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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Apr 25. 2022

이별 6주차: '우리'라는 말이 생경한 우리를 상상했어


배드민턴 동아리에서 머리에 공을 네 번 정도 맞을 때부터 알았어야 하는데.​

주 7일 중에 주 7일 운동하는 스케줄을 잡게 된 건 이별 이후야. 진을 뺄 겸, 다른 곳에 신경을 좀 돌려볼 겸 두 번은 필라테스, 두 번은 배드민턴, 두 번은 풋살, 사흘은 러닝을 해. 빡빡하지? 그런데 무리라는 생각을 안 했어. 신경도 몸도 마비 상태였나봐. 전기가 끊기면 비상 전력이 돌듯이 상실을 채우기 위해 몸을 무리하게 써도 군소리 않기로 한거지.

그런데 이번 주는 힘들었어. 체력이 서서히 한계에 다다른 것도 있고, 마땅찮게 생각하던 사촌오빠가 좋은 사람을 만나 장가 간다는 소식에 배알이 꼴리기도 했지. 풋살 수업에서도 그래. 같은 시기에 수업을 듣기 시작한 E, S는 어느덧 코치님의 공격도 막아낼 정도인데 나만 제자리야. 한 달 뒤에 들어온 사람이랑 하는 연습 경기에서 3:0 패배, 처참하더라.

'큰 사고 전에는 반드시 자잘한 사고가 있다'라는 글을 봤어. 이 모든 것이 몰아닥친 건 예고편이었다는 의미야. 본편은 목요일 밤 열시 삼십 분. 뉴욕 직장인 브이로그를 보며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네' 하고 있었는데 말야.​


"잘 지내?"

자고로 깊은 밤에 오는 구남친 연락은 씹는거라는데, 누군가는 읽씹이 낫냐 안읽씹이 더 낫냐고 투표도 하던데.

"응 잘 지내 ㅋㅋ 너도?"

'남과는 다르게'를 추구하는 나르시즘이 나댔지 뭐.

"다행이다. 괜히 연락해서 맘 싱숭하게 만든건 아닌지 모르겠네.."

메시지 알림이 떴을 때, 사실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놀라진 않았어. 올 게 왔다 싶었지. 그래도 말이 궁했어.​

'같은 자리'라는 노래를 계속 들어. 하루의 대부분 너를 잊고 지내다가 '지워낼 수가 없는 아픈 네 빈자리'라는 가사에서 네가 떠오르거든. 이라고 말할 순 없으니까

​​

"괜찮아~ 너도 잘 지내지?"​

라고 답하는 수 밖에.

야, 진짜 짜증나는게 뭔지 아냐. 메시지에 네 이름이 뜨는 순간 목구멍이 꾹 막히고 코가 시큰거린다는거야.

캡틴 아메리카 2탄인가, 캡틴 아메리카가 헐크를 날리면 건물 하나가 사라지고 삽시간에 도시 하나가 무너지잖아. 엑스트라 4의 심정으로 네다섯 개의 문자가 내면의 평화를 헐크처럼 부수는 걸 무기력하게 바라봤어.

"좀 지나서 괜찮아지면 말해. 근황토크나 하자~"

네가 말하는 '좀 지나서'가 되면, 무사히 사랑하는 사람들이 밉지 않아질까?

'우리'가 생경한 우리를 상상했어.​

투병 생활이 끝난 사람들처럼 핼쓱한 얼굴로 마주보고 나누는 요즘 사는 이야기는 뭘지 궁금하다. '일주일에 열 번 운동을 했어. 넝마가 된 마음을 달래려고 글을 썼어. 다섯 번 정도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어. 안쓰러운 눈빛이 싫어서 안부를 묻는 말에 괜찮다는 말로 인사했어.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질까봐 너를 마땅찮아 했던 사람들 얼굴을 못 봤어'라고 개운한 얼굴로 남의 이야기를 하듯 말할 수 있는 미래가 있다면, 그때를 기다려야 할까 말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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