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애하는 낮술은 스스로 진화하며 개인사가 되었다
작은 일탈, 어른의 자유, 마음의 안정, 허락된 시건방짐..
나다운 방식으로 나를 위로하던 날들, 그 옆엔 항상 낮술이 있었다. 그건 내 나름대로의 다정한 처방이었다. 밤에 마시는 술은? 더 좋아한다. 그러나 그건 진정 나 다운 위로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밤이라는 시간이 암묵적으로 술과 그에 대한 모든 걸 (그러니까 퇴폐적인 것들까지) 다 허용해버리기 때문에 어딘지 모르게 '위로'라던가 '나다움'이라는 단어들과는 멀어져 버리는 것 같아서.
20대 초반의 봄, 커피 전문점에서 짧게나마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다. 일이 끝나면 알바생에게 매일 공짜로 원하는 음료를 만들어 주며 집에 보내는 착한 관행(?)이 있는 곳이었는데, 별다른 커피 취향이 없던 당시의 나는 당연히 메뉴 중에서 제일로 비싸고 큰 것을 선택했다. 그 이름도 거창한 블랙 포레스트 프라푸치노. 그러다 어느 날인가, 여느 때처럼 커다란 사이즈의 공짜 커피를 입에 물고 집에 가는데 그 미칠듯한 달달함에 왠지 다 짜증이 났다. 편의점에 들러 유리문으로 된 냉장고 앞에서 한참 망설이다 캔맥주 한 개를 샀다. 가방에 몰래 숨겨 집에 들어갔는데 다행히 엄마가 안 계셨다. 방에 들어가서 낮에 처음으로 술이란 걸 마셨다. (그것도 혼자!) BGM으로는 벨리니의 아리아 중 파바로티가 부른 A te, o cara를 틀어놓고, 대입 후에도 아직 바꾸지 않은 수험생용 투박한 바퀴의자에 깊숙이 눌러앉아 책상 위에 다리를 걸쳐놓은 거만한 상태로 들었다. 맥주 한 캔에 뭐 그리 거창한 아리아씩이나 들었나 싶지만, 봄의 햇살을 받으며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마시는 맥주란! 환상적인 첫 낮술의 경험이었다. 술을 잘 못마셨던 나는 가성비 좋게도 그 한 잔으로 너무 행복했고, 심지어 어른의 인생을 예고편으로 맛 본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무엇보다도, 노동 후에 마시는 차가운 맥주의 맛을 알아버린 날이기도 했다.
내 안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고 그냥 소심해서 모범적으로 살았던 유년시절. 그저 군중 속의 한 사람이고 싶지는 않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착실한 군중의 일원으로 지냈던ㅡ무탈해서 권태로운 날들을 지나 성인이 된 직후였다. 낮술이란 나에겐 일탈이라는 말로 다가왔다.
낮술의 장점은 술을 마시긴 마셨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식당에서 혼밥 혼술을 하고 문을 열고 나왔을 때를 기억한다. 어둑한 내부에 있다 화창한 곳으로 나와서 그런지 그 엄청난 대비감에 압도되는 듯했다. 맥주 한 잔에도 약간 취기가 돌던 때였는데, 나만 빼고 사람들은 모두 정상적인 일상을 영위하고 있었고 세상은 잘만 돌아갔다. 나만 아는 비밀을 갖고 대낮의 길을 활보하는 기분, 묘했다.
20대 중반에 회사를 다니던 때, 우리 부서는 당시 팀장이 없어 회사 내에서 천덕꾸러기 같은 신세였다. 그래서 가끔 분위기가 마치 '부모님이 부재중이신 친구네 빈 집에 모여 라면을 끓여 먹으며 진지하게 노는 어린이들'같기도 했다. 어느 날, 키 큰 이탈리아 청년이 흰 정장을 입고 들어오더니 (지금은 티브이에 자주 나오는 유명인이 되었다) 프로모션 중이라며 미니 맥주 냉장고와 함께 병맥주 몇 박스를 주고 갔다. 눈치 주는 사람도 없겠다, 심심하면 맥주를 까먹으며 (절대 과음은 하지 않았다) 크리에이티브 팀답게 창의적으로 업무를 해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맥주가 다 떨어질 때쯤 새로운 팀장님이 오셨고, 우리들의 호시절도 짧게 끝이 났지만 다행히 그 팀장님 역시 흥이 많으신 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칼퇴는 진즉에 포기하고, 오늘 안에 집에 갈 수는 있을까 하며 엄마를 하숙집 아주머니로 만들던 시간들이었다. 그래도 좋은 점은 있었다. 작가들과 점심 미팅이 잡히면 청담동에서 가로수길까지 가서 타코에 맥주 한 잔 하거나 홍대까지 날아가서 돈가스를 씹으며 업무 얘기를 할 수 있는 직종이라는 것. 그때 낮술은 나에게 아름다운 구속이었다. 열정페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의 낮은 연봉에 대한민국 회사원 탑 5 안에 들어갈 만큼 기나긴 업무시간 ㅡ 밤낮 없고 주말 없는 날들의 연속을 간헐적 낮술로 이겨냈던 것이다.(!) 마치 싼 값에 풀린 보드카를 진탕 마시고 추위를 포함한 많은 것들을 잊으며 살아갔던 러시아 인민들처럼 말이다.
