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소통 방법에 대해 유튜브 영상으로 이것저것을 보다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5가지 사건이 뭘까 생각해 보라는 추천을 받았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했구나~' 인식하고 나를 객관화하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재미있는 이벤트를 중심으로, 누군가는 상처받은 트라우마 중심으로 회상한다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떠하였는가? 과거로부터 본인의 상처를 이해하고 사회성을 확장해 나간다.
부모님께도 똑같이 여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인생을 사신 인생 선배이자, 나의 가치관의 많은 부분이 되어주신 부모님의 생각이 궁금했다.30대 중반이 다 되는 지금에야 여쭤보는 것이 살짝 민망하긴 하지만 어쩌랴, 지금에라도 궁금한 게 다행이지. 부모님을 더 깊게 알아간다는 사실이 어쩌면 뿌듯하기도 하다.
아빠는 질문에 당황하시더니, 이내 말씀하셨다.
"엄마를 만난 거. 그리고 너네를 낳은 거."
옆에서 엄마가 싱긋 웃으며 한마디 보태셨다.
"신기하네? 나도 똑같이 생각했는데."
이럴 수가. 40년 이상을 직장 생활하신 아버지 이신지라 직장의 의미가 얼마나 될까 궁금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속하지 않았다. 어쩌면 딸인 내가 물어봐서 더 가정적인 대답이 나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몇 초 안에 순간적으로 나온 대답인데 그럴 가능성은 적을 것 같다.
주 6일, 휴가도 없이 하루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 충성한 베이비붐 세대의 아버지이시다. 젊음의 대부분을 회사에 바쳤고, 거친 사회생활을 지나 한 회사의 임원이 되시기까지 무려 47년을 직장 생활을 하신다. 이쯤 되면 회사와 은혼식을 해드려야 할 것 같다.
상사에게 큰 인정을 받았을 때, 높이 승진했을 때, 중요한 계약을 따내서 자존감이 높아졌을 때 등등의 의미 있는 좋은 시간이 있으셨을 것이다. 시샘에 밀려 좌천되었을 때, 버거운 업무에 원형탈모가 생겨 고생하셨을 때, 술상무처럼 상사에 맞춰 영업용 술을 드시며 고주망태로 들어오셨을 때 등등 힘든 시간도 있으셨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직장은 아버지의 삶과 함께 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삶의 중요한 순간에 일이 속하지 않는다고? 꽤 충격이었다. 직업은 정말로 먹고살기 위한 생계유지의 수단인 것인가. 가정을 잘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역할인 것일까.
알게 모르게 부모님의 가정적인관점도 내가 일보다는 나의 일상과 앞으로의 가정에 집중하는데 큰 영향이 되었을까 싶다. 그렇다면 앞으로 가정이 없을 수도 있는 나를 포함하여 3포를 넘어선 N포 세대인 우리는, 1인 가구와 비혼의 삶이 늘어난 우리 세대는, 가정을 이루는 것보다 개개인의 삶이 중요해진 지금 세대의 직업관과는 세대차이로 보아야 할까?
혼자서 살아간다면 무엇을 위해 살아야 삶이 더욱 행복할까?
요새 계속 직장의 의미를 고민해 보게 된다. 가정에서 일의 의미를 찾았던 나의 목표가 좌절되고 나니 나를 지탱해 줄 새로운 삶의 목표를 찾아야만 한다.아아- 아무래도 일은 나에겐 삶의 목표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직장의 생계유지를 넘어서 자기 계발이라는 확장된 나만의 의미를 찾기 어려워서, 심리학 이론 중 하나인 '허즈버그의 2 요인 이론'을 생각해 보았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동기 요인인 (+)의 요소를 찾기보다 (-) 요소를 제거하는 것으로 목표를 잡아본다. 건강이 안 좋아지거나 언제든 퇴사하게 되면 흔들리지 않을 최소한의 먹고살 돈은 있어야 할 것 같아!불안하지 않을 최소한의 안전 요소를 찾아보는 것이 현재의 나의 직업관의 최대인 듯하다.
이런 걱정을 하고 있으면, 부모님께서는 어떻게든 먹고는 살더라는 낙관적인 대답이나나도 젊을 때 똑같은 고민 하며 아등바등 아꼈는데, 아직도 돈 버시는 것처럼 인생 모른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을 해주신다. 혼란스럽다. 세월은 빠르게 지나가고 특출 나게 잘하는 게 안 보이는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되는걸.
아빠는 엄마와 우리들, 그렇게 두 가지 영향력 있는 삶의 순간을 나누시고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나는 아버지의 삶에 깊숙히 박힌 우리의 의미에 감사하면서 동시에 아버지의 3번째, 4번째, 5번째 삶의 기억나는 중요한 순간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