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러티브 라이팅 (Narrative Writing)
2018년 초, 미국 소설가 윌라 캐더의 한 인용문을 읽게 되었다. “경외하길 멈추고 기억하길 시작하면서부터” 작가의 경력을 시작했다는 문구가 나를 흔들었다. 그 무렵 나는 가족 자체가 주인공인 가족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고 아칸소에서 있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길 오랫동안 원했다. 윌라 캐더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될 수 있는 한 많이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80여 가지의 기억을 써내려가면서, 나는 한 가족이 작은 농장으로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되는 영화의 첫 부분과 가족이 길렀던 미나리를 수확하는 것으로 끝나는 엔딩을 구상했다.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의 인터뷰를 읽었어요. 80여 가지의 기억을 쓰고 그 많은 에피소드 중 추리고 모아서 하나의 줄기를 완성했다는 정 감독의 인터뷰에 눈길이 멈추었어요. <미나리>의 시나리오 작업 방식이 제가 아이들의 내러티브 라이팅을 지도하는 방식과 같았기 때문이에요. 주제를 대략 정한 다음, 내 인생에서 그와 관련하여 떠오르는 에피소드를 몇 개씩 쓰면서 더 깊이 탐색하고 전달하려는 이야기를 완성 짓는 방식 말이에요.
여러분은 아이들이 체계적인 글쓰기를 배우길 원하시나요? 어쩌면 그 허구적인 정의 때문에 아이들의 글을 제대로 지도할 수 없는지도 몰라요. 실상, 아이들을 가르쳐 보면 그들은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쓸 수 없어요. 글을 많이 써본 적 없는 아이들이 어떻게 체계적으로 글을 쓰겠어요. 체계적인 글쓰기란, 글을 계속 쓰다 보면 자신의 글쓰기 방식이 잡히는 것을 의미하죠. 또는 논리에 맞게 글을 다듬어서 완성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체계적인 글쓰기가 반드시 글의 도입부부터 시작해서 쓰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그것은 어른들도 마찬가지예요.
예를 들어, 저는 제가 지금 쓰는 문장이 이 글의 본문 어디쯤 위치할지 지금 알 수 없어요. 이 문장은 다음 문장을 불러오고 그것은 또 다음 문장을 불러올 테죠. 그들 중 어느 것은 도입부로 또 어떤 것은 결론에 가겠죠. 그렇게 문장은 흩어질 예정이지만 타이핑하는 이 순간엔 어디로 갈지 확신할 수 없어요.
그런데 왜 아이들에게는 이야기의 첫 부분부터 쓰길 바랄까요?
왜 불가능한 것을 기대하고 서툰 모습에 실망할까요?
물론 우리는 글쓰기 수업에서 Organizer라는 프레임워크(Framework)를 이용해서 떠오른 아이디어를 뼈대에 맞게 배열하는 흉내를 내요. 그렇지만 그 작업 조차, 반드시 첫 칸부터 채우지는 않아요. 내 아이디어가 예외 없이 도입부부터 떠오르는 건 아니기 때문이에요. 프레임워크는 어디에 어떻게 배열하는지 그 안내의 역할을 해 주는 것일 뿐이죠. 프레임워크가 지시하는 대로 아이의 생각이 흘러가지 않으니까요.
많은 전문적인 작가들은 일단 한 줄이라도 쓰죠. 그들은 계속 씁니다. 첫 문장을 쓰기 힘들면 두 번째 문장부터 쓰라는 말은 얼마나 쓰기를 멈추지 않아야 결국 나중에 쓸만한 문장이 나오며 더불어 주제와 소재가 강화되는지 함축적으로 나타내요. 어떤 이는 독자에게 꽂힐 첫 문장은 다듬고 다듬어서 늘 가장 마지막에 넣는다고도 하지요.
아이들이 순서에 맞게 글을 쓰길 바라지 마세요.
대신 그들이 가급적 많은 문장을 쓰도록 독려하세요.
그리고 그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의 흐름을 잘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사실 저는 아직 이 영화 <미나리>를 볼 엄두를 못 내고 있어요. 이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심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살짝 부럽습니다. 물론 도시의 이민자는 시골에 사는 이민자보다 훨씬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에 살기 때문에 나은 입장이에요. 그러나, 21세기의 이민 가정도 여전히 이방인이죠. 저의 라이팅 시리즈는 이방인 엄마가 현지에서 인맥이 부실하고 도움을 청할 곳도 마땅치 않아서 시작한 교육 자급자족 체험기예요.
문득, 저는 시카고에 미나리 대신 '자라는 영어 라이팅'을 우리 집 안에서 키웠나 보다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