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면 꽤 자연스러운, '그때의 나에게 꽤 필요한 시간이었다~'라는 활동들이 꽤 많다.
잠깐 소개하자면, 첫 번째는 '여정 야독'이라는 독서모임이다.
주로 심리학 석사님들이며, 기혼/아이 엄마로 이루어진 30-40대 모임이라나의 5~10년 뒤를 생각하며 인생 선배님들의 시각을 배워보고 심리학과 상담학을 깊게 체감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두 번째, '한달 한권'이라는 독서모임은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직장인들로 책을 정말 많이 읽는 차분한 20-30대 모임이라 또래의 생각들을 비교하며 같은 길을 걸어가는 느낌이랄까.
이번 12월 여정야독의 함께 읽을 책은 "순례 주택"이다.
모임에서는 연말을 마무리하며 조금 따뜻한 느낌의 책을 선택하게 되었고, 책을 읽기 위해 서점에 들렀다.
동네의 아름다운 서점_ 퇴근 후에 서점을 가면 꽤 지성인이 된 느낌!
'순례주택' 이라는 책은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순례주택은 사람 이름인 '순례'이며, 순례자의 의미인 '순례'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간단하게, 애어른 중3 아이인 수림이의 시선으로 주택에 살고 있는 올곧은 주변 어른들을 바라보고, 자신과 맞지 않다고 생각했던 가족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이야기. 사실 아직 결말을 안 봐서 어떻게 내용이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청소년 소설인 만큼 해피엔딩이 유력하겠지.
왜 수림은 가족과 멀어지고 애어른이 되었을까?
엄마 아빠가 워낙 철딱서니가 없게 나오긴 한다. 대학교수가 되기 위한 공부만 15년 차의 무능력 아빠, 과거의 영광인 학벌을 평생의 프라이드로 삼으며 가정의 틀 안에 갖혀 지낸 엄마, 집안의 공주로 크며 안하무인 내 맘대로 언니. 어쩌면 운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사회의 밑바닥 쓴맛을 보기 전에, 양쪽 집의 할아버지 고모 등 그들을 도와줄 사람들이 있었고, 그래서 경제적 어려움을 손쉽게 해결했다. 힘들어본 적이 없으니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깨졌던 사람들이 우스워보일 수밖에. 그래서 가난하게 보이는 순례주택을 무시한다.
수림은 무능력한 엄마 아빠에게 떨어져 할아버지의 손에 자랐고, 순례주택에서 자라게 되었다. 엄마의 사랑 대신 순례씨의 사랑을 받았고, 아빠의 독립심 대신 할아버지의 독립심을 배웠다. 경제적, 정신적 자립심은 나머지 가족 3명보다 훨씬 낫다.
결국 주변의 도움은 끝이 났고, 오갈 데가 없어진 수림의 가족은 순례주택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제부터는 그들이 하나씩 깨지고 성장해 갈 시간이다!
이런 내용이란 말이지.
그렇다면, 어른이란 무엇일까?
가족의 의미란 뭐지?
청소년 소설을 30~40대가 모여 읽어나가는 것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책을 읽고, 일상에 너무 지장가지 않게 가벼운 마음으로 모임에 참여한다.
매주 화요일, 늦은 밤 11시에 사이버 공간인 줌(zum)으로 모여 1시간 동안 생각을 나눈다.
각자 자신이 인상 깊었던 구절을 공유하며 생각을 한 마디씩 더하다 보면 꽤 내면을 깊숙이 바라보고 주제도 묵직해지는 것이 신기하다.
어른의 정의는 무엇일까? 방대하고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힘든 단어를 어떻게든 표현해보고 한다면?
개인적으로는 경제적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독립을 할 수 있는 상태. 어릴 때는 부모님이나 누군가의 지지기반을 도움 삼아 성장해나가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결국 관 속을 들어갈 때는 나 혼자 가는 것이기 때문에 지지기반이 없어질 때를 대비하여 혼자서도 무너지지 않게 잘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만들어 놓는 것.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남을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움을 가지게 되는 것. 타인의 실수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에도 그럴 수 있지~ 하고 너그럽고 현명하게 넘어갈 수 있는 마음가짐.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임에 참여한 다른 분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20대를 갓 넘어선 A님은 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경제적 독립을 외쳤고, 기혼의 B님은 자신이 선택을 하고 선택에 책임질 수 있는 상태라는 의견을 내리셨다. 그리고 기혼 엄마인 C님은 아이를 키우는 관점에서 내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라길 바랄까 라는 고민이 든다고 하셨다. 이론적으로는 부와 같은 여러 조건들의 차이 없이 어우러질 수 있는 자유로운 아이로 키우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좋은 환경과 친구를 만났으면 하는 것이 부모가 가지는 당연한 마음이지 않을까. 그리고 여정야독의 모임장님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수용할 수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셨다.
모두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를 하지만, 반박이 되는 이야기는 없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어른의 정의가 추가되며 대화는 더욱 무르익는다. 모두가 이미 어른이지만 더욱더 멋지고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는 하루가 지나간다.
1시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주제가 깊어지기도, 갑자기 확 바뀌기도 하며 함께 만들어나가는 신기한 시간이다. 혼자일 때는 생각할 수 없던 것이 생각나기도 하고, 간단하게 생각했던 사고가 복잡해지기도 한다. 마치 알쓸신잡처럼 일반 사람들도 충분히 그런 시간을 가질 수가 있다. 그것이 독서모임의 힘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