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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Mar 12. 2024

내가 여행에서 다툰 유일한 사람

가까운 사람에게 대하는 태도


여행을 다니며 어떤 순간들은 머릿속에 박혀 오래 가져갈 기억이 된다. 특히 사진으로 저장하게 되면 두고두고 되새김질되어 평생 남게 된다-.




나는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추억을 간직하는 걸 좋아하고, 그 순간들을 모아 매번 사진첩을 만든다. 그러니 당연히 다양한 포즈와 표정의 인증샷과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러진 예쁜 사진들이 내겐 중요하다.


이건 가족력인 거 같기도 하다. 여행을 가면 가족 4명 모두가 각자의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나중에 보면 똑같은 풍경 사진이 4장씩 생긴단 말이지. 그리고 난 분명 앞모습을 찍어달라고 했는데, 언제 찍었는지 뒷모습, 저 멀리 풍경 속의 내 사진도 생겨있다. 몰카들의 파티다. ㅋ 가장 화질이 좋은 핸드폰 하나로만 찍어도 되련만, 다들 자신의 손맛 담긴 사진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사진 찍기 위해 오래 시간을 끌고 싶지 않다. 그건 주종이 바뀐 것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하는 것은 여행하는 순간의 마음이지, 어디다 출품할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을 들인 각 잡힌 정교한 사진은 아니다.


그래서 여행 중 맘에 드는 짧은 순간 속 빠르게 캐치한 베스트 사진이 필요하다.


엄마~ 나 사진 좀 찍어줘


@유채꽃 밭에서. 이 구도로 딱 이렇게 찍어줘~


포즈와 구도를 미리 생각해서 엄마에게 핸드폰을 넘긴다. 사람 없을 타이밍까지 다 알려드렸으니 잠깐의 핸드폰 터치 하나면 되는데, 이상하게 엄마 손으로만 가면 나는 똑같은 포즈로 10초 이상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입가의 미소가 바들바들거렸다. 당최 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예쁘게 찍히면 또 몰라.. 구도가 틀어지거나 뒤에 사람들이 그새 많아져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뒤로 바글바글 지나가던가. 하여튼 맘에 안 들었다. 그 순간 그 느낌으로 베스트 사진 한 장 찰칵! 그게 그렇게 어려운 건가?


그렇게 사진 찍기를 여러 번. 참고 참았다.

"아~~ 왜 못 찍는 건데!! 답답하네!"

결국 핀잔과 신경질로 엄마에게 한 소리를 했고, 손이 맘처럼 되지 않은 엄마는 결국 속이 상하셨다.


노력을 한다고 하는데 안 되는 본인답답하셨을 거다. 여유 없는 딸의 구박이 미웠을 수도 있다. 주눅 든 엄마는 자신감을 잃었다. "엄마, 다시 사진 찍어줘! 포즈 취할게. 수평선 맞추고 여기 나오게 찍어줘."


이것이 20대 중반, 엄마와 함께 한 마카오 여행 중 마지막 날의 기억이다. 이 순간을 다시 되돌아본다.




엄마는 속상하셨는지 그때 사진들을 보면 표정이 좋지 않다. 쭈뼛쭈뼛 어색한 사진이 남아 있다.

엄마가 "네가 그렇게 닦달하면 나 속상해."처럼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하거나, 내가 눈치 챙겨서 "엄마 내가 좀 심했, 이렇게 찍어보자." 하며 차근차근 알려주거나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의 모녀지간은 그러지 못했다.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소녀 같은 엄마와 틱틱거리며 너그럽지 않은 딸. 환장의 콜라보다.


그러움도- 여유도- 감정 따뜻한 대화도 없었다.

왜 이런 상황이 만들어졌을까?


