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hiHyuk Feb 01. 2016

도시를 해석하는 몇 가지 방법

2015 경기문화재단 별별예술프로젝트 <맑은 밤 혼자 걷는다>

  평면적으로 펼쳐진 서울의 도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거닐고 있다. 이제 갓 걸음마를 뗀 어린이부터 한 세기의 역사를 목격한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꿈을 안고 살아가는 도시 서울은 다른 여타의 도시와는 분명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작가 백정기가 기획한 <맑은 밤 혼자 걷는다>는 소박한 제목과 달리 메트로폴리스가 되어버린 서울의 리듬을 시각과 청각을 이용해 재연해냈다는 점에서 거대한 프로젝트에 해당한다. 이 과정은 백정기라는 작가 한 사람의 역량에 좌우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의 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서울’이라는 대도시가 가진 민낯을 다양한 각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맑은 밤 혼자 걷는다>

https://www.youtube.com/watch?v=qFkPdpSTvIw


  이처럼 음악으로 전유된 서울을 무대에서 본다는 것은 단순한 관람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다. 공연관람이 대중화된 것은 100여년 남짓한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 경험은 다채로운 작업들과 만나 종합예술로서의 가능성으로 빠르게 확장되었다. <맑은 밤 혼자 걷는다> 역시 음악과 영상이 도시를 경유하여 무대로 전유되었을 때 전달되는 것이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적 체험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리듬도시의 해석학


  <맑은 밤 혼자 걷는다>는 네 가지의 파트를 통해 비슷하면서도 다른 주제를 각각의 개성에 맞게 펼쳐냈다. 전반부의 두 파트는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를 소묘적으로 그려내며 음악과의 결합을 꿈꾸고 있다면(<맑은 밤 혼자 걷는다>(백정기, 맑은 밤 트리오), <The Palimpsests Of The City>(오진원)) 후반부는 다소 전위적인 형태의 음악을 무대 위로 끌어들여 도시의 파열음을 생생하게 재현해낸다.(<The Point Of City>(신이피X황보령), <NYX>(실리카겔)) 


<The Palimpsests Of The City-Sun rise>

https://www.youtube.com/watch?v=ck23_5TjSkQ



  전반부의 경우 프로젝트의 대제목이자 백정기 작가의 작품인 <맑은 밤 혼자 걷는다>가 예술가들의 콜라보레이션에 의해 어떻게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지를 직접 무대 위에 그려낸다. 맑은 밤 홀로 산책을 나서는 사람의 시점을 일인칭으로 전환시켜 흔들리는 불빛만으로 무대는 밤의 공기로 뒤덮인다. 이어지는 맑은 밤 트리오의 고풍스런 음악과 함께 재생되는 영상 <효창공원 앞>은 효창공원의 풍경을 산책자의 시선으로 담아내어 일상의 분위기를 서정적으로 그려낸다. 무대 위로 쏘아지는 실제 사진은 하나의 색을 가진 단선으로 변한다. 효창공원 앞 풍경이 만들어낸 스카이라인은 말 그대로 선이 되어 도시의 풍경을 그려내는 밑그림이 된다. 이때 무대 위로 영사된 선의 연장은 무한하게 건물과 건물, 걸음과 걸음을 연결시켜 일정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런가 하면 간단한 왜곡 작업으로 광화문과 여의도, 한강 등지를 완전하게 비워낸 <The Palimpsests Of The City>는 기타리스트 오진원의 즉홍 연주와 만나 도시가 갖는 분주한 리듬을 이질적인 휴지(休止)로 그려낸다. 빠르게만 돌아가는 대도시의 리듬을 의도적으로 분쇄시켜 시간 감각까지 왜곡시키는 이 프로젝트는 자동차나 인간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서울이 어떤 공간인지에 대해 미세한 현미경을 들이대는 것처럼 보인다.  

