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독서모임의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책과 소개팅이라니?
참 이상한 일이다.
12월의 독서모임의 책은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었는데, 왜 읽을수록 소개팅의 순간들이 생각나는 걸까?
소개팅을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7번의 소개팅 이후 모든 애프터를 받았었다. 심지어는 첫 번째 만남을 하면서도 '다음엔 언제 볼 수 있을까요? 뭐를 하고 싶어요?'라는 부담스러운 질문을 듣곤 했다.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의 인생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열심히 듣곤 하는데, 이런 모습이 '잘 맞춰주는 것 같다'는 소리도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은 알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나도 모르게 내재되어 있었던 인간관계론을 소개팅 상대에게 펼치고 있었달까! ㅋㅋㅋ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에 대해서 책 350p에 걸쳐서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또 링컨 나왔네 어휴, 이쯤 되면 카네기보다는 링컨의 삶이 궁금하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링컨을 비롯한 엄청나게 많은 위인들의 예시를 들고, 행동 패턴을 따라 하라고 외친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치고 매달마다 다시 읽으라고 강요를 한다.
목차는 다음과 같다.
사람을 얻는 3가지 기본 방법,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6가지 방법,
사람들을 설득하는 12가지 방법,
사람을 자연스럽게 바꾸는 9가지 방법,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만드는 7가지 방법.
이 모든 것은 결국 상대를 바꾸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라. 상대에게 초점을 맞추라는 말로 귀결되는 것 같다. 사람은 그 누구든 자신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려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느낀다. 하지만 상대를 좋아할수록 기대가 생기고 욕심을 부리게 되니까 문제지. 조금만 더 내 뜻대로 해주길~ 나를 품어주길 바라게 되는 순간 다툼이 시작된다. 항상 미묘한 줄다리기, 중용이 참 중요하다.
소개팅이라는 오글거리는 첫 만남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도록 만드는 6가지 방법'과 맞닿아 있다.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라 / 웃어라 / 이름을 기억하라 /
다른 사람이 본인 이야기하도록 잘 듣는 사람이 되어라 /
다른 사람의 관심사에 맞춰 이야기하라 /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이 중요한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들어라
내가 소개팅의 첫 만남을 성공(!)으로 이끄는 이유는 이 6가지 덕분이었다. 내 앞에 어떠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이 사람이 '어떻게 삶을 살아왔고 무슨 가치관으로 살아갈 것이며 어떤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을까' 느끼는 나의 순수한 호기심과 결이 같았다. 나는 그저 앞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이런 모습이 상대에겐 호감으로 비쳐 보이는 것이다.
나는 꾸밈없이 잘 웃는 편이고, 삶의 재미난 경험이 많아 웬만한 경험에도 '그럴 수 있지.' 인정해 주곤 한다. 내 나이 또래의 남자들이 관심 있어할 만한 주제는 운동, 취미 생활, 직장일, 재테크, 군대...
집에서 할 수 있는 조그만 취미부터 해외여행까지 웬만한 취미생활은 해본 편이고, 특기에 운동이라고 쓸 만큼 운동을 잘하는 편이다. 하루 8시간 이상을 보내는 직장일은 소소한 일상으로 같이 나눌 수 있는 재미난 이야기일 것이다. 재테크는 현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 계속 관심 가져야 하는 숙제 같은 느낌이고. 남동생이 군대를 다녀오면서 간접적으로 알게 된 군대 생활이다. '아 하면 어' 까진 아니더라도 '오!' 까진 할 수 있지 않을까.
남자 취미 생활 그래프
인터넷에 떠도는, 재미로 보는 남자들 취미생활 그래프이다. 나는 가장 품위와 간지(!)가 있다는 요트 세일링을 해봤고 (자격증도 있어요! ㅋㅋ), 가장 하단의 애니메이션 감상과 온라인 게임도 잘하는 편이다. 동생과 PS4를 가끔씩 하고, 마비노기라는 온라인 게임을 10년 이상 근근이 해왔달까. 요즘 넷플릭스에서 애니메이션 부문의 핫한 '스파이패밀리'의 애청자이다.
골프, 스킨스쿠버, 피아노, 스키, 스노보드, 와인, 클래식감상, 독서, 사진촬영, 요리, 영화감상, 스케이트, 암벽등반, 서핑, 등산, 캠핑, 보드게임, 만화책감상... 어느 정도 이상 대화할 수 있는 나의 취미 스펙트럼인 것 같다. 그러므로 그래프의 제일 위에서 아래까지 이야기 가능!
누구든 내가 못하는 것이나 나보다 더 잘하는 것이 많을 테니, 그 부분은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오.. 대단해요! 멋있어요~ 나도 배워보고 싶다!!' 맘 속 깊이 나오는 진심 어린 리액션은 상대로 하여금 자신이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것 같다.
그래, 나도 모르게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게 만드는 이론'을 소개팅에 하고 있었네!?
책의 이론이 실생활에 맞닿을 때 꽤 신기하고 재미있다.
하지만 내 경험 상 소개팅 애프터를 넘어, 연인으로 가는 성공률은 0%이다. 상대의 호감은 불러일으키지만, 내가 인간적인 호감을 넘어 이성적인 관심을 가지기는 쉽지 않달까. (물론 애프터도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상대도 예의상 애프터를 신청할 수 있으니. 하지만 만나는 시간을 충분히 웃고 함께 즐겼다면 그것으로 괜찮지 않을까.)
20대 때는 '우리 친구 하자!'라는 용기 낸 발언으로 몇 년씩 친구로 지내곤 했다면, 한 사람과 안정적으로 가정을 꾸리는 것이 더욱 커지는 30대의 소개팅은 그럴만한 이유도- 여유도- 없는 것 같긴 하다.
한 사람의 내면이나 깊이보다는 가지고 있는 외적 조건이 더욱 중요해지는 30대의 소개팅. 앞으로 소개팅을 얼마나 더 할지는 모르지만 ㅠㅠ 누군가를 만나게 될 소중한 기회가 생길 때마다 데일 카네기의 이론을 생각하며 잘 다녀와야겠다.
메리크리스마스 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