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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Mar 07. 2024

커플 여행 어떻게 생각하세요?

갈까요 말까요

여행을 가면
그 사람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여행을 다니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긴다. 그렇지만 계획대로 무난하게 흘러갈 때도 많다.  어쩌면 우리 삶의 여정 축소판 같기도 하다.


그래서 그럴까,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 연애하며 여행도 가보고 여러 상황도 많이 겪어보고 결혼해~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결혼하기 전에 상대에 대해 알아보라고. 나와 취향은 비슷한지, 예상치 못한 일에 대응은 어떻게 하는지, 삶의 가치관은 무엇인지, 서로 조율이 되는지 알아야 한다.


20대 초반 대학생이었으면 주변의 시선 등등 혹시 모를 걱정에 남자친구와 둘만의 여행이 머뭇거렸을 거다. 뭐, 적정한 나이는 없 사람마다 시기는 다르다지만, 우리 집 분위기는 그랬다. 해외에서  6개월을 거쳐 어느덧 해외여행이 익숙한 사람이 되었다. 국내 여행으로 시작해서 해외로 처음 시작하는 발걸음이 어려웠지, 익숙해지니 국내 해외 할 것 없이 함께 잘 돌아다녔다.


"여행 가야 진면목을 알 수 있다니까? 맞는지 안 맞는지도 모르고 결혼할 거야?"라는 건 핑계 같다. 사실 그때의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마침 오래 만나고 참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다.


함께 하는 시간을 풍족하게 만들기 위해 내가 가장 잘하는 여행의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아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해준 거니 그에게서 선물을 받은 걸까. 어디든 함께 하고 싶다는 내 욕심 가득한 마음을 여행으로 잔뜩 채웠다.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추억이라 생각했다.


내 선택을 지원해 주신 든든한 엄마.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쉽게 여행 다니기 힘드니 연애 때 하고 싶은 거 해보라는 지원 사격 덕분에 나는 맘 편히 여행을 다녔다. 다만 '그 시간에 대한 책임은 너의 것이다'라며 조언하셨다. (그리고 그 책임에 대한 결과를 나는 뼈저리게 받았다. ㅠㅠ)


요새는 커플끼리 여행은 기본인 것 같다. 해외여행이 자연스러워졌기도 하고, 만혼 비혼도 많으니 결혼하고 여행 가려면 너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시대 분위기는 빠르게 변화한다. 




우리 도서관 가서 여행 책 빌려오자~


나는 도서관 데이트를 잘하곤 했다. 매년마다 각자의 자격증 공부를 하며 자기 계발을 하기도 하고, 책을 읽으며 소소한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 가려고 하는 여행지의 책들을 빌려서 같이 카페에서 읽으며 계획을 짜기도 했다. 프렌즈, 인조이, 100배 즐기기와 같은 범용적인 여행 가이드북과 현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몇 권의 여행 수필들이 가득한 도서관은 좋은 데이트 코스이다!


커플이 둘 다 ISTJ / ESTJ 라면 효율성의 극치를 달린다. 목표가 생기면 일사천리다. 저렴한 비행기를 잘 찾는 내가 주로 여행을 주도하곤 했다. "여기 비행기표 싸다! 연차 가능해?", 클릭 클릭 비행기표를 큰 맘먹고 구매하고 나면 시작이 반이라는 생각에 한숨 돌린다. "2번 갈아타긴 하지만 45만 원으로 뉴질랜드 가는 거 엄청 잘 끊은 거 같은데?"


이제 계획을 짜보자. 몇 시 기상, 이날은 뭐 하고, 유명한 식당은 어디고, 꼭 가봐야 하는 관광지가 있는지, 꼭 하고 싶은 활동이 있는지 서로 대화해 본다. 큰 틀을 세우고 나면 함께 짰다는 즐거움에 기쁨은 배가 된다. 이건 우리만의 단 하나뿐인 계획인 거다! 우린 역시 잘 맞아. (정말이었을까?)



@pixabay. 세계로 가는 거야! 어디든 추억이 될 테니.


그렇게 각자 캐리어 하나 들고 함께 여행을 떠다. 동거만큼이나 여행은 상대에 대해 알 수 있는 시간이다. 붙어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 하루의 생활을 함께 한다는 것은 민낯 그대로의 상대를 볼 수 있다는 말이다. 동시에 여행은 '낭만'이라는 프리미엄이 붙는다. 우리가 만들어가는 로맨틱한 일상 하루의 끝판왕인 거다.


식습관, 화장실 패턴, 이불정리, 체력의 수준 등등 다 나온다. 뭘 좋아하는지, 좋아할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가려던 음식점이 문 닫았을 때나 버스를 놓쳐서 일정이 틀어졌을 때처럼 예상치 못할 상황에 어떻게 행동하는지, 하루 3만보씩 걸으며 방전되고 지친 체력이면 어떻게 하는지... 상대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다 보인다. (그리고 대부분의 STJ들은 규율과 통제에 강하기 때문에 깔끔한 성격이 많은 듯하다.)