  뒤이어 이어지는 후반부는 산책자가 겪는, 혹은 대도시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감정적인 진통을 거칠면서도 전위적인 리듬으로 풀어냈다. 신이피와 황보령의 공동작업인 <The Point Of City>는 화음을 의도적으로 왜곡시켜 불협화음을 노이즈의 형태로 관객에게 전달한다. 소음에 가까운 이들의 작업은 도시가 구축해놓은 리듬의 틈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산책자 내면의 갈등을 외화되면서 관객 역시 크게 동요되는 것이다. 이어지는 <NYX>는 홍대 인근의 인디밴드들과의 협업을 지속했던 실리카겔의 개성에 따라 도시 이면의 문화를 무대 위에서 재연해낸다.


  백정기 작가의 시도는 무대 위에서 다양한 예술 간의 교차가 도시라는 공간을 전유함으로써 단순한 협업 이상의 효과를 끌어냈다. 이 작업은 리듬이라는 다소 생소한 소재가 어떤 방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우리의 일상을 이해할 단초를 제공하는지에 대한 예술적 실험이 되었다. 단순히 서울이라는 공간을 ‘도시’라는 테마로 단조롭게 그려내기보다는 시각과 청각, 그리고 체험적 기억을 일정한 리듬으로 반복해서 상기시킨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도시라는 공간을 음악이라는 시간의 예술과 결합시킴으로써 일상에 대한 ‘낯설게 보기’수행하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Urban misic>

https://www.youtube.com/watch?v=vuD4QSZw9vk



  때문에 리듬을 통해 도시를 해석하는 행위로, 백정기 작가의 작업이 확장될 가능성은 무한하다. 일상을 둘러싼 도시의 루틴을, 다시 해석할 여지를 남겨둘 때 예술이라는 형태를 통해 발현되는 삶의 양태는 모호할지언정 가볍지는 않다. 이 일상의 공기를 체감하는 것이야말로 <맑은 밤 혼자 걷는다>가 관객에게 던져준 가장 큰 질문이자 대답일 테니.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맑은 밤 혼자 걷는다>가 지향하는 예술적 체험은 간명하다. 일상의 리듬을 무대로 등치시키는 것, 이 테마를 실행하기 위해 제시된 콜라보레이션은 무대의 체험과 일상의 체험을 절묘하게 접목시키는 가장 적합한 형식이기도 하다. 


<The Palimpsests Of The City-Sejongno>

https://www.youtube.com/watch?v=AOhxyAZc5e8


  여기서 왜곡과 긴장은 이 프로젝트를 지탱하는 핵심축이다. 일인칭으로 제한된 산책자의 시점, 스카이라인을 선의 연쇄로 스케치한 관찰력, 그리고 서울의 공간을 간단한 효과로 빈 공간으로 만들어버린 상상력, 거기에 각기 다른 형식의 음악을 덧입히는 실행력은 <맑은 밤 혼자 걷는다>가 제기하는 문제들이 무대의 영역을 넘어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밑거름이 된다. 때문에 백정기가 제시한 도시의 해석학은 일상의 리듬이 사실은 왜곡된 시선과 긴장된 사운드로 뒤덮인 것임을 여과 없이 드러난다. 앙리 르페브르가 자신의 마지막 저서 <리듬분석>에서 밝히고 있듯이, 도시의 일상에서 가늠되는 리듬은 자본주의와 국가라는 거대 단위의 기획이 주도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그토록 추구하던 근대성이 만들어낸 일련의 리듬들이 왜곡과 갈등의 문제를 곳곳에서 촉발시키는 촉매제이기도 하니까. 


  인간 없는 세상이 전혀 어색하지 않듯이 고립된 개인들이 만들어내는 도시의 화음은 서울이라는 메트로폴리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안산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도시들이 겪고 있는 문제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넘나드는 21세기가 은폐한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 없이 텅 빈 도시가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질 만큼 우리가 지나고 있는 이 시공간은 자본과 국가가 운영하는 자동기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르니. 그렇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긍정적인 의미든, 부정적인 의미든 말이다.


여전히 무언가를 보고 있으며, 쓰고 있습니다. 

웹진 <문화다>에서 드라마에 관한 글을 쓰고 있으며

공저로 <신데렐라 최진실, 신화의 탄생과 비극>(문화다북스, 2015)이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혁명의 배반과 파국의 윤리, <디스 디스토피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