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를 쓰게 된 것은, 요 최근에 장례식장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한 예쁜 커플이 있었다. 행복하게 몇년간 연애하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고, 결혼을 축하해주었고, 몇 달 전에 아기가 돌잡이로 공을 잡는 모습을 박수쳐주었다. 그리고 12월이 다 가기전인 어느날, 불연듯 부고 문자가 날라왔다. 받는 순간 오소소 돋는 소름과 복잡한 머리속으로 몇 시간을 멍하게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언니와 아기를 남겨두고, '암'이라는 한마디로 멀어져버린 그들의 사랑 이야기. 이전의 행복했던 모습이 너무도 부러웠기에 충격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장례식장에서 펑펑 울어버린 나보다 더 덤덤하던 언니의 모습. 아무것도 모르고 어린이집에 간 아기. 슬픔을 표현하기도 전에 현실은 너무도 잔혹하게 다가온다.
언니가 결정해야하는 수많은 일들의 무게가 너무도 크게 짓눌렀다. 화장을 할지, 장지 가격이 얼마일지, 아기를 키우느라 멈췄던 직장과 육아를 어떻게 병행해야할지, 앞으로 어디서 살지, 시댁 친정은 얼마나 도와줄 수 있을지-. 언니는 책임감의 무게만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 무게감은 몇달전 우리 사회를 크게 강타했던 이태원 참사를 다시 떠올리게 했다. 남아 있는 자들의 너무도 둔탁한 삶의 무게를 지켜보며 행복을 결론 내지 못하고 미뤄두었던 그때로 되돌아갔다.
때는 10월 마지막주 토요일.
20대 이후로 몇 년 만에 가보는 이태원이었다. 코로나가 끝나는 듯한, 모처럼 활기찬 축제 분위기로 설렘가득했다. "주말에 뭐해? 심심하면 할로윈 즐기러 놀러가자!" 라는 친한 언니의 가벼운 문자. 나는 축제를 꽤 좋아하는 편이라 마다하지 않고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해리포터 그리핀도르 기숙사 망토를 두르고 머리를 양갈래로 땋으며 평상시와 다른 모습으로 꾸민 코스프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지하철 역부터 사람들은 바글바글했고 축제의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문제의 그 거리'를 저녁 7시쯤 지나가고 있었다. 인파에 휩쓸리며 음식점을 찾다가 지쳐서 다른 골목으로 향했다. 이태원 거리를 조금만이라도 돌아다녀보면 느끼겠지만, 일명 '핫하다' 라고 느껴지는 골목은 딱 1번 출구로 나와서 들어가면 일직선으로 펼쳐진 '그 거리'밖에 없다. 그 곳만 삐까뻔쩍 화려화려하고 바로 옆 골목으로 가자마자 어두침침하게 어스름하게 펼쳐진 거리가 나온다. 그 곳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사람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던 위치였던 것이다.
우리는 각종 코스프레로 치장한 사람들의 분위기에 취하며 거리를 돌고 돌며 헤메다가, 한 음식점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그 시간이 8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데 1시간이 걸린다는데, 영국 펍처럼 꾸며놓은 피자 가게가 마음에 들은 우리는 운 좋게 자리를 바로 잡고 음식을 기다렸다. 음악도 둠칫둠칫, 늦게 나온 피자와 감자튀김도 맛있고, 사람들도 즐거워 보여서 모든 것이 꽤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2시간 반이 지났다. 이제는 10시 반! 슬슬 막차를 걱정해야할 시간이었다. 자리를 박차고 나와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지하철역으로 다급히 뛰었다. 달리느라 옆 사람들이 어딜 보고 있는지 어딜 향하고 있는지는 알지도 못했다. 무심결에 사람들이 한 곳을 향해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느꼈지만, 같이 지켜볼 새가 없었다. 그렇게 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고현장과 그 시각 내가 지나쳤던 길. 너무도 가까워서 무섭다.
헉헉헉, 지하철에 타고나니 그제서야 상황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긴급 속보들로, 내가 방금 있었던 곳의 현황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말도 안되는 상황에 현실감을 잃었다. 분명 웃음과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었는데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다. 자꾸 늘어나는 사상자 수. 어쩌면 내가 그 곳에 있었을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아찔해졌고, 함께 시간을 즐기며 사진찍고 웃었던 이름 모를 사람들이 염려스러워졌다. 괜찮아야할텐데. 제발!
쉽사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다음날 애도기간이 선포되었고, 인터넷 창은 사람들의 여러 생각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다. '놀다가 죽었다', '뭐하러 그런델 가냐'와 같은 잔인한 문구들, '꽃피워보지 못한 청년들이 안타깝다' 와 같은 개개인의 슬픈 사연들, 정부 통제를 질책하는 따끔한 목소리들.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위로는 커녕,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강한 혐오와 경제적 논리가 우선시 되는 비공감성 등 다양한 사회 현상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토끼같은 아이들을 하루아침에 잃은 부모의 심경을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우리 부모님도 나한테 무사해서 다행이라는 걱정과 다 나이먹어서 뭘 그런데를 가냐는 핀잔을 하셨지만, 그 속에는 진한 두려움이 배어있음을 알기에 '그러게.. 큰일 날뻔 했네.' 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죽음은 생각보다 우리 가까이에 있다. 보통 '죽음' 이라고 하면 나이가 쪼글쪼글 들어서 평온하게 침대에 누워, 자식 손주 등 사랑하는 사람들을 옆에 두고 웃으며 세상을 떠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주변을 보면 교통사고, 갑작스러운 심정지, 암 투병, 비극적 사고 등 생각외로 갑작스러울 죽음을 맞이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다시금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 내일의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구나. 오늘 하루 무탈하게 웃으며 사는 것을 목표로 살자. 내가 언제든 죽더라도 '아, 이런건 해보고 죽을껄. 너무 아쉽다' 라는 마음이 들지 않게 지금 당장을 사는 것이 나의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어떻게 태어날지 결정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는게 우리네 인생이다. 지금 당장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한번이라도 더 웃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그리고 나 자신을 아끼며 살아가는 것. 그래서 난 내가 죽을 때 유일하게 챙겨갈 수 있는 '추억'을 꽤 소중히 여기는 편이다.
그래, 죽음을 볼 때마다 나는 삶의 목표를 되새긴다. 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삶의 의미? 그냥 태어났으니 사는거다-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까라는 미래 걱정과 운명? 언니의 앞날도, 이태원의 그날도 이럴 일이 일어날 줄 알았나.. 때로는 버티는 것밖에 답이 없어보이는 잔인하고 혹독한 현실 속에서, 그저 우리에게 닥친 일들을 어떻게 최대한 안아프게 받아들일지 하는 마음을 키워야 할 것 같다.
'상실감'은 잔인할 만큼 아프다. 너무도 아픈 일을 겪은 사람들에게, 기다리고 있는 미래의 행복이라고 하면 어떤 것일까?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행복을 찾으며 고민하기보다는, 웃는 하루를 보내는게 내가 할 수 있는 더 빠른 시도이니까. 회피일까- 아님 '그럼에도 살아간다' 라는 말을 실천하는 행동일까. 근데 생각없이 웃다보면 공허할 때도 있단 말이지. 역시 인생은 참 어렵다.
(p.s 이 글이 누군가에겐 상처가 되지 않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적어나갔습니다. 삶에서 어떠한 일에 너무 큰 상처를 받으면, 그 때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고 잔인한 시간이 되더라구요. 어쩌면 평생 가져갈 수도 있는 각자의 상처 앞에서, 괜찮아질거야 라는 자신 없는 말보다는 묵묵히 안아주며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