평상시 알콩달콩 데이트하면서 보는 좋은 모습들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생활 모습이 그대로 비친다. 상대가 나랑 맞나 안 맞나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서로가 채워줄 수 있는지도 어렴풋이 느꼈던 것 같다.


근데 말이지.. 여행은 서로의 안 좋은 모습을 싹 넘길 수 있는!! 치명적인.. '낭만'이라는 엄청난 무기가 있다.

아름다운 해외의 풍경을 보고 있자면, 먹고 있는 게 빵 한 조각이래도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티격태격 스쳐 지나가는 부정적인 감정도 금방 잊는다. 돈을 버는 이유는 이렇게 함께하는 시간을 위해서 이리라.


@pixabay. 체코 프라하. 여행에서 환상적인 풍경을 함께 보고 있으면.. 이런 시간이 내 인생에 주어진 것이 너무도 행복해서 마냥 감격스러울 때가 있었다.


나의 기억력은 우습게도 저런 풍경으로 낭만적인 저녁을 마무리하면 "이번 여행 너무 좋았어"로 기억이 왜곡되더라. 내 사고 회로는 단순 기억하는 세포가 더 많은가 보다. 허허허.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커플 여행은 더 깊은 대화의 장은 아닌 듯하다. 분명 티격태격하며 많은 상황들 앞에 놓이는데, 너무도 많은 새로운 자극을 접하면서 잊어버린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새로운 스타일의 도시들은 우리가 언뜻 지나치는 문제점들을 기억 저편으로 보내버린다. 미봉책처럼 꿰매어놓은 얄팍한 느낌이랄까.


꼭 시시비비를 가려 풀어야 할 것들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쉽게 넘기기엔 아쉬운, 좀 더 깊게 상대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들이 지금 생각하니 참 많았다.


@pixabay. 이런 풍경을 같이 앉아 보고 있으면 티격태격하며 기분 상해있다가도 힐링되며 잊는다...




이상한 일이다. 여행하며 처음 본 사람들자연스레 이것저것  대화 되었데, 오히려 가깝고 깊은 사이에는 여행 중 수준 높은 대화가 쉽지 않다. 어린 시절 이야기, 사람마다 다른 결핍, 가족 가치관 등등 나눠야 될 이야기는 너무 많은데 자연스럽게 나오지 않았다.  


이유를 찾아본다. '자기 자신'을 잘 모르고 만나는 어린 라서일까? 함께 있는 시간을 헤실거리며 마냥 좋아할 줄만 알았지, '마음을 알아주는' 대화하는  미숙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너무나 안타깝고 미안해진다. 


애초에 른 사람이라, 결이 다르고 공감대가 적어서 서로 대화가 잘 안 이루어진 걸까? 공감대가 부족해도 꾸준히 만들어가는 시간들로 채워질 수 있는 것 아닌가. 아니면 대화가 없어도 편안한, 이미 익숙한 사람이 되어서일까? 여러 생각을 해본다.


사랑할수록 가까울수록 나와 동일시된다는 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까? 사람마다 마음의 거리가 다 다른데, 이미 깊숙한 선 안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나도 모르게 그에게서 나를 투영한다. 말 안 해도 알겠지, 나와 같겠지... 그래서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 있나 보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대화를 많이 하고 상대를 더 알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함께하는 이 순간이 죽음이든 이별이든 아퍼서든 이혼이든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해 함께 하는 시간을 채우려고 했다. 이는 남자친구뿐 아니라, 가족, 친구 등 내 주변의 소중한 인연들에게도 그랬다. 하지만 행복한 추억을 쌓은 만큼 헤어질 때는 더 아프기도 한 것 같다.


후회하기 싫어서 더 최선 다한 결과가 너무도 아프다면 이건 추천할 만한 걸까?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순간과 웃음을 되돌아보면, 사랑 참 그렇다. 아니 인생이 그런 듯하다. 희로애락이 덧없다. 렇게 쌓아왔던 추억이 더는 펼쳐볼 수 없는 기억이 되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래서 아픔을 머묾고 있는 난 '아직까지는' 커플 여행을 감히 추천할 수 없다. 


고이 쌓은 여행은 추억이 되지만, 평생 기억날 고통이 되기도 한다. 언젠가 되돌아봤을 때 나의 젊은 날의 성장 기억으로 남을지, 상흔처럼 새겨버린 흉터로 남을지는 더 지켜봐야 알겠다. 많은 추억을 흘러 보낼 수 있는 단단한 힘이 있다면 커플 여행, 추천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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