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라이팅 (Narrative Writing)
제 아이는 어린 시절의 저보다 훨씬 더 안락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어요. 특별한 고생담도 없어요. 부모가 마약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도 아니고 우리 집은 무척 평범하며 때론 지루할 만큼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아요. 어쩌면 오늘 하루 가장 슬펐던 일은 먹고 싶었던 아이스크림을 바닥에 떨어뜨린 일인지도 몰라요.
인상적인 에세이를 읽으면 고생했던 이야기가 많아요. 그래서 어떤 경우엔 내 아이가 참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아왔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이런 아이는 어떤 글을 쓸까요? 어떻게 자신을 드러낼까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학생들이 쓰는 에세이가 고생 배틀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만약 에세이 대회가 고생 배틀이며 고생한 이야기만이 값어치가 있다면 그 외 무수한 아이들의 경험은 읽을만한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겠죠.
현실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희극이건 비극이건 무수히 많은 이야기와 지루한 일상으로 가득 차 있어요. 에세이에서 분명 '특별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마련이지만 그 특별함이 곧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일', '유일하고 희귀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큰 고생 하지 않은 아이들은 어떻게 특별한 에세이를 쓸 수 있을까요? 바로, 내가 인상 깊게 경험한 한 순간을 깊이 생각해 보고 쓰는 것이에요. 만일 그 일이 바닥에 떨어져서 서서히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을 쓰면 되요.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는 활동을 '사색'이라고 불러요. 안락하게 살면서 생각조차 한 걸음이라도 더 깊이 들어가려고 하지 않을 때야 말로 '그렇고 그런 글'을 쓰고 말아요.
지독한 가난과 같은 경제적 어려움이 아니어도,
충격적인 사건이나 사랑하는 가족의 질병 혹은 사망과 같은 커다란 어려움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나에게 일어난 작은 사건과 한 순간 관찰한 대상에서 아이는 '질적인 변화'를 경험할 수 있어요.
일생을 통해 그것을 찾는 건 아이의 몫이에요. 그런데 아이가 찾아가도록 이끄는 것은 어른들의 몫 아닐까요? 그 몫을 하기 위해 우리는 학교 교육이 '생각하는 사람을 키우는 창의적인 교육'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해요. 가정에서는 엄마 아빠와 같은 보호자가 아이를 잘 이끌어야 한다고 하지요.
그러므로, 에세이는 고생 배틀이 아니에요. 에세이는 그 어떤 큰 사건이든 작은 사건이든 내 삶의 전환점이 된 그 순간과 사색의 결과물이에요.
세상에서 단 한 명이 할 법한 특이한 일을 경험하지 않아도 어떤 아이든 특별한 이야기를 쓸 수 있어요.
마치 악기를 최고로 잘 다루는 사람만이 의미 있는 연주를 하지 않는 것과 같이 말이에요.
정말 멋지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