공된다. 양배추 샐러드에는 아까 그 돈까스 소스를 뿌려서 먹는데, 처음엔 읭? 했지만 생각보다 맛있다. 자주 가다 보니 먹는 데에도 순서가 생겼다. 돈까스 고기를 먼저 먹고 - 밥 - 미소장국 - 샐러드 - 고기 순으로 끊임없이 선순환이 되는 것이다. (이 조합 사랑혀)

이 돈까스 집은 승무원들 사이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지는 곳이기에 주인 아저씨는 우리의 외형만 보아도 그 신분(?)을 알아 보시고는 인심좋은 미소와 부담없는 배려로 환대해주셨다. 승무원 교육생들은 빈틈없는 쪽머리에 검정색 캐쥬얼 정장, 낮은 굽의 검정 구두만 신게 되어있었다. 사회적 신분으로 보자면 초짜 중에 초짜, 그야말로 '알아서 조심해라' 하는 암묵적 지시가 있는 유니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길을 걷다보면 밑도 끝도 없이 째려보는 아주머니들도 계셨다. 그러나 고된 훈련을 종일 받은 하루의 끝에 먹는 돈까스의 맛이란!


트레이닝의 기간을 마치고 4년간 승무원 생활을 하는동안 한달에 대여섯 번은 도쿄를 드나들어야 했는데, 내 나라가 아닌 곳에 마음의 단골집이 생겼다는 게 참 든든했다. 하지만 미국 비행이 끝난 후 도쿄에 도착했을 땐 호텔 근처 편의점도 못 갈 정도로 몸이 천근만근일 때가 많아 생각보다 자주 가지 못했던 게 아쉽다.


지금은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아직도 그 때 먹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언젠가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도쿄에 가서 꼭 다시 먹어보고 싶다. 주인장 아저씨 아주머니가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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