30대 초반 승무원 시절에는 또 어땠는가. 비행기 안에서 승객을 위해 수도 없이 캔맥주를 까고, 와인을 오픈했다. 폭풍 같은 비행(업무) 시간이 끝나고 랜딩하는 동안, 빈틈없이 안전벨트를 매고 꼿꼿한 자세로 앉아서 창 밖을 바라보면 그렇게 맥주 한 잔이 간절했다.ㅎㅎ 그 누구도 아닌 나만을 위한 낮술 한 잔. 오늘도 수고했다고. 이 비행기에서 내리면 너는 이제 며칠 동안은 자유라고. 그때 낮술은 나에게 마음의 안정이자 자유시간을 알리는 신호탄이며 폭죽이었다.
내가 다녔던 항공사는 우선 김포에서 하네다로 가는 것이 모든 비행 일정의 시작인 곳으로, 도쿄에 도착한 다음날 미국이나 동남아에 가는 식이었다. 그랬기에 제 집처럼 드나들었던 도쿄에 도착하면 컨디션에 따라 호텔방에서만 쉬거나, 밖으로 돌아다니거나 했다. 쇼핑을 하거나 여기저기 둘러보는 날이면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쯤에 맘에 드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1인분의 식사와 함께 거의 항상 생맥주나 와인을 함께 주문했다. 이 시간에 여자 혼자 낮술이라니, 놀랬지? 하는 심보로 주문을 하는데, 소심한 청개구리 기질이 있는 나에게는 그것이 또 소소한 재미였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 도시인 건지, 주문받는 사람은 전혀 놀라지도 않고 친절하게 "하이, 카시코마리마시타" 하고 미소 지으며 주문서 작성을 마치고 가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어쩐지 진 것 같은 기분이 되었는데, 동시에 어떤 안도감 같은 것도 함께 느껴졌다. 그때 낮술은 나에게 조금은 시건방져도 된다는 세상의 허락 같은 것이었다. 엄마가 보면 한 소리 할 것 같은 짓을 조금씩 하고 돌아다녀도 사람들이 뭐라고 안 하니까. 오히려 은은한 미소로 친절하게 ‘알겠다’고 해주니까.
지금 나는 낮술을 마시지 않는다.(못한다) 19개월 차 육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애기 엄마라는 건실한 자아를 비웃기라도 하듯 나다운 것을 말할 때 눈치 보지 않고 '낮술을 제일 먼저 말하는 것이야말로 나다운 것'이라 우기며 쿨한 척이라도 해야 직성이 풀리나 보다. 저는 그냥 애기 엄마가 아니에요. 순해 보이지만 의외의 대담성도 있답니다? 세상에 알고 보면 '평범한 회사원’이라는 사람은 없듯 '평범한 주부'라는 것도 없답니다. 하고 티셔츠에 써붙이고 다녀야 할 판이다.
‘낮’이란 단어가 주는 착실함과 노멀함에 '술'이란 단어가 붙어 버리는 것, 이것 자체가 내 스무 살 이후의 인생 전체를 축약하듯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착실하게 살고, 그것에 대한 보상이라는 듯 또 다른 얼굴의 가면을 쓰고서 그 '낮의 노멀한 자아’가 숨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이때 약간의 술이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나는 무너지지 않고,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고도 내 안의 적은 부분이나마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문제아적 자아'를 다독일 수 있다.
낮에 술 한 잔 하는 ㅡ별것 아닌 걸 가지고 작은 일탈이니 시건방짐이니 운운하는 것 자체가 아마추어 같은 시시함 일 테다. 낮술, 그러니까 그건 정말 나다운 거다.
*상단의 그림은 이지수 <아무튼, 하루키 (출판사: 제철소)>의 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