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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iHyuk Mar 02. 2016

여기, 사람이 있다

<시그널>과 <소격동>

“여기 20년 전인데 거긴 많이 변했죠?” 20년 후의 사람과 무선통신을 통해 연결된 20년 전의 사람은 이렇게 물었다. 간단한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대답이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드라마 <시그널>(김원석 연출, 김은희 극본)이 그리고 있는 세계는 비현실적인 방법을 통해 가장 현실적인 질문을 던진다. 무선통신을 통해 물리적인 시간을 초월한 만남은 장기미제사건의 해결에 손쉽게 다가갈 길을 열어줄 것 같았지만 거기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는 정의나 진실과 같은 얼핏 거대한 질문이 던져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드라마를 떠받치고 있는 인물들은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정의와 진실을 외치면서도 스승의 잘못을 덮기 위해 신념을 배반(<싸인>)하거나 범죄에 공모했다는 자괴감에 빠져 죽음을 선택(<유령>)할 정도로 연약한 인물이기도 하다. 주인공이 이러할진대 조연들에게 숭고함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때문에 페이스오프나 타임슬립과 같은 비현실적인 설정 사이에서도 김은희 작가의 드라마에는 생생한 현실성이 존재한다. 그의 드라마에는 신념과 외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장르물의 황무지인 한국 드라마에서 김은희 작가가 주목했던 것은 범죄와 처벌에 따른 쾌감이 아닌 개인과 시스템 사이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때문에 김은희 작가가 보내온 80년대에서 끌어온 ‘신호’는 2016년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려드는 궁금증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왜 하필 80년대일까. 아득하지도, 그렇다고 있어보이지도 않는 ‘쌍팔년도’의 이야기가 어째서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일까. 민주화의 꿈과 경제개발의 결과물이 눈앞으로 다가왔던 그때는 왜 지금 다시 돌아온 것일까. 

  하지만 돌이켜 보면 TV에서 재연되는 과거란 언제나 안전을 담보로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불편해할 법한 이야기는 희미하게 덧칠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안전한 이야기는 생생한 톤으로 채색되었다. 그 시대를 직접 겪었던 사람들에게 80년대가 각기 다르게 회고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불편해하는 무언가가 80년대라는 명명 속에 은폐되어 있기 때문은 아닌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유의 목소리를 통해 서태지가 그렸던 80년대의 풍경을 기억해보자. 소녀의 목소리로 그려지는 그 시절의 소격동은 “등 밑 처마 고드름과 참새소리”가 “짙은 향기”로 기억되는 공간이었다. 이제는 말라버린 냇물처럼,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아련한 낭만으로 남아있는 기억의 장소인 것이다. 이 아름다운 낭만이 생경해지는 것은 학원녹화사업을 배경으로 펼쳐진 뮤직비디오와 만나면서 부터다. 교복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어린 아역배우들에 의해 재연된 80년대의 소격동은 피비린내와 매캐한 냄새가 사이렌 소리와 함께 가득 들어차 있는 공간이 된다. 아무도 남지 않은 소녀의 빈 집에서 도망쳐 나오는 소년의 뒷모습에서 80년대의 지워진 비명소리를 떠올리는 것이 무리한 추측만은 아닐 것이다. 서태지가 기억하듯이, 80년대는 들리지 않는 목소리들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응답하라 1988>에서 운동권이었던 보라가 민정당사 점거 농성을 끝내고 돌아와 애써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침묵햇듯이 말이다. (당시의 사실과는 다르다할지라도) 우리 모두는 그 불편한 침묵을 애써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이쯤되면 속된 표현처럼 사용되던 ‘쌍팔년도’라는 표현은 더 이상 비하적인 의미로 들리지 않을 것이다. 단지 그 시절이 ‘후지다’는 수준의 비아냥이 필요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따뜻했던 그 시절로의 회귀는 지금 여기의 현실이 가지는 퍽퍽함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기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엄혹했던 시절에 대한 망각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애써 도망쳤던 자신의 뒷모습을 잊기 위해서 말이다.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 우리는 20년 전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긍정도 부정도 쉬이 답할 수 없기에 이 한 마디를 보태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여기, 여전히 사람이 있다. 


고려대학교 대학원신문 2016년 3월


여전히 무언가를 보고, 쓰고 있습니다. 

웹진 <문화다>에서 드라마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며

공저로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문화다북스, 2015)와 <야누스의 여신 이은주>(문화다북스, 2016)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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