누군가의 인성을 보려면 오래된 친구 부모님에게 하는 행동을 보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정말 편할 때 나오는 행동이 사회적 가면 속에 숨겨진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이게 진정한 나의 모습이었을까? 이 상황은 내가 이해 안 되는 것을 받아들일 때나 타인에게 내 욕심을 강요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모습이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이런 말인가 싶다. 와락 화를 내든- 비꼬면서 신경질 내든- 표현을 했으니 감정이 남지 않았을 것이다. '난 뒤끝 없어!'라고 하는 사람들은 내가 보건대 이미 신경질이나 화를 내고 자기 맘 속에 갖고 있지 않기에 잊어버리는 것일 거다. 이건 습관이다. 스트레스나 마음속 부정적인 감정을 풀어내는 방식인 것이다. 그 감정을 받은 상대가 이제 속상해지고 기분 나빠지겠지. 무한 도돌이표가 된다.


왜 이런 표현 방식이 되었을까? 배운 적이 없어서라고 하면 핑계일까. 그때의 나는 참 어렸다. 귀하디 귀하게 자란 딸, 바람 불면 날아갈까 온실 속의 화초로 컸다.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엄청난 특혜! 부모님과 선생님의 편애로 모든 것이 내게 맞춰져 있었다. 지식을 쌓았지만 지혜는 몰랐다. 그렇게 되면 사람이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해질 수 있다. 상대의 입장과 감정을 바라볼 필요성이 많지 않았다. 조금씩 다듬어지고 깨져야 사람은 성장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내적 성장이 꽤 더뎠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타인에게도 칭찬과 인정을 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내가 이룬 것은 당연한 것이며 앞으로 더 잘해야 하는 것이었다. 칭찬과 인정을 내가 나 자신에게도 해본 적이 없는데, 남에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릴 적부터 97점 맞으면 부족한 3점이 아쉬워서 나를 자책했고, 전교 2등을 하면 1등을 못했으니 나 자신을 괴롭혔다. 항상 부족한 부분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삶의 여유와 너그러움을 가지지 못했다. 학교라는 틀을 벗어나니 그제야 줄 서기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 왜 그런지 알게 되니 행동을 더 좋은 모습으로 바꿔볼 필요가 생겼다. 한번 새겨진 습관이 바뀌려면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하거나 충격적인 사건이 있으면 바뀐다.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너그러이 칭찬과 인정을 해보기로 했다. 말이 안 나오니 우선 나 자신에게 괜찮다는 말을 해보기 시작했다. 괜찮아. 럴 수 있지. 편히 생각해.


책을 읽으며 화나 신경질이 아닌 다양한 감정의 표현방법을 익혔다. 그때의 나는 나를 잘 알지 못하여 감정에 무지했다. 내가 내 감정을 잘 알지 못하는데 타인의 미세한 감정을 알 수가 있을까. 알게 되니 조심스러워졌다. 참거나 신경질로 풀었던 나의 감정을 속상함, 슬픔, 당황스러움, 답답함 등 감정 형용사들을 배워가며 깊게 파헤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상대가 상처받지 않도록, 하지만 나도 전달을 잘하도록 표현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었냐면-

'그럴 수 있지~'가 입에 배었다. 답답한 상황에서도 웬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게 되었다. (가끔씩은 오히려 상대가 더 답답해하는 것 같다. ㅋㅋ) 불쑥 일어나는 부정적인 감정을 한 번은 필터로 거르고 본다.


그리고 작은 거라도 꼭 칭찬과 인정을 찾는다. 직장생활에서도 "오! 역시 섬세하신데요." "빨리 처리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좋은 습관이나 행동이 있을 때 잊지 않고 표현하곤 한다. "센스 있다." "든든해!"


가끔씩 과거의 내가 부끄럽고 미안할 때가 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가족일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것은 정말 맞는 말이다. 중요한 건 옳고 그름이 아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의 마음이 괜찮은지 알아봐 주는 것이 필요하다. 난 여전히 거북이 같이 느린 엄마의 사진 습관이 이해가 안되긴 하지만, 인정은 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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